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먹방 유튜브 방송장면 갈무리.
대학생 차소영(23)씨는 밴쯔 등 먹방 유튜브를 최소 일주일에 나흘 이상 본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모습에 재미를 느낀다”며 열광하는 이유를 말한다. 동갑내기 친구인 이해원씨도 “‘바삭바삭’ 하는 소리가 들리는 ‘먹방 리얼 사운드’가 좋아서 본다”고 한다. 그도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먹방 유튜브를 클릭한다. 유튜브가 10~20대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상상 초월이다. A 운영자가 컵라면 10개를 다 비우는 데 걸린 시간은 11분58초. 타이머 버튼을 눌러 종료를 알린 그가 한 마지막 말은 “잘 먹었습니다”다. 그게 끝이다. 허무하고 공허하다(나만 그런가). A와 유사한 먹방은 유튜브에 넘쳐난다. 인기 먹방 유튜브의 구독자 수는 수백만 명이다. 밴쯔(307만4천여 명), 슈기님(190만여 명), 영국남자(301만7천여 명), 나도Nado(140만여 명), 도로시(188만여 명), 양수빈(164만여 명) 등이 대표적이다. 그 뒤를 입짧은햇님(58만여 명), 애주가티브이TV참PD(40만여 명), 나름TV(85만여 명) 등이 바짝 추격하고 있다. 이들이 전투적으로 먹는 모습은 중독이나 자학처럼 보인다고 하면 과한 것일까. 양만 보면 위장은 꽉 찼을 듯한데, 계속 젓가락질을 한다. 행복감을 안겨주는 맛은 양과 비례하지 않는다. 자칫 구독자의 음식 중독을 부추길까봐 걱정이 앞선다. 책 <맛의 배신>을 보면 음식 섭취를 통제 못하는 뇌는 마약에 중독된 뇌와 닮았고, 중독된 뇌는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행복감을 못 느낀다고 한다. 이 맛은 이런 양념을 썼기에 난다든가, 재료의 신선도는 떨어지지만 조리 기술은 훌륭하다든가 하는 먹거리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는 거의 없다. 그저 짧은 시간 많이 먹어서 조회수와 구독자를 늘린다. 물론 ‘과도한 지적이다, 재미로 하는 건데 꼰대처럼 뭔 잔소리야’라고 되레 타박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진정한 즐거움도 살피길 하지만 먹거리는 우리 건강과 직결되는, 한 국가의 농업과 외식업 등 산업에 바로 영향을 미치는 분야다. 대중의 인기를 얻은 먹방 인플루언서는 이젠 디지털 시대의 권력자이기도 하다. 기업의 중요한 홍보·마케팅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기자가 입수한 자료를 보면 업계에서 통상 이들에게 내는 마케팅 비용은 한 회당 최소 1천만원이라고 한다. 3천만원을 받는 이도 있다는 소리가 솔솔 들린다. 2010년 한국을 찾은 이탈리아 슬로푸드운동 창립자인 카를로 페트리니는 한국의 먹방을 보고 ‘푸드 포르노’(음식이 욕망의 대상이 되도록 자극하는 영상)라 단정하고, 그런 행태에서 농산물을 키우고 조리하는 이들은 소외된다고 말했다 한다. 김종덕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회장도 “먹방의 인기가 결코 우리 농업에 도움이 안 된다. 제대로 조리한 식재료를 먹는 것도 아니고, 가공식품이 대부분이다”라며 안타까워한다. 이들의 동영상이 두려운 이유는 한때 ‘푸드 포르노’라고 비판받았던 텔레비전이 먹방의 강력한 새 버전인 데 있다. 대부분 모니터 앞에서 홀로 시청하는데, 이런 환경은 더 직접적으로 시청자의 마음을 파고들어 힘을 발휘한다. 본질은 사라진 채 보는 이를 유혹만 하는 콘텐츠는 시청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음식’은 없고 ‘놀이’만 있다. 대세의 물꼬를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는 없다. 집채만 한 파도를 막을 튼튼한 방파제는 자본주의 세상에선 없다. 그렇다고 먹방 인플루언서를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이들이 영향력 확장만을 목적으로 자극적인 콘텐츠 제작에만 몰입하지 말고, 먹거리의 문제나 미식의 진정한 즐거움 등을 살펴 진화했으면 한다. 대중의 인기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박미향 <한겨레> ESC 팀장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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