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출판사 제공
7월2일 오전 인천 부평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송씨는 2018년 9월 출산하고 이제는 육아일기를 쓴다. 임신일기를 썼을 때처럼 본명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 익명의 힘을 빌려 날것 그대로 삶과 사회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악플과 인신공격이 넘쳐나는 공간에서 자기 삶을 지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송씨는 책에서 임신부의 시선으로 본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없는 사회’를 보여준다. 출퇴근 시간대에 지하철에서 겪은 일화가 대표적이다.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이 도입된 지 6년이 지났지만 임신부 배려석은 비어 있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는 앞에 임신부가 서 있어도 스마트폰만 보는 사람, 임신부라고 해도 “배가 안 나왔는데 임신한 거 맞냐”고 물어보는 사람, 임신부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사람, “나도 힘들다”며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임신부 배지를 달고 상대방에게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요청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런 ‘배려 없는 사회에서 아기를 낳는 게 괜찮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임신부에 대한 배려가 없는 현실은 장애인, 아동 등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이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송씨는 임신했을 때 들었던 말 중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을 한자 한자 적었다. “애가 애를 가졌네” “너 임신했다고 피해의식이 너무 심해졌어” “너만 힘든 거 아니야. 엄마라면 누구나 다 겪는 일이야” 등이다. 이것은 나중에 ‘이런 말은 절대 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적었단다. 배 나온 임부에게 배불뚝이, 배사장, 배장군 등 외모를 비하하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정부에서는 저출산 대책으로 임신부를 위한 제도를 만들지만 촘촘하지 못하다. 송씨는 임신 12주 이내, 36주 이후 여성 노동자가 하루 2시간씩 단축근무를 할 수 있는 임신 기간 단축근무제도를 이용했다. 하지만 “허울 좋은 제도”였다고 말한다. “제도는 있지만 주변 눈치 때문에 단축근무제도를 이용하지 못한 분도 많아요. 그나마 저는 그 제도 덕분에 단축근무를 했어요. 그런데 업무량은 그대로였어요. 그 단축된 시간 안에 일을 다 끝내야 해서 쉴 틈이 없었어요. 입덧에 몸도 안 좋은데 너무 힘들었어요.” 송씨는 그제야 직장에 다니며 임신을 경험했던 선배들이 조용히 임신기의 어려움을 참아내거나 퇴직을 선택한 이유를 알게 됐다. ‘엄마라면 ○○해야 한다’는 모성 강요 그도 임신하기 전에는 몰랐던 또 다른 삶이었다. 임신이라 하면 예쁘게 배 나온 여성이 배 속 아기와 교감하며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이야기만 듣는 모습을 자연스레 연상했을 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배가 불러 “발은커녕 자신의 항문도 스스로 못 닦는 모습을” 전혀 상상도 못했단다. 그렇다고 입덧, 두통, 배뭉침 등 잇따른 임신 이후 겪는 통증을 이야기할 곳도 없었다. “병원에 가서 내 몸이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돌아오는 말은 태아는 잘 큰다, 괜찮다는 거였어요. 내 고통에 대해 귀 기울이고 그걸 완화해줄 방법을 알려주지 않아요. ‘참아라’ ‘견뎌라’는 정도였어요.” 2018년 7월3일 사회에서는 출산을 두려워하면 그 모성을 가볍고 하찮은 것으로 깎아내리고, 두려움을 극복하고 고통을 견디며 출산을 해내면 모성의 힘이라고 찬사를 보낸다. 이 두 가지 모두 모성혐오라고 생각한다. 모성이란 이런 것들로 타인이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든 출산은 개별적이고 저마다의 모성 서사가 있다. 송씨는 임신을 하고 여성에게 모성을 강요하는 사회의 모습을 보게 됐단다. 엄마라면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 보이지 않는 모성 신화의 압박이 있었다. ‘자연분만을 해야 한다’ ‘모유 수유를 해야 한다’ ‘세 돌까지는 엄마가 아이를 키워야 한다’ 등 육아 지침은 넘쳐난다. “출산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으며 아기를 낳아야 모성애가 강한 엄마로 불려요. 엄마니까 모든 고통과 아픔을 견디고 참아야 한다는 식으로 무언의 강요가 있어요. 그걸 견디는 엄마는 모성애 강하고 그렇지 않으면 비정한 엄마가 돼요. 모성 신화에 갇힌 엄마는 이 두 가지 모습뿐이에요. 각각 여성에게는 다양한 삶이 있는데 말이죠.” 송씨는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 이후 이어지는 여성의 재생산권 이야기도 사회 공론장에 띄운다.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선택권은 온전히 여성에게 있어야 하며, 언제든 임신을 선택할 권리도, 중단할 권리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임신과 출산의 주체인 여성에게 그것을 알 권리를 제공하는 게 먼저라고 이야기한다. “임신, 출산, 양육이라는 이 모든 것을 더 이상 여성만 홀로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걸 막기 위한 사회의 지원이 필요해요.” 여자가 싸우지 않아도 되는 세상 위해 싸워 자신을 “차별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로 말하는 송씨는 2016년 서울 강남역 살인 사건이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과 부당함에 눈뜬 것이다. 그는 “항상 1등을 하고 반장을 하고, 난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대학에서 공부할 때까지였다”고 말했다. 전공을 살려 직장을 얻기도 힘들었고 같은 나이의 남성 동기생과 비교하면 그들 월급의 60% 정도 받았다. 그런 그가 여성인 딸에게 물려주고 싶은 건 “여자가 싸우지 않아도 되는 사회”라고 한다. 아기 출생신고서에 부모가 남기고 싶은 말을 적는 칸에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라고 썼단다. 책의 ‘작가의 말’에도 적었듯 “아기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꿈꾸고 누리고 성취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성별, 외모 등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 때문에 차별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여자가 싸우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우겠다고 한다. 이 사회를 향해 외친다. “임신 경험은 저마다 다르고, 여성들의 서사는 납작하지 않습니다. 나는 아기 캐리어(운반책)가 아닙니다.”
여성의 시점에서 쓴 임신·출산 이야기
아이 낳는 일은 이런 거였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