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 전집, 뤼팽 전집 출간 열풍…추리소설의 불모지에 꽃은 피는가
셜록 홈스 전집에 이어 아르센 뤼팽 전집이 쏟아지고 있다. 셜록 홈스 전집은 발매된 지 1개월 만에 3만질이 팔렸고, 아르센 뤼팽 전집은 무려 4군데에서 책이 나온다. 까치와 황금가지는 전집을, 태동과 샘터는 선집을 낼 예정이다. 갑자기 추리소설의 시대라도 돌아온 것일까?
범죄의 배후에는 사회적 모순이
전집 열풍이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기획에서 출발한 것은 분명하다. 어린 시절 조금이라도 동화책을 읽었던 사람이라면, 외관을 본 것만으로 한 사람의 과거 이력을 줄줄 맞혀내는 명탐정 홈스와 신출귀몰한 수법으로 부자들의 물건을 훔쳐내는 의적 뤼팽이 벌이는 갖가지 모험을 기억할 것이다. 어린 시절에 만난 홈스와 뤼팽은 아마도 최초로 만난 ‘영웅’의 형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이용으로 각색되었던 홈스와 뤼팽을 온전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홈스와 뤼팽 전집은 대단히 반갑고 또 의미있는 일이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들도 몇몇 출판사에서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 역시. 기왕이면 절판되어 찾아보기 힘든 추리소설의 고전들도 속속 나왔으면 좋겠고(80년대 나왔던 동서추리문고의 책들만이라도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홈스와 뤼팽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과거의 향수를 충족시킨다는 사실 이상이다. 홈스와 뤼팽은 추리소설의 고전이다. 고전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언제 읽어도 가치가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고전을 읽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고전이 필요할 때 그것을 언제나 찾아 읽을 수 있는가, 없는가는 엄청난 차이다. 그것은 한 나라의 출판문화에 대한 방증이다. 고전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려준다. 얼마나 멀리 왔는지, 또는 얼마나 오랫동안 같은 자리를 맴돌았는지를 가르쳐준다. 고전을 읽어보면, 우리가 성취한 것과 잃어버린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고전이나, 대중소설의 고전이나 마찬가지로.
황금가지에서 나온 셜록 홈스 전집은 와트슨 박사와 홈스의 만남이 시작되는 <주홍색 연구>부터 <네 사람의 서명> <바스커빌 가문의 개> <공포의 계곡> 4권으로 출발했다. 앞으로 10권을 채울 예정이다. 홈스 전집은 읽을수록 흥미롭다. ‘추리를 정밀과학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홈스를 다시 만난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그 소설의 온전한 형태가 무엇이었는지를 실감하는 과정이 꽤나 즐겁기 때문이다. 완역으로 다듬어져 나온 홈스 전집에서 두드러진 것은 추리의 과정 이상으로 세세하게 그려진 사회적 배경이다. <주홍색 연구>의 범인은 신대륙에서 건너왔다. 많은 범죄소설의 살인자처럼, 이유는 복수다. 신교도의 차별을 피해서 유타주로 간 모르몬교도는, 소박하고 자애로운 듯 보이지만 실제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 역시 자신의 종교를 믿지 않는, 아니 교단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단지 잔인한 지배자였을 뿐이다. 코넌 도일은 개인적 살인의 배후에는, 사회적인 모순이 깔려 있음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홈스라는 인물을(어린 시절의 기억과는 달리) 그토록 음울하게 만든 이유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사회는 완고하게 닫혀 있고(외국인 혐오주의는 한 예다), 홈스의 사건 해결은 아무런 상황을 바꾸지 못한다.
홈스는 비정한 탐정이었다
게다가 마약 중독에다 지독히 냉소적이고 수사에 필요한 지식 이외의 것을 일체 거부하는 홈스의 모습은, 요즘 10대가 좋아하는 <소년탐정 김전일>이나 <명탐정 코난>에 등장하는 활기차게 사건을 해결하는 일반적인 명탐정과 조금 거리가 있다. 흥미로운 사건을 만났을 때의 홈스는 지나칠 정도로 쾌활하고 에너지가 넘치지만, 그것마저 지나친 자기도취에 가깝다. 홈스는 차갑고, 변덕스럽다. 하드보일드가 등장하면서 필립 말로우처럼 염세적인 탐정이 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추리소설의 여명에 등장한 홈스가 이토록 비정한 탐정이었다는 사실은 약간 놀랍다.
