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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핑크 플로이드와의 근접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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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3-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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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 대한 신랄한 독설 [The Wall]을 만든 로저 워터스가 온다

70년대 말 미국 노래에 빠진 젊은이들이 경쟁적으로 수집하던 ‘빽판’ 리스트에 꼭 들어가는 음반이 있었다. 당시 국내에서 발매 금지되어 있던 핑크 플로이드의 이 그것이다. 음반가게 깊숙한 구석에서 꺼내는 이 음반을 손에 넣는 것은 강압적인 기성세대에 대한 반역이면서, 자신의 세련된 음악적 취향을 승인받는 행위기도 했다. 젊은이들의 이 은밀한 숭배는 엄청난 규모의 투어- 뉴욕, LA, 런던, 도르트문트 등 4개 도시에서만 열리던 이 투어의 제작비 기록은 이후 10년 동안이나 깨지지 않았다-실황과 영화 <핑크 플로이드의 벽>(1983)의 불법복사 테이프를 돌려보는 것으로 이어졌다.

무의식의 세계에서 저항으로

사진/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광기와 무의식을 현대사회에 대한 고발로 이끈 로저 워터스, 그가 핑크 플로이드 시절의 히트곡을 들려주려고 한국에 온다.
오는 4월2일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에서 열리는 로저 워터스의 서울공연은 핑크 플로이드 공연 신화의 흔적과 잔상을 경험할 수 있는 무대다. 로저 워터스는 1965년 런던에서 건축학교의 동기들과 핑크 플로이드를 결성한 인물. 밴드 초기에는 ‘천재광인’으로 알려진 시드 배럿의 주도로 사이키델릭한 음악세계를 다져나가다가 배럿이 약물 과용으로 도중하차하자 워터스는 팀을 탈퇴하는 81년까지 핑크 플로이드의 실질적 리더로 활동했다. 배럿의 자리를 메운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길모어의 탁월한 연주와 로저 워터스의 음악적 상상력이 빚어낸 (1973)은 수퍼밴드의 탄생을 알린 앨범. 8백 주 가까이 빌보드 차트 200위 안에 머물던 이 음반은 핑크 플로이드를 클래식 록의 판테온으로 인도했다.


이 시기에 보여준 광기와 무의식의 세계는 서서히 현대사회에 대한 고발로 나아가는 데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사람이 로저 워터스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음악으로 만든 아홉번째 앨범 에서 이미 인간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한 워터스는 79년 현대인의 소외와 공포를 하나의 줄거리로 잇는 당대의 문제작 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핑크 플로이드 음악의 정점을 이룬 이 음반을 계기로 팀간 불화는 메워질 수 없는 골을 만들었다. 이전의 함축성이나 상징성이 사라지고 직설적인 독기를 품은 워터스의 음악적 성향이 팀 전체를 지배하자 다른 멤버들이 반기를 들고 나선 것. 결국 81년 워터스는 팀을 탈퇴하고 길모어를 포함한 나머지 멤버가 새롭게 팀을 조직했는데 둘 사이에는 ‘핑크 플로이드’라는 팀이름 사용권한 소송까지 벌어진다. 승소한 길모어측은 88년 핑크 플로이드라는 이름으로 음반과 비디오를 내 그럭저럭 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핑크 플로이드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을 들어야 했다. 로저 워터스 없는 핑크 플로이드란 존 레넌 없는 비틀스처럼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화려한 볼거리도 선사

이번 공연에서 핑크 플로이드라는 이름을 만날 수는 없지만 핑크 플로이드와의 근접 조우를 기대할 수 있는 까닭은 이 팀의 대표작들을 만들어낸 로저 워터스 때문이다. 투어를 비롯해 거대한 인조 벽을 부수고 밴드가 튀어나오는 등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 워터스답게 이번 무대를 위해서도 대규모 장비와 스태프를 원했다. 무엇보다 기대되는 것은 공연장 안에 구축한 360도 서라운드 음향 시스템. 핑크 플로이드 사운드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는 360도 서라운드 음향을 처음으로 현장에서 맛볼 수 있다. 또한 45m 너비의 무대 위에 로저 워터스 쪽이 공수해온 너비 25m의 스크린을 띄워, 공연하는 동안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에서 등장하던 수많은 동영상과 이미지들을 투사할 계획이다. 무대가 되는 올림픽 주경기장은 4만석 규모지만, 투어 때 9만 관객에게 둘러싸여 군림하는 자신에게 환멸을 느껴 이후부터 “관객과 교감 불가능한 규모의 공연장에서는 공연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워터스의 부탁으로 1만2천석의 좌석만 준비했다. (공연문의 02-399-5888)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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