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타인 덕에 상상할 수 없는 나로 왜 부모가 붙여준 이름으로 평생 불려야 하나?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 <레이디 버드>에서 크리스틴은 스스로 붙인 이름 ‘레이디 버드’로 불러달라 고집한다. 고향 새크라멘토를 벗어날 궁리뿐이다. 첫 장면부터 엄마랑 기 세게 싸운다. “동부로 가고 싶어.” “넌 너밖에 모르지?” 방금 전까지 소설 <분노의 포도> 한 장면의 낭독을 듣고 둘이 함께 울었더랬다. 딸 옷을 고르다 또 싸운다. “그냥 예쁘다고 해주면 안 돼?” “네가 언제나 가능한 한 최고로 보이길 바라지.” “이게 내 최고로 멋진 모습이면?” 그러다가도 엄마는 딸 드레스를 재봉틀로 줄여주고 있다. 아버지는 실직해 우울증을 겪고 어머니는 야근까지 뛰는 와중에 딸은 엄마 몰래 동부 대학에 원서를 넣는다. 서로 상처를 후벼 파다가 크리스마스가 오면 없는 살림에 땀 흡수 잘되는 양말이라도 주고받는다. 드디어 자기가 택한 자기, ‘레이디 버드’가 될 수 있는 기회의 땅에서 그는 자기가 택하지 않은 자기인 ‘크리스틴’을 껴안는다. 술로 떡이 됐다 마스카라 범벅인 채 눈을 뜬 어느 날, 부모님 집 전화에 음성메시지를 남긴다. ‘기찻길 옆 구린’ 집, 만날 봐온 그 길과 상점들, 새크라멘토는 관심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그의 고향이자 그의 일부였다. “크리스틴이에요. 두 분이 참 좋은 이름을 지어줬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왜 부모를, 자녀를 선택할 수 없을까? 왜 내가 선택하지 않았는데 사랑해야 할까? 선택할 수 없기에 축복일까? 앤드루 솔로몬의 책 <부모와 다른 아이들>은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들의 이야기다. “장애인 자녀를 키운다는 건 이래요. 출산을 앞두고 있을 때는 이탈리아로 떠나는 굉장히 멋진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과 비슷해요. 당신은 여행 안내서를 잔뜩 사 여러 가지 신나는 계획들을 세워요. …마침내 그날이 와요. 출발이에요. 몇 시간 뒤에 비행기가 착륙하죠. ‘네덜란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탈리아에 가지 못한 아픔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그런 꿈을 잃은 상실감이 엄청나거든요. 하지만 만약 이탈리아에 가지 못했다는 사실에 슬퍼하며 여생을 살아간다면 네덜란드를, 지극히 특별하고 무척 사랑스러운 것들을 즐길 마음의 여유를 얻지 못할 거예요.” 다운증후군이 있는 아들을 둔 에밀리 펄 킹슬리의 글 ‘네덜란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의 일부다.(앤드루 솔로몬의 <부모와 다른 아이들>에서 재인용) 나는 이 글을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타인, 그래서 죽을 둥 살 둥 그 다름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타인을 삶에 들인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었다. 어쩌면 그런 타인들 덕에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곳까지 갈 수 있고, 내가 상상할 수도 없었던 내가 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서로 바닥에 자려는 모녀 한국에 도착한 날, 밤이 깊어 모두 부모님 집으로 갔다. 엄마는 나한테 침대를 내주며 자기는 바닥에 자겠단다. 내가 바닥에 자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먼저 드러누워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당겼다. “아, 내가 바닥에서 자겠다고! 엄마, 내 입장에서 좀 생각해봐!” 생략된 말은 이렇다. ‘엄마 기대에 미치지 못해 내가 얼마나 미안한 줄 알아? 왜 자꾸 더 미안하게 해.’ “너도 내 입장에서 좀 생각해봐라!” 생략된 말은 이렇다. ‘너는 왜 내 마음을 그렇게 차갑게 발로 걷어차니.’ 목소리엔 점점 짜증이 차올랐다. 멀쩡한 침대를 두고 나는 고집스럽게 소파에서 몸을 웅크렸고, 엄마는 거실 바닥에서 잤다. 다음날, 툴툴거리며 집에 오니, 엄마한테 문자가 와 있다. “미세먼지 심한데 마스크 쓰고 다녀!”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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