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아이돌 팬을 ‘빠순이’라고 하는 이유 ‘방탄’ 리더 RM이 쓴 노랫말은 지연씨에게 자꾸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을 따라가다 자기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우울을 봤다. 거기 없는 척 오래 숨겨놨던 감정이었다. “나의 키는 지구의 또 다른 지름. 나는 나의 모든 기쁨이자 시름.”(<리플렉션>) 이 노래로 지연씨는 우울을 껴안았다. 그래서 지난 2년 동안 점점 더 자기를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 “이제까지는 뭐에 끌려가며 살았던 거 같거든. 나 받아주는 학교, 회사 들어가고… 내가 우울한 사람인 게 부끄러웠어. 그런데 RM 노래를 듣다 나를 사랑한다는 게 뭘까 생각하게 되더라.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이게 내가 느끼는 나구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좋아졌어.” 그런 느낌이 강렬해지면서 가만있을 수 없게 됐다. 블로그에 글을 썼다. 자기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방탄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20살 차이라도 상관없었다. 마리 루티는 사랑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고 했다. 그 이상이다. “(사랑은) 잠자고 있던 우리 존재의 일면을 일깨워주고 더 다차원적인 미래를 불러들이며 우리의 개성에 깊이와 밀도를 부여합니다.”(<하버드 사랑학 수업>) 나는 지연씨의 짝사랑이 부럽다. 내게 취향은 간판이다. 영화 <러브스토리>의 여자 주인공처럼 바흐나 모차르트, 재즈를 좋아해야 인정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좋아한다고 떠벌린 어느 뮤지션 공연에 갔다 깊은 수면에 빠지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홍길동이구나. 좋아하는 척을 오래 하니 진짜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취향을 트로피 삼아 타인과 나를 구별 짓고 위에 서고 싶었던 거 같다. 내가 동경하는 그룹에 끼려 취향을 가장하기도 했다. 클래식 마니아는 ‘문화인’이지만 아이돌 팬은 ‘빠순이’다. 아이돌이 국위 선양을 해야 그 팬들은 ‘빠순이’라는 모욕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강준만, 강지원은 책 <빠순이는 무엇을 갈망하는가?>에서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지적했듯이, 취향은 계급이건만, 우리는 계급 비판은 금기시해도 취향 비판은 비교적 자유롭게 하는 경향이 있다”며 “취향에 급을 매기려 드는 남성은 여성 수용자에 의해 흥행 성공을 거둔 대중문화를 폄하하면서 여성 폄하까지 곁들이는 일을 자주 한다”고 썼다. 지연씨의 사랑은 편견 따윈 예전에 훌쩍 넘어섰다. 보답을 바라지 않으니 상처로부터 ‘방탄’ 무엇보다 부러운 건 이 사랑으로 상처받을 일이 없다는 점이다. 되돌려받기를 바라지 않는 사랑이니 상처로부터 ‘방탄’이다. 완벽한 타인에게 기꺼이 주는, 고통이 없는 짝사랑이다. 현실 인간에게서 ‘그것’을 찾아헤매다 얼마나 많은 뇌진탕급 뒤통수를 맞나. 불안하지 않은 나로 돌아갈 곳을 찾아 얼마나 헤매나. 지연씨는 그럴 때 이어폰을 끼면 된다. “니가 있는 곳, 아마 그곳이 Mi Casa, 다녀왔어 Hi Mi Casa, 켜뒀구나 너의 switch”(<홈>(Home)) 이 사랑이 환상이라고? 환상이 아닌 사랑이 있을까? 그러니 내게도 언젠가 ‘덕질’의 은총이 내리길.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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