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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도담이는 담대했다

수술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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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22 14:19 수정 : 2019-02-2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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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직전, 도담이는 ‘메롱’ 하고 수술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초음파 영상을 말없이 보았다. 어른 주먹보다 작은 심장이 팔딱팔딱 뛰는 소리가 진료실 안을 가득 울렸다. 도담이는 아내 품에 안긴 채 의사 책상 위에 놓인 청진기를 달라고 손짓했다. 그걸 본 의사는 “가지고 놀아봐”라고 자신의 청진기를 도담이 손에 꼭 쥐여주며 말했다. “수술하면 될 것 같습니다. 좌심방과 좌심실을 연결하는 판막에 난 작은 구멍으로 혈액이 새고 있고, 그래서 심장이 부은 상태예요. 혈액이 역류하지 않도록 판막을 교정하는 수술이 될 겁니다.”

진료실을 나온 아내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수술해야 하는 현실이 싫다”고 했다. 아내도 나도 병원에 오기 전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진단을 기대한 만큼 실망감도 컸다. 혈압약을 먹은 지난 석 달 동안 도담이는 몰라보게 건강해졌다. 중이염을 달고 살던 아이가 감기 한번 안 걸렸다. 수면 시간도 대폭 늘어났다. 새벽 네다섯 시에 일어나는 바람에 어린이집에 가면 꾸벅꾸벅 졸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아침 7시까지 푹 자고 어린이집을 하원할 때까지 쌩쌩하다. 몸이 아프지 않으니 칭얼거림이 줄었고, 건강해진 아이 덕분에 부부 싸움도 안 한 지 오래됐다. 아이의 건강이 가정에 가져다준 나비효과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도담이를 포함한 우리 가족 모두 이 상황을 이겨내기 쉽지 않지만 수술을 피해갈 수는 없다. 수술을 해야 지금보다 더 건강해질 수 있으니까. 아내와 나는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 곧바로 수술 코디네이터와 함께 수술 날짜와 의사를 정했다. 입원하기 전까지 주말마다 도담이와 함께 동네 마트, 여의도 쇼핑몰, 중국집 등 여기저기를 다니며 바람을 쐬었다. 도담이가 좋아하는 <뽀롱뽀롱 뽀로로> 장난감도 사줬다. 입원하는 날인 2월19일, 도담이는 병원에 가는 사실을 아는지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아내와 나를 깨워 놀기 시작했다. 아내의 스마트폰에 있는 유튜브 동영상을 켜 동요에 맞춰 춤을 추다가 자기 방에 들어가 상자 안 장난감을 모두 꺼내 차례로 가지고 놀았다. 아내와 내가 졸려서 정신을 못 차리는 걸 본 도담이는 괴성을 지르며 우리의 잠을 깨웠다. 아이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병원에 입원한 도담이는 유쾌하고 씩씩했다. 수술을 집도할 의사를 처음 만났을 때 활짝 웃으며 “안녕” 하고 인사했다. 잘생긴 의사가 검사하러 들어왔다가 나가면 다시 불러오라고 했다. 같은 병실을 쓰는 오빠와 함께 놀겠다고 떼도 썼다. 도담이 수술을 맡은 의사는 우리 부부에게 어떤 수술인지 쉽고 자세하게 설명했고, 혹여나 수술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상황에 맞게 대처하겠다고 우리를 안심시켰다. 믿음직스러웠다. 부모가 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이를 대신해 아파줄 수도, 수술받을 수도 없다. 엄마와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담이는 “안녕” 인사하고 수술실에 들어갔다. 이따 봐, 도담아, 파이팅!

글·사진 김성훈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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