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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야! 드디어 B급의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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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3-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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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하지 않는, 선악을 가르지 않는…박찬욱·류승완 감독이 말하는 필름누아르

<공동경비구역 JSA>의 박찬욱(39) 감독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다찌마와 Lee>의 류승완(29) 감독은 서로에게 “영화의 스승”이자 “인생의 스승”이다. 두 감독 모두 영화계에서 ‘뜨기’ 전부터 서로의 진가를 알아보고 절친하게 지내왔고, 지금은 <반칙왕>의 김지운 감독, <플란다스의 개>의 봉준호 감독, 장편 데뷔작을 준비중인 임필성 감독 등과 더불어 일종의 ‘동인’처럼 어울려 지낸다. 서로의 영화에 직간접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는 사이인 셈이다. 지난 3월1일 류승완 감독의 실질적인 첫 장편 <피도 눈물도 없이>(이하 <피눈물>)가 개봉한 데 이어, 오는 28일 박찬욱 감독의 신작 <복수는 나의 것>이 관객을 찾아간다. 그런데 하필 두 작품 모두 누아르다. <피눈물>은 “밑바닥 인생의 두 여자가 투견장의 판돈이 든 돈가방을 훔치는 액션누아르”이고, <복수…>는 유괴당했다가 숨진 딸의 복수를 처참하게 벌여나가는 아버지(송강호)의 모습을 그리는 누아르다. 필름누아르를 문학장르로 보자면 하드보일드(수식없이 건조한 문체로 대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문학 스타일)에 해당할 텐데, <복수…>는 “한국 최초의 하드보일드”라는 표어를 붙였다. 올해에는 누아르, 스릴러, 호러같은 어두운 장르의 영화가 부쩍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래서 두 감독을 초빙해 누아르를 ‘안주’삼아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피눈물>이 통속, 원색적이란 느낌의 ‘펄프’란 말을 누아르 앞에 붙인 까닭부터 시작됐다.

펄프느와르와 ‘메롱작전’

사진/ (박승화 기자)
박찬욱(이하 박) 펄프누아르가 뭔데?


류승완(이하 류) 김지운 감독이 던져준 말인데, 전 처음에 이런 식으로 생각했어요. 어둡고 축축한 뒷골목에서 고양이가 생선머리를 찾아 헤매는데 저쪽에서 하이힐을 신은 여자가 또박또박 걸어오는…. 경쾌하지만 가볍지 않고, 무겁지만 어둡지 않은.

경쾌의 경은 가벼울 경자 아니야?

어쩌다 말이 바뀔 때도 있어요. 어둡지만 무겁지 않은. (웃음)

내 말은 경쾌하지만 가볍지 않다는 말은 모순이다 이거지.

펄프누아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인데 뭐.

이건 말 된다. 빠르지만 가볍지 않은. <피눈물>은 빠르잖아. 가이 리치 영화(<록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스내치>)하고 비슷하기는 하지만 훨씬 처절해. 가이 리치는 영화를 산뜻하게 끝내잖아. 마돈나한테 장가간 남자와 강혜정(<피눈물>을 제작한 ‘좋은 영화사’의 기획실장)하고 결혼한 남자의 차이랄까.

‘타란티노(<펄프픽션> <재키 브라운>)다’, ‘가이 리치다’, 이런 이야기 나오는 거 피하려고 굉장히 애썼는데, 그런 말들 많은 거 좀 억울해. 영향받은 걸 숨기겠다는 게 아니고, 극단적으로 몰아붙이고 네오갱스터나 최근 필름누아르의 냄새를 풍기는, 이를테면 고전적인 액션영화의 흥분은 없잖아요. 제 나름대로 퓨전 장르를 만들어내려고 한 건데.

맞아, 완전히 달라.

<공동경비구역 JSA>의 각본을 제가 썼으면 북한군 초소에서 총싸움하는 게 한 40분 걸렸을 거예요. 탈출하는 과정도 길고. 이렇게 취향이 비슷하고 영향받은 게 같더라도 다른 건데.

어디서 많이 본 것처럼 시작해서 살짝 다른 데로 빠져서 엉뚱하게 끝내는 영화가 상업영화를 하는, 중요한 작전 중 하나인 거 아닌가. 주인공이 다해서 몇명이야?

사진/ (박승화 기자)
중요한 대사를 치고 빠지는 인물이 17명.

그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 안에) 다 들어오니까 그게 장점이야. 여자들의 액션이 강한 영화라고 하지만, 그것도 뺑끼 같아. 그런 척했다가 다른 인물들이 다 중요하게 부각되니까.

일종의 메롱(혀 내밀며) 작전이죠. 그런데 <피눈물>에서 경선이(이혜영)가 ‘돈으로 세상 사는 거 아냐’ 하고는 정작 돈을 딱 챙겨가는 장면에서 이혜영 선배는 좀 어색하다고 하는데, 저는 재밌다고 밀어붙였어요. 촬영 때 아무도 안 웃었는데, 관객은 그 부분에서 제일 많이 웃더라고요. 드디어 B(급)의 세상이 오기 시작한 거 같아. 드디어.

누아르의 매력이라고 하면, 일단 선악 이분법에서 벗어나 있으니까 현실적이라는 게 있겠지. 장르영화이면서 현실적이라는 게 사실 모순이지만 그게 가능한 게 필름누아르니까.

그리고 감상적이지 않아서 감상적인 영화보다가 이런 영화보면 개운하고. 이런 면에서 지난해 유행한 조폭영화들은 누아르 정서하고 차이가 많아.

<복수…>, 세고 짧다

그런데 지난해 흥행이 너무 잘돼서 작품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못 받은 게 <친구> 같아요. 전 굉장히 좋게 봤어요. 전통적 의미의 갱스터이자 필름누아르잖아요. 현상도 특수현상하면서 누아르의 음영 대비도 확실하게 했고. 정공법으로 만든 영화인데.

