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영화사 그램 제공
하지만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이 한명 한명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마쓰다 마사토라는 사람의 인상은 점점 새롭게 조립된다. 그들의 증언 속에 마쓰다는 “고민을 잘 들어주는 사람” “고음은 안 올라가지만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 “종교 집단에 빠질 뻔한 위험에서 건져준 사람” “스포츠신문의 야한 기사를 많이 스크랩하던 사람” “야구공 만드는 마술을 좋아하던 사람” “아들이 어린 시절 쓴 글쓰기 원고를 여전히 간직한 사람”이다. “마쓰다는 한마디로 바보였어요. 사람이 워낙 착하니까 돈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 못 본 체를 못했죠. 대부분 안 갚고 도망쳤고요. 하지만 마쓰다는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모두 “사람이 너무 착해서 탈”이라고 입을 모은다. 장례식이 시작되고 아버지의 영정 사진은 마치 각 이야기의 쉼표처럼 반복해 삽입된다. 그리고 배우 릴리 프랭키의 얼굴은 점점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그렇게 바보처럼 착한 고인이 싫지 않았어요. 사실 좋아했죠.” 71분의 간결하고도 묵직한 영화가 끝나갈 때쯤 아들 역시 “아버지를 싫어하지만 조금은 좋아하는 것도 같다”고 고백한다. 릴리 프랭키, 본명은 나카가와 마사야. “수수께끼 같은 이름을 짓고 싶다”고 생각해 지은 독특한 필명은 대학 시절 단짝 친구와 그를 두고 마치 “장미와 백합 같다”고 표현한 데서 따온 ‘릴리’(백합)라는 이름과 밴드 ‘프랭키 고즈 투 할리우드’(Frankie Goes To Hollywood)에서 따온 ‘프랭키’라는 성을 조합해 만들었다. 작사와 작곡을 할 때는 ‘엘비스 우드스탁’(Elvis Woodstock)이라는 활동명을 쓰고 있기도 하다. 백합의 이름, <도쿄 타워>의 베스트셀러 작가 2006년 홀로 자기를 키운 어머니와 어머니의 투병 생활을 지켜보던 자기 이야기를 써내려간 소설 <도쿄 타워>가 2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유명 작가가 되었고, 이 이야기는 곧 오다기리 조와 기키 기린이 주연한 영화 <도쿄 타워>로 재탄생됐다. 배우로서 삶은 2005년 감독 이시이 데루오가 <눈먼 짐승 대 난쟁이>에서 연기 경험이 전무한 그를 파격적으로 캐스팅하면서 열렸지만, 아마도 많은 한국 관객에게 이 배우가 처음 인지된 시점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부터였을 것이다. 크지 않은 키에 왜소한 체격, 힘없이 살짝 벗긴 머리, 듬성듬성 난 콧수염과 턱수염, 작은 얼굴에 딱히 특징을 찾아볼 수 없는 심심한 이목구비는 여러 창작자를 만나 다양한 캐릭터의 옷을 입으며 완전 다른 인상들을 만들어낸다. 소리 없이 입을 벌린 미소 속에 살짝 느슨해져 있을 때 릴리 프랭키와 작은 입을 꽉 다물고 초점을 바짝 쪼았을 때 릴리 프랭키의 인상은 확연히 달라진다. 때론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보이지만 때론 이보다 더 현실적이고 속물적일 수 없다. <아름다운 별>(2017)에서 릴리 프랭키는 직장 동료와 바람피우는 권태로운 중년처럼 보이지만 실체는 지구에 떨어진 화성인이었다. 극단적인 캐릭터로 보자면 <라플라스의 마녀>(2018)의 뇌과학 박사나 <흉악-어느 사형수의 고발>(2013)의 부동산 중개인 기무라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흉악한 범죄를 지시하는 배후의 ‘선생님’ 기무라는 돈을 위해서라면 어떤 잔혹한 범죄도 서슴지 않는 “죽음을 돈으로 바꾸는 연금술사”였다. 가장 속물 같은 동시에 가장 자유인 같은, 가장 공동체적 인간인가 하면 가장 개인적인, 가장 미쳐 있는 동시에 가장 일상적인 인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런 릴리 프랭키의 본성을 자신의 영화 세계 안에서 최적의 비율로 배합해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아버지는 아이가 뒤바뀐 소송 덕분에 얻게 될 위자료에 기대를 내비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놀아주는, 이보다 더 다정할 수 없는 아버지다.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의 푸근한 동네 아저씨이자 순애보의 주인공은 비극에 대한 감각을 항시 잃지 않은 상태에서도 인생에 대해 관조하는 사람이다. <어느 가족>(2018)의 아버지는 좀도둑으로 생계를 연명하는 처지에도 세상에 버려진 것들에 대한 측은지심을 거두지 못하는 남자다. <태풍이 지나가고>(2016)의 흥신소 소장을 연기할 때는 “어떤 사람의 과거가 될 용기를 가져야 진정한 어른이 되는 거야” 같은 명언을 던지는 중에도 자기 몰래 딴 주머니를 찬 직원에게서 돈봉투를 살뜰히 뺏아간다.
(왼쪽 위부터)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태풍이 지나가고>(2016) <아버지와 이토씨>(2016) <어느 가족>(2018). 각 영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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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머리 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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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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