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보노보 몸속에서 생사기로에 서다

신작 <진이, 지니>로 3년 만에 돌아온 정유정 작가 인터뷰 “극단의 절정 쓰다가 고요한 절정 신 쓰려니 너무 어려웠다”

1265
등록 : 2019-05-31 13:50 수정 :

크게 작게

“제 소설은 질문에서 시작해요. ‘예스, 노’ 단답형으로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그런 질문, 소설적 질문이죠. 이번 소설의 질문은 ‘죽음 앞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는 유효한가’였어요.”

5월24일 오후 서울 서교동 은행나무출판사에서 만난 정유정(53) 작가는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죽음과 자유의지. 그 질문을 2년여간 곱씹으며 소설 <진이, 지니>를 썼다. <진이, 지니>는 영장류 보노보 ‘지니’의 몸에 영혼이 들어간 사육사 ‘진이’의 이야기다. 지니의 몸을 빌려 계속 살아갈지, 아니면 영혼의 소멸을 택할지 기로에 선 진이의 갈등과 선택을 그린다.

보노보 몸에 영혼 들어간 사육사

정유정 작가는 3년 만에 발표한 신작 “<진이, 지니>는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2007), <내 심장을 쏴라>(2009)에 이은 ‘자유의지’ 3부작의 완결판”이라고 말한다. 청소년 성장소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에서는 15살 사춘기 소년들의 자유의지를, <내 심장을 쏴라>에서는 세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25살 청년들의 자유의지를, <진이, 지니>는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마지막 자유의지를 그리기 때문이다.

그에게 자유의지는 영원한 문학 테마다. “작가에게는 자신만의 테마가 있어요. 헤밍웨이는 죽음, 스티븐 킹은 인간의 공포, 찰스 디킨스는 아버지를 찾아헤매는 아들을 주제로 썼어요. 저는 인간의 본성과 자유의지를 변주하며 쓰고 있어요. 그 테마는 작가의 성향과 성장 환경, 경험이 총제적으로 합해져 생기는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지 못한 시간이 있었기에 자유의지라는 테마를 갖게 됐다. 어릴 적부터 작가가 꿈이었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꿈을 접었다. 문학도의 길을 가는 대신 간호대학에 들어가 간호사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쓴 건 35살쯤이었고 41살에 등단했어요. 다른 작가들과 비교해 늦은 편이었죠. 그런데 엄마가 작가가 되는 걸 반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밀어줬다면 일찍 작가가 됐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사람 마음이 그렇잖아요. 누가 못하게 하면 더 오기로 하고 싶은 마음 같은 거요. 돌이켜 생각하니 그렇게 어머니가 반대하셨으니 저에게 이런 테마가 생기고 작가가 된 것 같아요.”


그의 또 다른 테마는 죽음이다. 20대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죽음이 트라우마가 됐다”고 한다. “죽음이 두려웠어요. 그 두려움의 이유가 다들 사랑하는 이와 헤어진다는 것 때문이잖아요. 저는 나 자신과 헤어지는 게 두려웠어요. 다시는 나를 인식하지 못하고 나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고 하늘의 별도 볼 수 없다는 것 때문에 그랬죠. 전 자기중심적인 사람인가봐요.(웃음)”

어머니를 잃고 그는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줄곧 생각했다. <진이, 지니>를 쓰며 어머니가 떠나던 29년 전 그날로 되돌아갔다. 그때부터 이어진 죽음에 대한 물음의 답을 소설 속에서 해나갔다. “죽음이라는 기차가 플랫폼에 멈춰서 ‘너, 타!’ 할 때까지 자기 삶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죽음을 의미 있게 만들고, 삶을 의미 있게 한다.” 그의 이런 생각은 소설에 나오는 진이 친구 민주의 이야기 속에 오롯이 담겼다. “그녀는 내게 삶이 죽음의 반대말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삶은 유예된 죽음이라는 진실을 일깨웠다. 내게 허락된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내가 존재하지 않는 영원의 시간이 온다는 걸 가르쳤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 나는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삶을 가진 자에게 내려진 운명의 명령이었다.”(<진이, 지니> 중에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때 인간다워질 수 있어”

그는 죽음과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의 존재를 등장시킨다. 바로 또 다른 주인공 보노보 지니다. “인간과 유전자가 98.7% 일치하는 보노보는 연대의식과 공감·인지능력이 뛰어나요. 수컷 중심 사회에, 서열 중심인 침팬지와는 다르죠. 보노보가 제가 상상한 사육사 진이 캐릭터랑 잘 맞더라고요.” 그런 지니는 진이가 좀더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진이는 지니 몸에 들어가 인간이 아닌 동물로 살면서 겪는 고통을 느낀다. 지니가 살아온 시간을 보며 모든 생명에는 저마다의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인간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때 비로소 인간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공감이 가장 인간다운 것이죠.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소통할 때 공감이 가능해져요.”

그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전작들과는 다른 밀도와 에너지가 필요했단다. 특히 ‘악의 3부작’이라고도 하는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이 인간 내면의 어두운 숲을 탐색하는 스릴러와는 달랐다. “마지막 장인 ‘12장 진이, 지니’ 부분이 쓰기 가장 힘들었어요. 그것이 이 소설에서 절정 부분이에요. <종의 기원> <28>에서는 절정 부분에 이르면 액션도 많고 잔인함도 극단으로 갔어요. 모든 갈등이 ‘빵’ 하고 폭발했죠. 그렇게 쓰다보니 처음에 이 소설에서도 절정 부분에 오토바이 액션 신을 넣었는데 그걸 썼다가 통째로 들어냈어요. 이번 작품에서는 잔잔하게 자기 삶을 마무리하는 절정을 만들어야 했어요. 고요한 절정, 그게 정말 어려웠어요. 그런 걸 처음 써보니까요. 한 3주 정도 화면 앞에서 열 몇 시간씩 앉아만 있었어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계속 고민만 했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2007년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등단한 그는 이 작품을 계기로 소설가로서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진이, 지니> 전까지는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하며 정유정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진이, 지니>를 쓰면서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고 이야기를 풍요롭게 하는 데 에너지를 썼어요. 다음 작품도 그럴 거예요. 밀도 있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한겨레21>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한겨레21>이 기존 구독제를 넘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한겨레21>은 1994년 창간 이래 25년 동안 성역 없는 이슈 파이팅, 독보적인 심층 보도로 퀄리티 저널리즘의 역사를 쌓아왔습니다. 현실이 아니라 진실에 영합하는 언론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투명하면서 정의롭고 독립적인 수익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한겨레21>의 가치를 아는 여러분의 조건 없는 직접 후원입니다. 정의와 진실을 지지하는 방법, <한겨레21>의 미래에 투자해주세요.

*아래 '후원 하기' 링크를 누르시면 후원 방법과 절차를 알 수 있습니다.

후원 하기 http://naver.me/xKGU4rkW

문의 한겨레 출판마케팅부 02-710-0543

독자 퍼스트 언론, <한겨레21>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