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시름시름 앓는 개 전염병이 돌고 베트남 땅에선 들깨는 잘 안 자라는데 참깨가 잘됩니다. 꼬꼬 먹이로 준 참깨가 돌짝(자갈)밭에서 아주 알차게 영글었습니다. 사랑이와 믿음이는 개구쟁이 애들처럼 꼬꼬 밥도 뺏어먹습니다. 하노이에서는 새를 보기 힘든데, 먹이가 있으니 새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사랑이와 믿음이는 귀를 나풀거리며 새를 잡으려고 풀밭을 마음껏 뛰어놉니다. 풀밭에는 강아지만 한 쥐들이 겁 없이 들어옵니다. 특히 믿음이는 날렵하게 쥐 사냥을 잘합니다. 쥐는 급하면 2m 되는 울타리를 넘어가려고 뛰어오릅니다. 울타리에 부딪히는 소리만 요란할 뿐 넘어가지 못하고 꼼짝없이 잡혀서 놀잇감이 되고 맙니다. 혹시나 쥐약을 먹은 쥐면 어떡하나, 쥐를 먹으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사랑이와 믿음이는 쥐를 가지고 놀다가 버리고 먹지는 않았습니다. 씩씩하던 사랑이가 어느 날부터인가 밥을 먹지 않고 비실비실 누워만 있습니다. 믿음이가 같이 놀자고 아무리 뽀뽀하고 발로 끌어당겨도 꼼짝하지 않습니다. 밥을 먹지 않고 시름시름 앓는 개 전염병이 돈다고 합니다. 평생 개를 여럿 키워봤지만 개가 죽은 적은 없었습니다. 약도 사다 먹이고 북어 대가리 푹 삶은 물을 입을 벌리고 수저로 떠먹입니다. 미음을 끓이고 약을 구해다 먹인 지 일주일이 되자 사랑이는 조금씩 밥을 먹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그렇지 개는 원래 잘 죽지 않는 법이야, 마음을 놓았습니다. 사랑이만 돌보느라고 믿음이한테 전염된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믿음이가 바나나숲 그늘에 누워서 꼼짝하지 않습니다. 주 집사는 자기네 개들도 며칠 비실비실 앓다가 다들 툭툭 털고 일어났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랑이가 앓고 일어났기 때문에 별로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뭘 안 먹어서 오늘은 병원에 데리고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잘 움직이지 않던 믿음이가 억지로 걸어오는 것이 보입니다. 이제 정신이 좀 드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억지로 뜨락까지 올라오더니 푹 쓰러졌습니다. “믿음아 많이 아파? 오늘은 병원에 가보자.” 말하는데 벌써 파리 떼가 믿음이 입 주변에 달라붙기 시작합니다. 안아올리자 몸은 다 굳어 있고 목울대만 몇 번 벌렁벌렁하더니 목이 툭 떨어졌습니다. 다물지 못한 이빨 틈새로 쉬파리 떼가 쫓아도 쫓아도 모여들었습니다. 믿음아 미안하다 “믿음아 미안하다. 믿음아 미안하다. 엄마가 너무 방심했구나.” 믿음이를 안고 많이 울었습니다. 남편은 일찍 죽는 것도 다 개 팔자라고 큰 쌀자루에 넣어 뛰어놀던 풀밭에 묻어주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죽어가던 믿음이를 잊을 수 없습니다. 믿음이는 단순한 돌림병이 아니라 뭔가 잘못 먹어서 깊은 병이 든 것을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내 평생 동물을 키우면서 믿음이가 죽은 것이 가장 미안한 일로 남아 있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 <강원도의 맛>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