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관은 동료 김종진의 말대로 “독보적인 리듬감, 폭발하는 에너지,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가 공존하는 음악인”이었다. 봄여름가을겨울 제공
‘미친 짓’으로 가득했던 ‘투 두 리스트’ 첫 앨범부터 한국에 제대로 된 퓨전재즈 음악을 알리고, 연주곡을 앞세워 새로운 대안이 되었다.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하고는 바로 라이브 앨범을 만들었다. 공연 실황을 어떻게 녹음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 다였다. 김종진은 에베레스트 등정을 예로 들었다. 에베레스트에 어떻게 오르는지 방법도 모르고 장비도 없을 때 이들은 자신들의 상상을 더해 이를 실현했다. 봄여름가을겨울은 한국 대중음악이라는 큰 산을 오른 선구자이자 도전자였다. 3집과 4집은 미국에서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만들었다. 이 앨범에 참여한 미국 현지 연주자들의 면면은 정말 대단하다. 외국에서 녹음했다는 과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음악을 제대로 된 소리로 들려주겠다는 일념 하나였다. 7집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3년 가까이 기획하고 녹음만 5개월이 걸린 앨범이다. 좋은 소리를 얻기 위해 한국과 헝가리를 오가며 그들 표현대로 ‘미친 짓’을 했다. 이들의 ‘투 두 리스트’에는 이런 ‘미친 짓’이 가득했다. 그리고 딱 하나를 빼고는 모두 이루었다. 백발이 성성해도 무대 위에서 연주하고, 무대 위에서 죽겠다는 순수한 열망이었다. 새로운 얼굴이었던 이들도 어느새 노장이 됐다. “음악이 샘물처럼 솟아오르던 시절”도 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음악이 예전만큼 나오지 않았다. 이들은 이를 그대로 인정하고 멋진 노장 밴드가 되는 길을 택했다. 신선한 충격 같은 건 후배들 몫으로 남겨두고, 이제 자신들의 역할은 청중과 음악가 간의 사랑을 확인시키는 거라 말했다. 앨범 작업을 하기보다는 더 자주 무대 위에 서려 했고, 10년 동안 연말마다 ‘와인 콘서트’라는 공연을 하며 10장의 라이브 앨범을 만들었다. 이 라이브 연작은 다시 언급해야 할 만큼 의미 있는 기획이었다. 꼭 열 번째 ‘와인 콘서트’ 무대에 전태관은 설 수 없었다. 암과 싸우던 그는 더 이상 무대에 서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27일 향년 57살로 세상을 떠났다. 결국 아홉 번째 ‘와인 콘서트’ 앨범 《실리 러브(Silly Love) SSAW-Ngs》는 전태관의 마지막 연주가 담긴 기록이 됐다. 록과 재즈의 경계에서 그가 들려준 드럼 연주는 힘이 넘치면서도 단정했다.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과 <페르시아 왕자>에서 그의 연주는 도드라지게 들리지만 결코 연주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탁월한 리듬감과 함께 그의 백비트는 군더더기 없이 명료했다. 깊이 있는 음악의 이해, 따뜻한 미소 전태관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김종진은 진심이 묻어나는 추도사를 썼다. “독보적인 리듬감, 폭발하는 에너지, 깊이 있는 음악의 이해가 공존하는 음악인”이라는 문장이 드러머로서 그에게 바치는 헌사였다면 “따뜻한 미소, 젠틀한 매너, 부드러운 인품을 겸비”했다는 표현은 인간 전태관을 그대로 묘사하는 말이었다. 실제 전태관은 늘 친절했고 배려가 넘쳤으며 봄여름가을겨울의 따뜻한 이미지를 대변했다. 우리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해온 음악가 한 명을 잃었고 좋은 어른 한 명을 잃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두 번째 앨범은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이라는 긴 제목을 갖고 있었다. 이 바람은 한 중학생의 마음에도 와닿았다. 이들은 음악으로 마음이 깨끗해질 수 있다는 걸, 충만해질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학선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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