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여성 사관 구해령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 초록뱀미디어 제공
세자조차 생각지 못한 여성의 성취 비성균관 출신인 여사들에게 “방 안에서 자수나 놓던 것들”이라며 무시하는 예문관 한림들, “국정을 논하는 곳에 여인이라니! 대전을 더럽혀도 유분수”라며 쫓아내려는 당상관들은 여성이 사회 진출을 시작했을 때, 특히 군인이나 경찰 등 남초 직군에 진입할 때 늘 가해진 차별과 배제를 보여준다. 여사들은 사관이기 전에 여성이라는 ‘한계’를 끊임없이 주입받고, 조직 내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해령은 옳은 일을 해도 지지받기는커녕 “폐나 끼치는 계집년”이라며 약한 입지를 공격당한다. 한국에서 두 번째로 여성 헬기 조종사가 될 만큼 탁월한 경력을 쌓으면서도 군대 내 성폭력, 성차별에 계속 맞서야 했던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의 말은 <구해령>이 비추는 과거의 가상 세계가 현재의 현실 세계와 멀지 않게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군인이 되고자 스스로 지원했지만 지내오면서 언제나 더 힘들었던 것은 군인으로서 지켜야 할 규칙이나 훈련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인식을 뛰어넘는 일이었다.”(2006년 <신동아> 인터뷰) 차별과 불평등이 만연한 세계에서 해령이 예문관의 유일한 여사가 아니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남성 위주 시스템에 여성이 들어가 균열을 낼 때, 한 여성이 특별하고 유능한 단독자로서 있는 것보다 다양한 여성이 한꺼번에 존재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다. 한 성별이 집단 안에서 보편적 존재로, 눈에 띄지 않고 차별이나 특혜를 받지 않으려면 최소 30%의 인원을 차지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듯, 극 중에서 이름을 가진 예문관 소속 인물 12명 중 여성은 4명이고 이들은 각기 다른 성격과 욕망을 가진다. 이를테면 이조정랑의 딸 송사희(박지현)는 여성 주인공의 흔한 ‘라이벌’이 그러했듯 탐욕과 질투심을 숨기지 못해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어내는 캐릭터가 아니라, 냉철하고 품위 있으며 해령과 다른 방향으로 사회화한 인물이다. 그는 부유한 반가의 딸이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는 세자에게 아비의 권세와 재산은 여성인 자신의 몫이 아니기에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여사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때 그동안 힘없고 가난한 백성의 처지를 헤아려온 세자조차 여성이 ‘평탄한 삶’ 대신 자신만의 성취를 원할 수 있다는 데까지는 생각지 못한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이처럼 과거를 배경으로 현재를 비추고 미래의 가능성을 그려나가는 <구해령>은 여성이 사회적 역할을 하기 위해 ‘명예 남성’이 되는 대신, 존재 자체로 평등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요구하고 투쟁해온 역사와 시대적 변화가 담긴 작품이다. 로맨스의 결론은 ‘혼인’이 될까 해령과 로맨스 관계를 이루는 도원대군 이림(차은우)이 여성에게 인기 있는 염정소설(연애소설) 작가이면서 흔히 남성의 덕목으로 여겨진 완력이나 궁술 실력은 형편없고, 그보다 여섯 살 연상의 해령이 궁술로나 학식으로나 사회 경험으로나 이림을 압도한다는 점도 흥미로운 뒤집기다. 그러니 두 사람의 로맨스가 꼭 ‘혼인’으로 귀결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물론 극 초반 해령이 읽어주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끝까지 듣고 “여태 둘이 이루어지지도 않는 걸 읽고 있었단 말이야?”라며 타박하던 손님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최지은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