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스톤은 <성의 변증법>에서 좌파가 믿고 따라왔던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빌려와 이론적 대결을 시도한다. 그는 가부장제가 여성을 “종족을 유지하게 해주는 노예 계급”으로 만들었으며, 여성과 아동은 가부장의 통제 대상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파이어스톤은 이를 ‘성적 계급’(sex class)이라고 한다. 그는 남녀 간의 자연적 차이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관계를 만들었고, 최초의 노동 분업을 가져왔다고 지적한다. 임신·출산·육아를 여성의 영역으로 확정하는 성별 분업이 문화적으로 스며들어 남자다움, 여자다움이라는 심리적 차원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통파 유대교 집안에서 가부장인 아버지와 싸우며 성장한 파이어스톤은 남성 어른 중심의 전통적 가족 구조야말로 여성 억압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더불어 임신과 출산을 비롯한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가 차별로 이어진다는 점을 강하게 비판한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그는 이렇게 외친다. “페미니스트 혁명의 최종 목적은 (중략) 남성 특권의 철폐뿐만 아니라 성 구분 그 자체를 철폐하는 것이어야 한다. 인간 존재 사이에 생식기의 차이는 더 이상 문화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양성 모두를 위한 단성에 의한 종족의 생식은 인공 생식으로 대치될 것이다.” ‘아빠도 육아휴직’만으론 안 된다 그는 ‘양육의 사회화’를 이야기한다. “여성을 생식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고 양육의 역할을 여성뿐 아니라 남성, 즉 사회 전체로 확산”시켜야 한다고. 이는 “여성과 아이들에게 경제적 독립에 기초한 정치적 자율성을 주며” “여성과 아이들을 사회에 전면적으로 통합시킬 것”을 요구한 것이다. 파이어스톤이 말하는 양육의 사회화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진행되는 공동양육이나 육아휴직의 문제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여자아이들은 인형을 가지고 놀고, 남자아이들은 총 놀이를 하는 식의 성별 구분에 반대했던 내 친구는 비폭력 발도르프식 공동육아를 주도했다. 하지만 공동양육 프로그램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다수의 엄마였고, 엄마들 사이에서는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을 둘러싸고 토론이 벌어졌다. “남자아이니까 조금 뛸 수도 있다”는 말, 우리 사회에서는 무척 당연하게 통용되는 이 말에 반기를 들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아이를 키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친구는 마을공동체를 통해 아이들을 함께 기르려고 시도했던 이들은 대부분 여성이었지만, 구청에 육아 단체를 등록하는 것은 남성들이라며 한탄했다. 집을 만드는 것은 여성이, 집에 문패를 다는 것은 남성인 형국이었다. 파이어스톤이 말하는 가족제도의 해체나 양육의 사회화는 성별에 따라 다른 사회적 규칙을 없애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니 단순히 ‘아빠도 아이를 돌본다’ 혹은 ‘아빠도 육아휴직을 한다’는 방식의 사고로는 도달할 수가 없다. 대기업에 다니면서 육아휴직을 했던 한 지인의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산에 오르는 공동육아에 참여했다. 그는 1년 내내 그 모임의 유일한 남성 회원으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애쓴다면서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리도 곧잘 양보받지만, 여자인 친구가 아이를 데리고 나갈 때는 아무도 짐 한번 들어준 적이 없는 동네였다는 데 말이다. 가족 구조를 해체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한다는 것은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점에서 파이어스톤이 1960년대에 꿈꿨던 비전은, 2019년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정치적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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