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또 다른 테마는 죽음이다. 20대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죽음이 트라우마가 됐다”고 한다. “죽음이 두려웠어요. 그 두려움의 이유가 다들 사랑하는 이와 헤어진다는 것 때문이잖아요. 저는 나 자신과 헤어지는 게 두려웠어요. 다시는 나를 인식하지 못하고 나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고 하늘의 별도 볼 수 없다는 것 때문에 그랬죠. 전 자기중심적인 사람인가봐요.(웃음)” 어머니를 잃고 그는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줄곧 생각했다. <진이, 지니>를 쓰며 어머니가 떠나던 29년 전 그날로 되돌아갔다. 그때부터 이어진 죽음에 대한 물음의 답을 소설 속에서 해나갔다. “죽음이라는 기차가 플랫폼에 멈춰서 ‘너, 타!’ 할 때까지 자기 삶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죽음을 의미 있게 만들고, 삶을 의미 있게 한다.” 그의 이런 생각은 소설에 나오는 진이 친구 민주의 이야기 속에 오롯이 담겼다. “그녀는 내게 삶이 죽음의 반대말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삶은 유예된 죽음이라는 진실을 일깨웠다. 내게 허락된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내가 존재하지 않는 영원의 시간이 온다는 걸 가르쳤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 나는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삶을 가진 자에게 내려진 운명의 명령이었다.”(<진이, 지니> 중에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때 인간다워질 수 있어” 그는 죽음과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의 존재를 등장시킨다. 바로 또 다른 주인공 보노보 지니다. “인간과 유전자가 98.7% 일치하는 보노보는 연대의식과 공감·인지능력이 뛰어나요. 수컷 중심 사회에, 서열 중심인 침팬지와는 다르죠. 보노보가 제가 상상한 사육사 진이 캐릭터랑 잘 맞더라고요.” 그런 지니는 진이가 좀더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진이는 지니 몸에 들어가 인간이 아닌 동물로 살면서 겪는 고통을 느낀다. 지니가 살아온 시간을 보며 모든 생명에는 저마다의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인간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때 비로소 인간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공감이 가장 인간다운 것이죠.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소통할 때 공감이 가능해져요.” 그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전작들과는 다른 밀도와 에너지가 필요했단다. 특히 ‘악의 3부작’이라고도 하는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이 인간 내면의 어두운 숲을 탐색하는 스릴러와는 달랐다. “마지막 장인 ‘12장 진이, 지니’ 부분이 쓰기 가장 힘들었어요. 그것이 이 소설에서 절정 부분이에요. <종의 기원> <28>에서는 절정 부분에 이르면 액션도 많고 잔인함도 극단으로 갔어요. 모든 갈등이 ‘빵’ 하고 폭발했죠. 그렇게 쓰다보니 처음에 이 소설에서도 절정 부분에 오토바이 액션 신을 넣었는데 그걸 썼다가 통째로 들어냈어요. 이번 작품에서는 잔잔하게 자기 삶을 마무리하는 절정을 만들어야 했어요. 고요한 절정, 그게 정말 어려웠어요. 그런 걸 처음 써보니까요. 한 3주 정도 화면 앞에서 열 몇 시간씩 앉아만 있었어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계속 고민만 했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2007년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등단한 그는 이 작품을 계기로 소설가로서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진이, 지니> 전까지는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하며 정유정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진이, 지니>를 쓰면서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고 이야기를 풍요롭게 하는 데 에너지를 썼어요. 다음 작품도 그럴 거예요. 밀도 있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글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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