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사회주의 이론가 최민이 말하는 장애인 인권과 시민사회운동
거센 물살이 깊숙이 땅을 파헤치며 새로운 물길을 만들어낸다. 이제 강의 흐름은 그 물길을 따라 이어지게 마련이다. 1980년대를 가로질러온 많은 30∼40대들이 여전히 변혁이든 개혁이든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이와 같을 것이다. 80년대의 격랑이 역사라는 지표면에 아로새긴 물길을 따라 그들의 삶과 꿈의 물줄기도 계속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전동휠체어 타고 운동의 바다로
최민(43)씨는 80년대 학생운동에 과학적 사회주의의 기치를 최초로 내걸었던 인물이다. 서울대 국사학과 78학번인 그는 80년대 초·중반 학생운동의 핵심 이론가 중 한 명이었다. 87년 이른바 ‘제헌의회(CA)그룹’ 사건에서 이론총책으로 7년형을 선고받은 그는 2년여 감옥생활 와중에 칼 마르크스의 <자본>(이론과 실천) 1권을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다. 그런 그의 이름이 최근 한 학술지에 거론됐다. 참여사회연구소의 반년간지 <시민과 세계>(당대 펴냄)가 최근 창간호 권두언에서 “오픈에쓰이(Open SE)의 최민 사장은 장애인들과 더불어 사업한 정성으로 장애인 아닌 사람들을 위해 소중한 재정지원을 상당 부분 부담했다”며 그에게 특별한 감사를 표시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참여연대의 운동방향 정립과 정책 개발을 목표로 하는 부설기관이다. 80년대 사회주의 이론가는 지금 어떠한 관점에서 시민운동을 지원하게 됐을까. 그를 만나 삶과 꿈의 흐름을 더듬어봤다.
알려진 대로 그는 두 다리와 한쪽 팔(손목 제외)을 못쓰는 1급 장애인이다. 그렇지만 그의 활동반경은 무척 넓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하루 4∼5개씩의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국제장애인연맹(DPI) 초대회장과 사회복지법인 ‘장애인의 꿈 너머’ 이사장에서 민주화운동정신계승연대 집행위원장, 나아가 서울시 청소년실무대책위원에 이르기까지 공식 직함만 10여개에 이른다. <시민과 세계>의 지원은 참여사회연구소 이사 자격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중 가장 큰 일거리는 역시 그가 대표로 있는 오픈에쓰이(www.opense.com)를 경영하는 일이다. 지난해 2월 창립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전문기업이다. 정규직과 계약직 합해 300여 직원 가운데 장애인이 50명에 이른다. 최씨는 “장애인에게 노동할 수 있는 권리와 기회를 제공하는 일종의 사회적 기업을 지향한다”며 “장애인 문제는 복지 차원이 아니라 인권 차원에서 해결해야만 하며, 그 핵심은 노동권의 보장”이라고 말했다. 장애인에 대한 관심은 그의 숙명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가 본격적으로 장애인 운동에 참여하게 된 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다. “91년 또 한 차례 조직사건으로 수배됐을 때 장애인들의 도움을 받아 검문검색을 피해다녔습니다.”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92년 장애인인권사업단을 발족시켰다. 이후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러 미국 유학을 떠나서도 “장애인으로서 미국을 철저히 경험하려는 노력을 잊지 않았다”고 했다. 휠체어장애인용 자동차운전면허증을 따기 위해 귀국을 2년 늦췄을 정도였다. 노동력 재배치 문제를 사고하라 현재의 시민사회운동을 들여다보는 그의 심경은 조금 복잡해보였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보된 단계에선 시민사회운동이 확장되고 주도하는 시기가 불가피하다”면서도 “현재 가장 큰 과제는 탈산업사회의 노동력을 어떻게 재배치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노동의 측면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육체노동자 계급에 대해선 “결국 소멸할 수 밖에 없는 계급”이라고 그 역사적 성격을 지적했다. “지금 노동운동진영의 주장엔 탈산업사회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 결여돼 있다”며 “노동력의 재배치라는 역사적 전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과거 농민계급을 해체하고 노동자로 바꿔낸 박정희식의 폭력적인 방법이 다시 동원된다면 또다시 혁명적 정세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는 오픈에쓰이 경영도 참여사회연구소 지원도 모두 그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사회적 연대에 기반해 탈산업사회 노동력 재배치 문제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역사적 과제 앞에선 노동자정당도 시민운동도 모두 우리 편입니다. 이를 제도화할 때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근본적 변혁을 사고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알려진 대로 그는 두 다리와 한쪽 팔(손목 제외)을 못쓰는 1급 장애인이다. 그렇지만 그의 활동반경은 무척 넓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하루 4∼5개씩의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국제장애인연맹(DPI) 초대회장과 사회복지법인 ‘장애인의 꿈 너머’ 이사장에서 민주화운동정신계승연대 집행위원장, 나아가 서울시 청소년실무대책위원에 이르기까지 공식 직함만 10여개에 이른다. <시민과 세계>의 지원은 참여사회연구소 이사 자격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중 가장 큰 일거리는 역시 그가 대표로 있는 오픈에쓰이(www.opense.com)를 경영하는 일이다. 지난해 2월 창립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전문기업이다. 정규직과 계약직 합해 300여 직원 가운데 장애인이 50명에 이른다. 최씨는 “장애인에게 노동할 수 있는 권리와 기회를 제공하는 일종의 사회적 기업을 지향한다”며 “장애인 문제는 복지 차원이 아니라 인권 차원에서 해결해야만 하며, 그 핵심은 노동권의 보장”이라고 말했다. 장애인에 대한 관심은 그의 숙명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가 본격적으로 장애인 운동에 참여하게 된 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다. “91년 또 한 차례 조직사건으로 수배됐을 때 장애인들의 도움을 받아 검문검색을 피해다녔습니다.”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92년 장애인인권사업단을 발족시켰다. 이후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러 미국 유학을 떠나서도 “장애인으로서 미국을 철저히 경험하려는 노력을 잊지 않았다”고 했다. 휠체어장애인용 자동차운전면허증을 따기 위해 귀국을 2년 늦췄을 정도였다. 노동력 재배치 문제를 사고하라 현재의 시민사회운동을 들여다보는 그의 심경은 조금 복잡해보였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보된 단계에선 시민사회운동이 확장되고 주도하는 시기가 불가피하다”면서도 “현재 가장 큰 과제는 탈산업사회의 노동력을 어떻게 재배치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노동의 측면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육체노동자 계급에 대해선 “결국 소멸할 수 밖에 없는 계급”이라고 그 역사적 성격을 지적했다. “지금 노동운동진영의 주장엔 탈산업사회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 결여돼 있다”며 “노동력의 재배치라는 역사적 전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과거 농민계급을 해체하고 노동자로 바꿔낸 박정희식의 폭력적인 방법이 다시 동원된다면 또다시 혁명적 정세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는 오픈에쓰이 경영도 참여사회연구소 지원도 모두 그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사회적 연대에 기반해 탈산업사회 노동력 재배치 문제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역사적 과제 앞에선 노동자정당도 시민운동도 모두 우리 편입니다. 이를 제도화할 때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근본적 변혁을 사고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