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부터의 수기>, 민음사 펴냄
청소년은 그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몸에 각인된 상식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의심한다. 공부는 왜 하는가? 왜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 왜 사랑받아야 하는가? 좋은 대학과 안정된 직장이 과연 행복을 보장하는가? 행복이 좋은 것인가? 불행하면 왜 안 되는가? 좋은 게 과연 좋은가? 신참자는 이제 갓 발을 들여놓은 세계의 룰에 무조건 찬동할 수는 없다.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상식을 꼬나본다. 2×2=4라는 자명한 상식도 의심한다. “2×2=4는 내 생각으론 정말로 뻔뻔스러움의 극치일 따름”이며, “2×2=5도 이따금씩은 정말 귀여운 녀석”이라는 지하 인간의 독백처럼, 청소년은 상식을 뒤집는 자리에 뭔가 근본적으로 위대한 해답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청소년은 지금껏 당연한 의무인 줄 알고 익숙하게 해왔던 일의 가치를 갑자기 의심하면서, 그 일을 해야만 하는 자기만의 이유, 즉 의미를 찾고 싶다. 그런데 간절히 의미를 찾는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온통 암흑이다. 자기를 생생하게 점화할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다. 공허하다. 아노미 혹은 카오스가 밀려온다. 무의미에 질린 청소년은 고통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한다. 공연히 술을 마시고 싸움을 걸며 얻어맞고 손목을 그으며, 자신을 해치는 일에 전념한다. 쓸모없고 해로운 일에 몰두할 권리를 관철하고, 금지된 일을 자행하는 쾌감을 즐기고 싶다. 지하 인간이 굴욕적인 상황을 자발적으로 일으키는 이유는 모욕감, 즉 고통 속에서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권태 탓”으로, “가만히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것이 너무나 지겨웠기 때문”이란다. 좋다고 알려진 모든 것이 무의미해 견딜 수 없기에, 그는 오로지 고통 속에서만 삶의 의미를 구한다. “모든 이가 나를 무시하고 경멸한다”는 믿음 지하 인간이 느끼기에, 모든 사람은 “역겨움이 담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하인 아폴론이 자신을 깔보며, 자기에게 호의적인 여인도 자신을 경멸한다고 믿는다. 실은 그가 정말로 미움받는 것은 아니다. 단지 모든 사람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피해망상에 빠진 것이다. 그가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자신에 대한 높은 기대 때문이다. 몽상 속에서 그는 저명한 시인이 되어 어마어마한 기금을 받으며 모두에게 사랑받는다. “월계관을 쓰고 백마에 올라탄 듯한 기세로 세상으로 나아”가 누구 앞에서나 뽐내고 누구에게나 매력을 인정받는다. “조연을 맡는 건 나로선 납득할 수 없”다. 현실은 그 반대다. 그의 일상은 자존심 상하는 일투성이다. 영웅이 못 되었다는 이유로 그는 무참한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는 자신에 대한 치명적인 불만을 느끼고 그 불만을 남에게 투사한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남들이 자신을 바라본다고 여긴다. 자기가 자기를 극도로 경멸하는 만큼, 모든 사람도 그렇다고 믿는다. 어떤 청소년은 사람들에게 미움받고 무시당한다고 굳게 믿는다. 누구보다 부모가 자신을 경멸한다고 믿는다. 폭력을 휘두른 청소년이 가장 자주 밝히는 폭력의 사유는 이렇다. 나를 무시하잖아. 무시당한다는 믿음의 이면에는 치명적인 자기 비하가 있다. 자신을 극도로 하찮게 보며, 자신을 바라보는 그 시선을 남에게 투사해 남도 자기를 무시한다고 믿는다. 청소년의 자기 비하는 지하 인간의 경우처럼 자신에 대한 높은 이상 때문에 생겨나기도 하지만, 자아정체성 불안으로도 생긴다. 청소년은 자기에 대한 안정적인 인식을 가지기 어렵다. 컨디션에 따라 어떤 날은 자기 우상화에, 어떤 날은 자기 비하에 빠져든다. 청소년의 자기 평가는 극에서 극으로 정신없이 오락가락한다. 지하 인간처럼 “영웅 아니면 진흙탕, 중간이란 없”다. 흐린 날 청소년은 비합리적인 이유로 매사 자기를 비하한다. 세계는 그를 초라하게 만드는 일로 가득한 지뢰밭이다. 사소하게 말실수했다고, 그 애 앞에서 얼굴을 붉혔다고, 노래 부를 때 박자를 못 맞추었다고, 수학 문제 답을 1분 늦게 알아차렸다고, 남들이 다 아는 소문을 모른다고…. 눈 뜨고 나서 만나는 모든 일을 자기의 못남을 증명하는 근거로 삼는다. 빈번하게 자기 비하에 시달리는 청소년은 자신이 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다. 그 믿음은 자신이나 남을 해친다. 그 믿음이 속으로 파고들면 우울증이나 자해로 발전하고, 바깥으로 향하면 폭력으로 분출된다. 자신에 대한 분노를 남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찢어진 마음 위로하려 권력 행사하기도 지하 인간도 스스로에 대한 분노를 남한테 투사한다. 환송연에서 모욕을 당하자, 창녀 리자를 찾아가 리자의 비참할 앞날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리자를 염려하는 척 가장했지만, 실은 비탄에 빠뜨리기 위해 교묘히 계산된 행위였다. 그의 의도대로 리자는 참혹한 절망에 빠진다. 그는 리자의 눈물과 굴욕을 쟁취함으로써 권력을 확인하고, 자신을 위안한다. 청소년은 더러 누군가에게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자기 비하로 찢어진 마음을 위로하려고 한다. 약한 아이를 괴롭히거나 부모에게 함부로 대하거나 이성 친구를 마음대로 조종하려 한다. 타인을 제 뜻대로 움직이면서 권력을 확인하고 자기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박수현 문학평론가·공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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