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일상을 기록한다는 것
성미산판 <보이후드>를 꿈꾸며
등록 : 2019-06-13 10:52 수정 : 2019-06-13 11:08
“아빠!” 집 주차장에 들어선 순간 도담이(사진)에게 딱 걸렸다. 아내가 출장 갔던 지난주 목요일(5월30일), 마감을 후다닥 끝내고 집에 차를 넣어놓고 번개 모임에 참석하려던 계획이었다. 아니 웬걸, 마침 도담이가 외할머니 손을 잡고 분리수거를 하러 주차장에 나온 바람에 꼼짝없이 붙잡혔다. 번개는커녕 도담이를 재운 뒤 텔레그램 방에 올라온 번개 사진들을 보며 ‘이불킥’을 했다.
그날 가지 못한 번개 모임은 어린이집 ‘아마’(아빠와 엄마의 합친 말)들의 다큐멘터리 제작회의다. 아마들은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놀이를 통해 함께 생활하고 자라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로 했다.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할 사람을 모을 때 자원한 건 도담이의 현재 모습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물론 스마트폰 카메라로 가정에서도 언제 어디서나 아이가 놀고 먹고 자는 모습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해 저녁이 돼야 퇴근하는 맞벌이 직장인인 까닭에 도담이가 어린이집에서 무엇을 하는지 날마다 궁금하다. 다큐멘터리 작업에 참여해 도담이가 다른 친구, 언니 오빠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그들과 무엇을 하며 놀 때 가장 행복한지를 지켜보고 싶다.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싶은 건 영화 <보이후드>(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2014)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카메라가 주인공 소년 메이슨과 그의 누나 사만다 그리고 남매의 엄마(패트리샤 아퀘트), 그녀와 이혼한 아빠(에단 호크) 등 네 가족의 사연을 12년 동안 담아낸 이야기다. 가족을 연기한 배우들은 12년 동안 해마다 한 주씩 모여 영화를 찍었다. 실제 가족이 아닌데도 영화 속 캐릭터를 연기하는 아이들이 별 탈 없이 자라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다큐멘터리처럼 찍는 극영화라는 사실이 개봉 당시 크게 화제가 되었다.
일 때문에 제작회의에 한 번도 참여하지 못했지만 텔레그램 방에 올라온 공지와 회의록을 보면서 진행 과정을 간신히 따라가고 있다. 얼마 전 ‘집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찍어서 텔레그램 방에 올리고, 그 영상을 어떤 목적으로 찍었는지 줄거리를 남기자’는 공지가 올라왔다.
그 공지를 보고, 자기주장이 늘었는지 최근 목소리가 부쩍 커진 도담이가 떠올랐다. “뿡뿡” 소리를 낸 뒤 두 손으로 자동차 운전대를 잡는 흉내를 내며 드라이브하러 가자고 요구하질 않나.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길바닥에 벌러덩 누워 큰 소리로 울지 않나. 놀고 또 놀아도 성에 안 차는지 집에 가기를 거부한 채 계속 놀기를 좋아하지 않나. 그뿐이랴, 색을 구분할 줄 아는 능력도 생겼다. 엄마가 입은 검은색 티셔츠를 가리키며 자기가 입은 검은색 바지와 똑같다고 “우와” 하고 외친다.
예고 없이 벌어지는 아이의 변화와 성장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일도 즐겁지만, <보이후드>가 그랬듯이 아이의 일상을 꾸준히 찍는 것도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혹시 아나, 성미산판 <보이후드>가 나올지.
글·사진 김성훈 <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