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우연한 만남도 어려운 고층 아파트 유현준 건축가가 쓴 <어디서 살 것인가>를 보면 대규모 고층 아파트는 소통을 삼킨다. 로버트 거트만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1·2층 저층 주거지 사람들이 고층에 사는 사람보다 친구가 세 배 많고 공동체 소속감을 더 느낀다고 설명했다. 엘리베이터로 층간 이동을 하면 우연한 만남의 여지가 줄고 소통이 단절된다. 자기 공간 하나 마련하려면 등골이 빠져야 하는데 누릴 수 있는 공간은 줄었다. 골목이 사라졌다. 그는 여기 이곳의 삶을 연병장 막사를 닮은 학교를 졸업해 비슷한 고층 아파트에 살다 비슷한 납골당에 안치되는 것으로 요약했다. 기를 쓰고 살면 그 정도라 하겠다. 건물이나 도로나 너무 크면 정을 붙일 수 없다. 사람 몸에 580배인 학교 건물은 ‘시설’이 된다. 3차선 넘는 길은 이쪽과 저쪽을 가른다. 대로가 쭉쭉 뻗은 강남 테헤란로가 아니라 꼬불꼬불한 삼청동길을 사람들이 산책하는 까닭이다. 인간은 변화를 갈망하도록 프로그램화돼 있는데 하늘을 보며 걸을 수 있는 길이 줄어드니 변화의 열망은 쇼핑몰, 영화관에서 푼다. 그냥저냥 아는 얼굴, 하나 마나 한 인사말이 주는 안정감이 있다. 혼자 사니 이웃이 친구만큼 절실하다. 서울에서 경기도 고양 일산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은 밤 11시께 가장 붐빈다. 다들 아침에 서울로 갔다 밤에 돌아온다. 꼬박 서서 오다보면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한 구절이 떠오른다. 칼잠 자야 하는 감옥에서 가장 괴로운 계절은 여름이라고, 체온 탓에 사람이 미워지기 때문이라고 썼다. 지하철은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공간이다. 집에 돌아와 철문을 닫으면 몇백 명과 2년을 함께 산 이 아파트에서 내 존재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막막해진다. “무서운” 할머니와 “웬수댕이” 김 과장의 ‘티키타카’ 대화를 들을 시간이다. 아주머니가 살짝 웃어줬다 이 생에선 마당 있는 집에 살 수 없을 거다. 매달 나오는 관리비만큼 예상 가능한 일이다. 서울 멀리 떠나선 밥 벌어먹고 살길이 막막하고 서울 근처에선 내 묏자리만 한 땅도 사기 어렵다. 다행인지 내가 사는 25년 된 아파트는 복도식이라 문을 열면 우연히 옆집 사람들과 마주칠 확률이 새로 지은 아파트에서보다 높다. 집 앞 편의점에서 과자를 사 들어오는데 옆옆집 파마머리 50대 아주머니가 문을 열고 있다. 눈이 마주쳤다. 복도는 길었다.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인사를 해볼까 하다가도 이상한 여자같이 보일까 엄두가 안 났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아주머니가 살짝 웃어줬다. “안녕하세요.”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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