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류승완과 봉준호 감독도 전주에서 발견되었다. 류승완 감독의 데뷔작, 16㎜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첫해 전주영화제에서 ‘한국에서 본 적 없는 새로운 액션을 선보이는 영화’로 입길에 올랐다. 이후 여러 세계 영화제에 초청되고, 35㎜로 블로업하며 확대 개봉되고 감독도 급성장했다. 봉준호 감독도 첫 장편 <플란다스의 개>를 제1회 전주영화제에서 상영하며 영화제와 인연을 맺고, 2014년에는 ‘디지털 삼인삼색’에 참여했다. 김영진 수석 프로그래머는 이렇게 요약한다. “떠오르는 감독들이 주를 이룬다. 미래에 주류가 될 전위다. 외국 감독도 마찬가지다. 현재 칸,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가 환영하는 영화들도 먼저 알아보고 상영했다.” 미래에 주류가 될 전위 ‘미래에 주류가 될 전위’는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에도 해당된다. 1997년 시작된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 최대 국제영화제로 성장하면서 세계 각국의 화제작을 쓸어담는 사이, 전주영화제는 ‘새로움’과 ‘미래’라는 화두를 붙들었다. ‘디지털 삼인삼색’은 첫해를 시작으로 오랫동안 영화제를 대표하는 브랜드였다. 세계와 한국을 망라해 촉망받는 감독 셋을 불러들여 당시에는 낯설었던 ‘디지털’로 영화를 찍게 했다. ‘첨단’에 있던 디지털은 20년 사이 ‘흔한 일상’이 되었다. 2014년부터는 시대에 맞게 장편영화 제작지원 프로젝트(JCP)로 바뀌었다. 5년간 전주국제영화제를 담당한 이주현 <씨네21> 기자는 ‘새롭다’는 화두에 더해 대중성을 더하려는 노력을 전주영화제의 흐름으로 평가했다. “시네필(영화광)들이 국내에서 볼 수 없는 실험예술 영화를 보러 왔다. 현재도 ‘익스팬디드 시네마’ 부문 등의 영화로 이어진다. 현대미술과 영화를 결합하는 시도도 팔복예술공장 사례로 엿볼 수 있다. 반면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도 보인다.” 올해는 20주년을 기념해 한국 영화의 흥행작을 대거 상영하고 <스타워즈>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실제 영화제가 ‘어렸던’ 시절, 영화광들에게는 ‘매진’이 되지 않는 영화제, 보고 싶은 영화를 쉽게 볼 수 있는 영화제로 소문이 났지만, 최근 2~3년 사이 부쩍 매진작이 늘었다. 올해는 닷새간 362회 중 259회가 매진되는 등(5월6일까지) 최다 관객, 매진작 수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전주영화제는 ‘표현의 자유’의 든든한 보루였다. 전주영화제는 20회를 맞으며 ‘영화 표현의 해방구’라는 슬로건을 ‘영화, 표현의 해방구’로 쉼표를 찍어 살짝 바꿨다. 애초 슬로건은 부산국제영화제가 <다이빙벨> 상영을 둘러싸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영화제 자율권을 위협한 이듬해 2017년부터 사용했다. ‘해방구’는 원래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었다. 김영진 수석 프로그래머는 “다른 사람들이 외압이 없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없는데요, 하곤 했다. 내색 안 하고 버텼다”고 한다. 몇몇 문제작 때문에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전화가 오고, 공무원들은 경위서를 써야 했다. 2016년 최승호 피디(현 MBC 사장)의 <자백> 때가 그렇다. 국가정보원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영화에는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 ‘단박 인터뷰’에 등장하기도 한다. 감독은 “한국에서 못 틀 것이다”라고 했지만 상영을 결정했다. 그만큼 ‘엄혹한’ 시절이었다. 2017년 상영된 <노무현입니다>는 극비 프로젝트였다. 2016년 JCP에 선정되고도 ‘N프로젝트’로 내용을 가리고 제목도 없이 만든 영화는 그해 최순실 게이트와 촛불 혁명을 거치면서 상황이 반전된 뒤 ‘백주’(환한 대낮)의 전주에 도착했다. 이창재 감독의 박진감 넘쳤던 상황 회고를, 많은 이가 듣고도 그저 허허 웃었던 것은 ‘끝이 좋으면 다 좋은 희극’이다. 만들어진 해방구 쉼표를 찍은 ‘해방구’는 올해에도 유효했다. 4대강을 12년간 취재한 김병기 감독의 <삽질>과 일본군 ‘위안부’ 증언에 나선 김복동 할머니의 27년을 담은 송원근 감독의 <김복동>이 상영됐다. 텔레비전도 잡지도 못하는 ‘롱텀 저널리즘’이다. 김영진 수석 프로그래머는 “경계 없는 표현의 자유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실험영화와 정치영화가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이렇게 해서 가능하다. 전주=글·사진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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