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에서 내신의 무게란. 죽을 듯이 아파도 시험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내신이다. 마스크를 한 채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 한겨레 김봉규 기자
학생부 위주의 수시 전형 비중이 전체 대입 전형의 70~80%에 이르기 때문에 내신 부담에서 자유로운 아이는 많지 않다. 학기말에 과목별 석차 등급을 받으면 모두들 ‘내신 산출 계산기’를 돌려 내신 평점을 산출하느라 바쁘다. 과목별 이수 단위가 반영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국어·영어·수학을 잘해야 높은 평점이 나온다. 이렇게 계산한 3년간의 내신 평점이 2점대 안쪽으로 들어와야 수시 전형에서 ‘인서울’을 안정적으로 노려볼 수 있다는 게 속설이다. 비교과 활동이 아무리 우수해도 내신이 받쳐주지 않으면 수시 지원 자체가 불가하단 얘기다. 툭하면 불거지는 불공정 시비, 재시험 그렇다고 대학들이 내신 평점 하나만 보는 것도 아니다. 이른바 내신의 ‘질’도 본다. 국·영·수만 따로 추린 평점도 높은지, 지원한 전공학과와 관련된 과목의 등급이 우수한지, 심지어 일부 대학에선 A·B·C로만 매기는 음악·미술·체육 과목의 점수까지 살핀다. 입시 전문가들은 “내신의 스톡(stock·현 시점 성적)도 중요하지만 플로(flow·성적 추이)도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시에서 내신 성적은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부터 3학년 1학기까지 반영되는데, 한마디로 우상향 곡선을 그려야 한다는 의미다. 지필고사만 학기마다 두 번씩, 모두 열 번의 시험을 극도의 긴장감 속에 치러야 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고1·2학년 때 ‘놀멍쉬멍’ 하다가 고3 때 바짝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전설이 됐다. 서울 ㄷ고등학교의 ㄹ교사는 “학생 입장에서 보면 수능은 3년 학교를 다니고 한 번 보는 것이지만 내신 시험은 너무 자주 닥친다는 게 문제다. 말 그대로 ‘학종 시대’에 내신 관리가 안 되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가 없다보니 아이들이 시험에 대한 부담감에 짓눌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렇게 내신 성적에 민감해지다보니 시험을 치를 때마다 학생들의 민원도 봇물처럼 쏟아진다. 같은 과목이라도 앞반 뒷반을 가르치는 교사가 다른 경우 툭하면 불공정 시비가 벌어지고, 때때로 재시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내신 경쟁에 불안해진 아이들은 자연스레 학원으로 발길을 돌린다. 정시(수능) 전형이 줄고 수시 비중이 커지면서, 학원가는 학교별 내신 대비 수업을 개설해 집중 공략에 나선 지 오래다. 국·영·수 주요 과목은 물론이고 탐구과목 시험도 학원에서 대비한다. 내신 수업을 받고서도 잘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일명 ‘클리닉’ 수업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래도 학교 수업만 잘 들으면 되지 않냐고? 그렇지 않다. ㄹ교사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자. “교사 입장에서도 고민이 많다. 문제를 너무 쉽게 내면 등급을 매길 수 없어 변별력에 신경을 기울이다보니 무리한 출제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정말 좋은 문제, 꼭 알아야 하는 문제를 내는 게 바람직한데, 문항 수나 지문을 대폭 늘려 ‘스피드’(문제풀이 속도)를 요하는 문제를 내거나 까다로운 ‘킬러’ 문제를 개발하게 되더라. 사교육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내신은 선행학습도 부추긴다. 자녀를 특목고에 보낸 학부모 ㅁ은 “현실적으로 선행학습이 돼 있지 않으면 내신 성적을 잘 받기 어렵더라”고 말했다. 특히 수학은 고교 과정을 전부 떼고 와야 따라잡기 쉽다는 것이다. 과목에 따라 주교재에 그치지 않고 부교재까지 공부하기 때문에 내신 시험에서 아이들이 외워야 할 양이 (불필요하다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닥치고 암기해야 할 상황에서 교과 내용에 대한 기본 학습은 사전에 머릿속에 장착돼 있어야 한다. 애초 취지와 달리 학원·선행학습 부추겨 이렇게 내신이 또 다른 사교육 유발자가 되는 동안 교육 당국은 뭘 한 걸까? 당초 2014년부터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를 시행한다고 했던 계획도 2025년 이후로 훌쩍 미뤄놨다고 한다. 기말고사를 치른 뒤 고개를 푹 숙인 채 귀가하는 아이를 맞아본 일이 있는가? 한동안 입시 커뮤니티를 떠돌던, 다소 과격하지만 뼈 있는 어느 학생의 이야기부터 곱씹어보시라. “우리는 돼지고기가 아닌데, 왜 자꾸 등급을 매기나요?” 고3 엄마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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