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각료로 80년대 풍미한 정인용씨가 들춰내는 비사들 <각하, 사인하지 마십시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 재벌들로부터 상납받은 엄청난 정치자금을 기반으로 ‘통 큰’ 씀씀이를 과시했다는 얘기는 잘 알려져 있다. 퇴임 장관들에게 전별금으로 몇 억원씩 뭉터기 돈을 집어줬다는 증언도 있었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의 마지막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낸 정인용씨는 최근 나온 그의 회고록 <각하, 사인하지 마십시오>(부키 펴냄, 02-325-0846, 9천원)에서 이러한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나는 전 대통령으로부터 전별금으로 10원짜리 하나 받은 일이 없거니와 내가 알기로 당시 경제 각료들 중 거액의 전별금을 받은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다만 “군 출신 측근들에게 거액을 줬다는 기사를 접한 적은 있다”고 덧붙인다.
정씨가 이를 지적하는 이유는 ‘근거없이 남을 비방하는 풍조’에 대한 반발이다. “당신은 얼마 받았어?” 하는 의혹의 눈길에 시달려본 이로선 당연히 가져봤을 만한 생각이다. 그러나 그의 지적은 전두환씨의 지출 행태를 비판적으로 바라봤던 이들보다 전씨를 ‘의리형 보스’로 떠벌리던 이들에게 더 큰 타격을 줄지도 모른다. 그의 ‘사나이다운’ 돈씀씀이란 게 알고보면 결국 ‘이너서클’의 몇 사람에게만 한정된 충성의 대가였음을 시사해주기 때문이다.
5공 때 실명제가 무산된 이유
<각하, 사인하지 마십시오>는 이처럼 망각과 오해로 얼룩진 그리 멀지 않은 과거 한국 경제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흔치 않은 책이다. 지난해 봄 이필재 <이코노미스트> 차장의 필력을 빌려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정씨의 회고록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외환·외자·외곬 인생 40년>에 그의 가족사와 그가 평생 가까이 한 골프에 대한 생각들을 덧붙였다. 2000년 5월 수술 이후 2년 가까이 대장암과 싸워온 정씨가 지난 3월4일 책 발간과 동시에 향년 86살로 별세함으로써 이 책은 그의 마지막이자 유일한 유작이 됐다.
1934년 평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행정학과)를 나와 62년 재무부 사무관에 특채돼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재무부 외환국장, 국제금융차관보 등을 거쳐 재무부와 경제기획원 차관을 역임했다. 83년 잠시 외환은행장으로 관계를 떠났던 그는 86년 재무장관으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이때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마무리지었고, 87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임명돼 5·6공 전환기의 경제정책을 이끌었다. 97년 외환위기 땐 국제금융 대사로 ‘백의종군’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는 경제관료로서의 덕목 두 가지를 강조한다. 청렴, 그리고 냉정한 현실인식이다. 그는 외환은행장 시절은 물론, 재무부 장관과 부총리로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주도하면서 기업으로부터 단 한푼도 받은 적이 없다고 자부한다. “문제가 된 부실기업들은 대부분 기업주가 내게 돈을 싸들고 왔던 회사들이다. 그때 신변관리를 하지 않았다면 결코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재무부 장관 시절 극동건설 김용산 회장으로부터 부실기업 인수와 관련해 들은 다음의 한마디가 26년 공직생활을 통틀어 최대의 모욕이었다고 말한다. “그 자리에 얼마나 더 있을 겁니까? 현금으로 가져올까요? 보증수표로 가져올까요?”
그는 ‘돈을 절대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83년 경제기획원을 떠나 외환은행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김준성 당시 부총리(현 이수그룹 명예회장)로부터 전수받았다. 은행장 출신의 김 부총리는 이임 인사를 간 그에게 “밑에서 돈을 받더라도 은행장만 안 받으면 탈이 안 생깁니다. 내 말 명심하시오”라며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국내 은행 최초로 융자위원회를 가동해 은행장에 대한 청탁의 통로를 제도적으로 봉쇄했다. 김준성 전 부총리는 3월8일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내가 그렇게 당부하긴 했지만, 사실 그분은 돈 먹을 사람이 아니었다”며 “그렇게 청렴한 사람은 40년 공직생활 동안 처음 봤다”고 그를 평가했다.
현실인식과 관련한 그의 발언들은 5공 시기 경제정책과 관련해 몇 가지 논란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그는 5공 초기 경제정책의 틀을 새로 만들며 ‘경제 대통령’ 소리를 들었던 김재익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 대해 ‘설익은 이상론’에 치우친 정책으로 훗날 부실기업 양산의 원인을 만들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 전 수석이 사채시장을 제도금융권에 편입시키기 위해 단자사를 무더기로 인가해준 탓에 그들간의 과당경쟁이 벌어졌고, 그 때문에 기업들과 은행들이 감당하기 힘든 부실의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5공 초 김 전 수석과 강경식 당시 재무부 장관이 합작해 밀어붙인 금융실명제에 대해서도 “꿈은 꿈일 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준성 전 부총리는 “나도 실명제가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던 차에 그가 찾아와 실명제의 함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에, 청와대에 올라가 자리를 걸고 반대의사를 밝힌 일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실명제는 입법은 됐지만 시행날짜를 못박지 않아 사실상 폐기됐다. 김영삼 정부 들어서야 대통령령으로 발효됐지만, 여전히 반쪽 시행에 그치고 있다.
“늙은이여 입을 열자”
5공 말기 경제수장으로 있던 이의 회고록이면서도 당시의 노사정 관계에 대해선 전혀 다루지 않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의 가장 큰 약점이다. 노사정 관계가 경제 아닌 정권안보 차원에서 공안기관에 의해 주도됐던 당시의 정황이 일차적 이유겠지만, 스스로의 역할을 테크노크라트로 한정했던 회고자의 세계관의 한계 또한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가 암 투병 한가운데서 스스로 삶의 기록을 남기려 벌인 분투는 평가할 만하다. 현직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온갖 기록을 감추고 없애며 법과 역사의 눈초리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여러 관료며 정치가들의 초라한 초상에 비춰볼 때 “남은 자들의 몫은 기록 남기기”라며 “늙은이여 입을 열자”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당당해 보기 좋다. 그는 지금껏 의혹으로 남아 있는 부실기업 정리와 정치자금과의 관련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제 입을 열어줬으면 한다”고 발언을 촉구했다. 그는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이원조 전 은행감독원장과 사공일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목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사진/ 고 정인용 전 부총리는 경제관료의 덕목으로 청렴과 냉정한 현실 인식을 강조했다. 5공 마지막 내각의 각료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앞줄 왼쪽에서 두번째).(사진자료 : 부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