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떻게 늙어가고 싶나요?
노년 문제를 현실적 시각으로 짚은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
등록 : 2019-01-04 22:34 수정 : 2019-01-10 11:25
죽지 않는 한, 현재 주류 집단에 속한 이들은 언젠가 반드시 ‘비주류’로 이동해야 한다. 왜? 늙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굴의 주름살을 보면서 그 주름이 잡히기까지 과정을 생각하지 않는다. 잘 잡힌 주름살은 유머와 사교성의 생생한 증거인데도 말이다. 젊은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이나 모두 실수할 수 있지만, 노인이 그러면 “나이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이 든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물론 육체적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박지성 선수가 여든이 돼서도 축구장을 누빌 거라곤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늙음이 불가피한 일이라면, 이를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세월에서 지혜를 찾는 법을 모색해야 한다.
<혐오와 수치심> <시적 정의> 등으로 한국 독자에게도 익숙한 법철학자·윤리학자인 마사 누스바움(1947년생)과 미국 시카고대학 로스쿨 학장을 지낸 솔 레브모어(1953년생)가 쓴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어크로스 펴냄)은 우정·몸·상속·은퇴·사랑·빈곤 등 노인과 관련한 8가지 주제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밝힌 16편의 에세이로 이뤄져 있다. 누스바움이 영화와 문학 등에 나타난 노년의 모습을 곱씹으며 인문학적 통찰을 제시한다면, 법과 경제 전문가인 레브모어는 노년에 부닥치는 문제를 현실적 시각으로 짚어나간다.
두 사람은 노년기에 절실한 요소로 우정을 첫손에 꼽는다. 로마의 뛰어난 정치가인 키케로는 공식적으론 “노년기가 인생의 다른 시기보다 우월하다”는 논지를 펼쳤지만 실제 노년기의 키케로는 그만큼 의연하진 않았다. 누스바움은 키케로가 60대에 친구 아티쿠스에게 쓴 편지에 나타난 불안과 우울, 재치 있는 뒷담화와 유머 등을 보면서 결론 내린다. “나이 듦에는 필연적으로 불행이 따라온다. 하지만 유머·이해·사랑은 필연적으로 따라오지 않는다. 이런 것들을 제공하는 것은 우정이다.” 레브모어는 친구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로 ‘조언’을 짚는다. 진정한 친구란 ‘일터에서 네 능력이 예전 같지 않아’ 같은 불편한 진실을 가감 없이 전할 수 있는 관계, 즉 참된 조언을 할 수 있는 존재다.
유산, 상속, 돌봄 비용도 노년의 절박한 문제다. 레브모어는 자식들에게 버림받았던 리어왕을 보며 “사랑에 비례해서 재산을 분배하려고 했던 리어의 계획과 사랑의 ‘표현’에 의존하는 그의 전략”이 지닌 문제점을 지적한다. 자녀들로부터 헌신을 끌어내기 위해 되도록 상속 시기를 늦추는 것이 좋을까? 자신을 돌봐준 자녀의 희생에 어떻게 경제적 보상을 할 것인가? 생활비를 쓰고 남는 돈은 기부할 것인가, 자녀에게 줄 것인가? 이런 질문에 레브모어는 실용적인 답변을 내놓는다.
늙음을 현명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늙음에 대한 고정된 관념에 순응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누스바움은 과거 미국의 민권운동·여성주의운동이 유색인종과 여성에게 찍힌 혐오와 낙인을 담대하게 거부했던 것처럼, 노년의 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에 저항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에겐 ‘노인의 몸은 보기 싫고 불필요한 쓰레기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고정관념이 있다. 나는 그런 것을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성형수술을 택하겠다.”
이주현 <한겨레> 기자 edig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