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동물해방전선의 활동가가 독일의 한 모피농장에서 밍크를 구출하는 장면. 동물해방전선 홈페이지
동물해방전선이 연대운동의 분위기를 깨는 ‘풋내기 활동가’나 ‘관심종자’들이 모인 단체라는 시선은 동물단체들 사이에서 더욱 강해졌다. 사실 뉴포레스트 밍크 해방 작전이 진행된 1998년 8월, 이미 영국은 모피농장 금지를 앞두고 있었다. 노동당 정부는 모피농장에 압도적인 반대 여론이 있다면서, 이미 한 달 반 전에 관련 법 제정을 공언했다. 영국에는 모피농장이 11곳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2000년 영국은 세계 최초로 모피농장 금지법을 제정한다). 반면 동물해방전선은 자신들만이 진정한 동물의 편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캠페인 전략을 구사했다. 단체에서 유일하게 공개되는 인물인 대변인 로빈 웹은 사건 직후 “노동당 정부가 모피 금지법 제정 약속을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으므로 정당한 행위”라고 반박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우리도 밍크들이 죽을 거라는 거 알고 있다. 하지만 죽기 전에 조금이라도 자유를 맛볼 수 있다. 게다가 밍크는 영국에서 이미 외래종으로 정착했다. 다른 종을 싹쓸이하지 않는다. 일부는 살아남아서 자연적인 방식으로 살아갈 것이다.” 뉴포레스트 사건의 비밀 이 사건이 재조명된 것은 20년 가까이 지난 2018년 2월이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영국 경찰 비밀요원 한 명이 동물권 단체 활동가로 위장해 뉴포레스트 작전에 참여했다고 폭로했다. 국가적인 난리법석을 떨면서 경찰이 미제로 남겨놓은 사건의 범인 중 하나가 경찰이었다니! 영국 경찰은 의외로 보도를 순순히 인정했다. 숨진 아이의 이름을 도용해 ‘크리스티 그린’으로 동물해방전선에서 위장 활동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린은 2000년 초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친구 장례식을 간다면서 활동가 네트워크에서 사라졌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위장 활동으로 심적·신체적 고통을 겪었고, 경찰을 그만둔 뒤 자신이 감시했던 동료와 스코틀랜드에서 함께 살고 있다고 전했다. 혁명과 거짓말 스토리의 결말이 사랑이라니! 영화 같은 일이었다. 동물해방전선은 20세기 후반 동물권 신장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활동이 역사의 전부인 것처럼 말한다. 얼핏 보기엔 그렇다. 불법을 가리지 않고 터뜨리는 방식의 캠페인은 무대 위로 올라오는 사건 중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좇는 언론의 본성에 맞닿았다. 동물해방전선이 풍기는 혁명적 낭만주의도 젊은 활동가의 지속적인 투신을 이끄는 요인이었다. 반면 대다수 동물단체는 무대 뒤 정책과 제도의 영역에서 일했다. 지루하고 더디고 영웅이 되지 않는 방식이지만 이런 행동이 용기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지금은 동물해방전선으로 대표되는 급진주의가 예전처럼 회자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바가 제도에 많이 수렴됐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는 동물에게도 내재적 권리가 있어 이를 침해할 수 없다는 ‘동물권’ 주장을, 삶의 질을 개선해 고통을 줄이자는 ‘동물복지’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이미 유럽연합은 산란계의 케이지 사육을 금지했고, 밍크 등 모피농장은 거의 사라졌으며, 유인원 동물실험을 금지하는 나라도 늘어나고 있다. 동물해방전선은 동물의 진정한 대변자였을까? 이 질문은 6천 마리 밍크의 운명을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 6천 마리 중 4천 마리 이상이 엽총의 표적이 되거나 그물에 걸려 농장에 다시 갇혔다. 운 좋게 빠져나간 밍크는 처음 만난 야생의 삶터에서 당황해 굶어죽거나, 용맹스러운 밍크는 포식자로 정착해 다른 종의 죽음을 이끌었을 것이다. 어쨌든 수많은 생명이 잠시나마 ‘세상 뒤집어지는 경험’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이 그들에게 무한의 공포였는지, 환희에 찬 도전이었는지 우리가 알 수 없지만. 공포였을까 환희였을까 어둠을 깨고 잠입한 활동가들의 폭죽 같은 행동이 세상을 바꾸었음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산 동물을 역사의 제단에 바친 제사장이었을까? 유일한 진실은 우리가 동물의 마음을 전부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고, 그렇다고 불가지론에 빠져서도 안 되고 쉽게 단정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런던=남종영 <애니멀피플>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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