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이 르포작가 지원 공모제를 시작합니다. <한겨레21>은 최근 ‘공장이 떠난 도시’ 군산 편과 울산 동구 편을 통해 원고지 180장, 200장에 이르는 긴 호흡의 ‘르포 기사’를 선보였습니다. 포털 뉴스 제목만으로 세상사를 알아가는 시대에 <한겨레21>은 긴 기사를 찾아나섭니다. 선악이 불명확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타올랐다 사라지고 마는 일들의 내막을 자세하게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깊이, 사건을 천천히 바라보는 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기자 시선의 한계도 절감했습니다. 김순천 작가는 10여 년 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언론사 간의 경쟁이나 시간의 제약, 취재기자들의 인식상의 한계로 대중매체가 전달하는 정보와 이미지는 서로 동질화되거나 현실의 본모습에 깊게 다가가기 어렵다.” 이런 상황은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과 함께 가속화했습니다. 기자의 직업적 시선을 벗어난, 좀더 가난한, 좀더 사소한 풍경을 포착할 눈을 찾습니다.
무엇보다 <한겨레21>은 르포를 쓰고 싶지만 생활 형편이 어려운 이들의 곤경을 덜어주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지원 공모제는 ‘지속가능한’ 석 달간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식입니다. 나아가 출판사와 연계해 책 출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공모제 속에 마련했습니다. 3개월의 지원금은 액수는 적지만 당신이 시작하고 꿈을 꿀 숨통을 틔워주는 계기가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완성작은 500장 이상의 원고량을 목표로 합니다. 새로운 가치관과 시선을 담은, 발로 뛰어 숨 막히는 현장을 담은, 더불어 세계에 존재한 모든 르포의 기준을 무너뜨리는 기획을 담아 보내주십시오. 르포작가 지원 공모제는 10월에 공모할 픽션 중심 손바닥문학상의 다른 한 축으로, <한겨레21>의 ‘발바닥’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역량 있는 분들의 많은 지원 바랍니다.
나는 2015년 겨울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이하 <지방시>)라는 책을 쓰고 대학에서 나왔다. 누군가는 이것을 고발이나 폭로라고도 했지만, 사실 그런 거창한 내용을 담은 책은 아니었다. 굳이 규정하자면 ‘고백’에 더 가깝다. 그 뒤 나는 <지방시> 연작이라 할 수 있는 <대리사회>(2016)와 <훈의 시대>(2018)를 썼고, 계속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고백은 그 자체로 르포
그런 나를 ‘르포르타주 작가’라고 불러주시는 분들이 생겼다. 그만큼 내가 쓴 책 세 권의 소재와 내용이 평범하지는 않았다. 대학강사, 맥도날드 물류 상하차 아르바이트, 대리운전 기사 등 뭐하는 사람인가 싶을 만큼 이런저런 공간과 노동을 소재로 글을 썼다. 누군가는 왜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는지, 관심받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었는지 묻기도 하지만, 그건 건강보험 등 사회적 보장을 받고 생계를 영위하기 위해 선택한 일이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 뒤의 일이다. 그러나 대리운전은 글을 쓰기 위해 직접 선택한 노동이었으니까, 이것은 기획된 글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요약하면 <지방시>는 대학원생과 시간강사로서 그리고 맥도날드 물류 상하차 노동자로서 대학이라는 노동 공간에 존재했던 젊은 연구자의 서사였고, <대리사회>는 대학에서 나와 대리운전기사로 타인의 운전석에서 노동하며 겪은 경험의 서사였고, <훈의 시대>는 한 개인을 유령이자 대리인간으로 만들어내는 한 시대의 언어를 수집하고 분석한 보고서 같은 것이었다. 온라인서점 알라딘의 사회과학 MD는 <대리사회> 책 소개에서 “르포작가를 꿈꾸고 있다는 그의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내가 정확히 그러한 선언을 한 일은 없지만, 아마도 “계속 거리의 언어를 몸에 새겨나가려고 한다”는 에필로그 문장에서 그 맥락을 읽었을 것이다. 나의 글은 르포르타주 범주에서도 읽히는 모양이고, 나도 그것을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다. 그래서 민망하지만 그 이유에 대한 나름의 고민과, 그에 더해 그런 글이 가지는 책임과 원칙에 대해 제안하고 싶다. 우리 주변에는 “나는…” 하고 시작하는 제목의 책이 많다. 모두가 아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홍세화)가 있고, 최근 책으로는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허혁),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김현아),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유성호) 등도 있다. 나는 그러한 책들이 대개는 르포가 된다고 믿는다. 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신과 그 주변의 서사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무언가를 취재하고 기록하고 보고하는 형식이 아니더라도, 그러한 고백은 그 자체로 르포가 된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맥도날드 알바 중 도로 반사경 앞에서. 대리운전을 하던 어느 날 길거리 풍경. 카카오 대리운전을 시작하고 받은 사원증(?). 대리기사들이 택시를 타는 이른바 ‘택틀’ 중 찍은 사진. 김민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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