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정치학>의 저자 케이트 밀릿. 한겨레 자료
<성의 정치학>은 D. H. 로런스(<채털리 부인의 사랑>), 헨리 밀러(<섹서스>) 같은 거장 작가들을 '가부장제의 대리인'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다. 그들이 문학을 통해 남성은 지배자이고 여성은 피지배자라는 인식을 확고히 했다는 점 때문이다. “남성에게 권력이 집중된 부권제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그 성격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남성 거장 작가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이 책은 발간 2주 만에 1만 부가 팔릴 만큼 화제가 되었다. 밀릿은 ‘여성 운동의 마오쩌둥’(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단풍을 화냥기에 비유한 이외수의 시 밀릿은 참정권 운동을 중심으로 한 1세대 페미니즘 운동이 근본적인 사회변혁에 실패한 것은, 가부장제적 문화를 해체하거나 새로운 문화를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콤플렉스와 같이 여성을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만 이해하는 이론이 문화의 틀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은 얌전하고 관계지향적이며 수동적이라는 속성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에게 남성과 같은 일자리, 같은 임금, 같은 권리를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남성중심주의는 물리적 힘이 아니라 생물학적이지 않은 가치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것에 달려 있다” “여성의 수동성은 항상 해부학에서 추론되는 것인 반면, 남성적 행위는 일반적으로 역사와 기술에서 추론된다”는 밀릿의 지적은 정전화된 문화, 규범, 문학이 만들어낸 가치 구조를 비판한다. 밀릿은 로런스나 밀러가 재현하는 여성 섹슈얼리티는 남성이 원하는 판타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문학사의 거장 작가들이 여성을 모욕하고 공격하기 위해 섹스를 이용한다고 지적한다. 밀릿의 외침은 최근 한국 사회가 경험하는 한국문학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만난다. 일례로 ‘단풍’을 ‘화냥기’로 비유한 이외수의 시를 패러디하거나 김훈의 소설 <언니의 폐경>이 여성의 월경을 묘사하는 장면을 비판하는 독자들의 목소리가 소셜네트워크 공론장에 전해지고 있다. 이는 비평가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비전과 시각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등장시키는 방식이다. 밀릿이 <성의 정치학>을 쓸 때, 그는 조각가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대학 강사 자리에서 쫓겨날 위기에 놓였다. 누구도 그가 페미니즘 문학 비평의 고전을 저술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미학적인 것으로 정의된 가치에 물음표를 던지고 이데올로기화된 정전을 거슬러 읽었다. 이 방법은 페미니즘 문학 비평의 기본 원리가 되었다. 여성 반영한 새로운 비평과 문학 출현 페미니스트 시인 에이드리엔 리치는 “뒤돌아보고, 참신한 눈으로 바라보며, 새로운 비평의 방향으로 옛 텍스트에 진입하는 행위”를 ‘다시 보기’(re-vision)라고 명명했다. ‘#문단_내_성폭력’ 문제에 맞서 싸운 고양예고졸업생연대 ‘탈선’은 “더 이상 우리는 우리가 써내려갈 문학의 이름을, 환경에 종속되고 부여받는 성질로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게르니카를 회고하며’, <문학과 사회> 2016년 겨울, 150쪽)라고 선언했다. 이는 새로운 문학을 만들 것임을, 성정치학을 본격화한 텍스트 읽기에서 더 나아가 텍스트 쓰기로 나아갈 것임을 의미한다. <82년생 김지영>이 불러온 페미니즘 소설 열풍은 새로운 작가와 독자를 발굴했다. 이제 우리는 더 많은 여성 서사와 만날 것이다. 그래서 여성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일종의 투쟁이 된다. <성의 정치학>의 1990년 판본 서문에서 케이트 밀릿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 투쟁은 쉽지는 않아도 늘 흥미롭다. 그리고 인간 자유의 영역을 넓히는 일은 너무나 멋진 작업이어서, 여기에 함께하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다.” 그처럼 나 역시 지금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문학, 새로운 독자와 함께하는 것이 참으로 행운이다. 허윤 문학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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