홈스에 비해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과 <뤼팽 대 홈스의 대결> 두권이 나온 뤼팽 시리즈는 훨씬 오락적이다. 뤼팽은 음침한 탐정이 아니라 활달한 도둑이며, 때로 탐정이 되기도 하는 프랑스의 영웅이다. 범죄소설의 주인공이면서, 또한 모험소설의 전형적인 영웅인 것이다. 영국의 홈스가 인기를 끌자, 라이벌 의식이 강한 프랑스는 그들의 영웅을 만들기를 갈망했고 모리스 르블랑은 뤼팽을 창조했다. 홈스에 대한 질투심은 꽤 투철해서, 홈스를 등장시켜 굴욕을 주기도 했다. 코넌 도일이 항의를 하자, 헐록 쇼메즈라는 이름으로 철자만 조금 바꾸는 장난을 치며 여전히 홈스를 조롱했다. 홈스의 팬에게는 다소 불쾌한 일이지만, 홈스나 뤼팽이나 모두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며 대중의 인기를 먹고 자라는 대중소설에서 자라난 인물들이니 어쩔 수는 없는 일이다(물론 요즘 같으면 저작권법에 걸리겠지만).
추리소설만이 아니라 SF물 <잃어버린 세계>, 모험소설 <마이카 클라크> 등 다양한 장르에 관심을 보인 코난 도일에 비해 모리스 르블랑은 뤼팽 시리즈에 전념하며 뤼팽을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었다. 모리스 르블랑은 뤼팽으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벨 에포크와 1차 세계대전을 거쳐 1930년대 초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활극의 장에 끊임없이 뤼팽을 투입했다. 수십년을 관통하는 뤼팽의 모험담은 개별 작품마다 인물과 사건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연대기 순으로 읽어야 그 관계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홈스와 뤼팽은 범죄소설에서 캐럭터의 중요성을 각인시킨 주인공이었다. 전집을 펼쳐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홈스와 뤼팽은 대단히 개성적인 인물이며 재능도 출중하다. 비상한 두뇌와 강인한 육체, 얼굴 윤곽까지 바꿔버리는 변장술과 범죄자를 간단하게 제압하는 무술실력까지 모두 갖추고 있다. 하지만 홈스가 어딘가 음울하고 집요하다면, 뤼팽은 발랄하고 유희를 즐긴다.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과 <뤼팽 대 홈스의 대결>에 나오는 뤼팽의 모습은 장난기 많은 모험가다. 모험을 즐기며,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인디아나 존스 같은 유형이다. 범죄자였다가 나중에 형사로도 활약한 실제 인물 비독(영화 <비독>의 주인공)처럼, 프랑스의 국익을 위해 활약하기도 한다. 여섯살에 첫 절도, 열두살에 고아. 네번의 결혼 뒤에도 홀로 남은 뤼팽의 그늘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무려 20권에 달하는 뤼팽 전집에는 내적인 갈등, 미래에 대한 불안, 자아의 혼란 등이 깊이 있게 그려져 있다.
추리소설 전문 출판사 등장할까
현대의 추리소설은 홈스와 뤼팽 그리고 포와로와 엘러리 퀸을 거치면서 거대한 산맥을 이루었다. 서구의 출판시장에서 추리소설을 필두로 한 대중소설은 막강한 권력을 누리고 있다. 특히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된 <양들의 침묵>의 토마스 해리스, <의뢰인> <야망의 함정>의 존 그리샴 등은 가장 인기있는 작가로 꼽힌다. 존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을 본따 지은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 에도가와 란포에서 시작한 일본의 추리소설도 서구 못지않게 광활한 영토를 일구었다. 대중적인 서평 잡지 <다빈치>가 꼽은 지난해 최고의 소설도 미야베 미유키(<화차>의 작가)의 신작 <모방범>이다. 추리소설은 단지 양적인 성장만을 이룬 것은 아니다. 본격문학에서 추리 기법을 도입하는 것을 뛰어넘어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나 폴 오스터의 <스퀴즈 플레이>처럼 경계를 허무는 작품들도 수없이 발표됐다. 최근 출간된 스페인 작가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의 <뒤마 클럽>과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처럼 인문학과 예술학적 지식을 활용하여 지적 욕구를 자극하는 범죄소설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홈스와 뤼팽 전집의 선전과 함께 존 그리샴의 신작 <톱니바퀴>와 레베르테의 <뒤마 클럽>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도 많은 독자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한동안 추리소설의 불모지였던 한국에도 마침내 ‘지적 오락’을 즐길 시점이 온 것일까.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추리소설을 출간하는 출판사가 몇 군데라도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봉석/ 문화평론가

사진/ 뤼팽은 영국의 셜록 홈스가 인기를 끌자 만들어진 프랑스의 괴도신사다. 작가는 도둑 뤼팽을 프랑스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