그렇지. 명대사 진짜 많잖아. 장동건이 마지막에 한 말을 지금은 재밌게 이야기하지만 처음 봤을 때는 충격이었지. 어떻게 그런 말을 생각해냈을까 몰라. 누아르의 특징에 하나를 더하자면, 스타일이 강하다는 거잖아. 난 이런 점에서는 달라. <복수…>는 스타일이 강하지 않거든.

하드보일드란 말이 더 어울릴까.

일부러 필름누아르란 말을 안 쓰려고 하는 것도 비주얼에서 독특하지만 스타일이 두드러지지 않거든.

무기교의 기교!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전 반대 지점에서 누아르의 매력을 느껴요. 스타일리시한 거. 누아르영화에서 주인공들이 폼을 잡을 수 있잖아요. 예컨대 중절모 쓰고 권총을 들고 멋있게 서 있거나, 수많은 홍콩영화에서 보여준 것처럼 고속으로 걸어다니고. 얼마 전 회고전 열린 스즈키 세이준 영화에서도 폼을 잡아서 멋있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는데, 어떤 식이든 가능한 게 좋아요. 선악의 이분법을 흐리는 건 저도 좋아요. 말하자면 악한 놈이 더 악한 놈을 이기는 거죠. 아니면 질 수도 있고.

누가 덜 나쁘냐에 따라 주인공이 달라지지.

그러니까 서부극도 존 포드보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서부극이 더 좋아요. 누아르도 고전 누아르보다 홍콩 누아르에 더 영향을 받았어요. 홍콩 누아르가 허황되다고 하지만 주인공들이 대부분 범죄자이고 또 낙오자들이죠. <영웅본색>이나 <성항기병>처럼.

<피눈물>은 <영웅본색>보다 <성항기병>에 더 가깝지.

또 예전에 우리나라에 존재했던 갱영화와 비교하면 다른 게 설교를 하지 않잖아. 악당 두목이 알고보니 간첩도 아니고. 한국에서 정통 장르영화가 생겨나기 힘들었던 게 가령 옛날 정통 액션이라는 영화만 해도 반공이데올로기로 만들어진 거잖아요. 하다못해 동시대 일본의 야쿠자영화는 그 세계 안에서 정리가 되지만, 우리는 건달의 세계 안에서 정리되는 게 아니잖아요. 꼭 정치적인 어떤 게 들어오고.

맞아.

<제3부두 고슴도치> 같은 거 보면 두목이 꼭 간첩이야. 그런 점에서 <복수…>는 ‘정말 세다’, ‘짧다’는 느낌이에요. 미니멀하게 할 얘기만 딱 하는 게 좋았어요. 기교를 별로 안 부리는 대신에 엄청 극단적인 맛이 보이고. 박 감독님이 초반에 시나리오 보여주면서 익스트림 롱숏이랑 익스트림 클로즈업이 느닷없이 막 나와서 충격을 주고 싶다고 했는데 그게 정말 궁금해요.

드라이하게 가려고 굉장히 노력했지. 감상성을 없애려고. 난 장르영화를 보기는 좋아하고 만들기는 싫어하는데, 장르영화는 아주 순수한 유희정신이 있어야 하는 거 같아. 한국 감독이나 관객은 그런 것보다는 영화 바깥에서 뭔가를 끌어와야 좋아하지. 명분 좋아하고.

메시지 좋아하고, 전작과 비교하고. 우리는 장르영화에 대한 기반이 없어서 그런지 장르를 비트는 것 자체가 어려운 거 같아요.

비틀기 전이 뭔지 잘 모르니까 비틀어놔도 어떻게 달라진 건지 모르는 거지.

진지하게 얘기하다 삐꾸나는…

예를 들어 <킬리만자로>(오승욱 감독의 누아르영화)에서 관객이 저걸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몰라서 당황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칼을 팍 꼽는데 손이 미끄지는 바람에 피가 줄줄 나는 장면도 그랬어요. 순수하게 웃기려고 한 건데 저걸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다른 의미가 있을 거야 하고 생각하느라 즐기지를 못하는 거죠. (박찬욱 감독의) <삼인조> 같은 영화도 만드는 사람들은 막 웃고 아싸 하면서 즐겁게 만들었는데, 관객은 무슨 의미가 있을 거야 하고. 그러면 갑갑하죠.

<복수…>에서도 웃기는 장면은 참 많은데 아무도 안 웃을 거 같아. 내가 좋아하는 게, 예컨대 <킬리만자로>처럼 굉장히 심각하게 가다가 그게 못 견딜 정도에서 삐딱하게 가면서 웃기는 건데. 그 영화에서 잘린 장면 중에 이런 게 있어. 박신양이 어느 범죄자의 집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오승욱 감독이 미술감독이랑 컨셉을 이야기하는데, 이런 잡범의 방에는 10cm 위로는 아무것도 없을 거야, 대신 방 안에는 꼬깃꼬깃한 휴지, 그러니까 딸딸이에 쓴 휴지가 잔뜩 널려 있을 거다, 라는 게 미술 컨셉이었다는 거야. 한 인간이 도스토예프스키와 왕우(<외팔이 복서>를 만든 홍콩감독)를 동시에 좋아하면 저렇게 되는 거지.

일동 우하하.

B급영화에 필름누아르가 많아서 주류 정서와 약간 벗어난 게 특징이죠. 유머의 방식도 그렇고. 진지하게 도스토예프스키 이야기하다가 삐꾸나는 대사 하나 치는 식으로. 기본적으로 자세잡고 다니는 사람을 재수없어하는 정서라고 할까. 반대로 이런 걸 조롱할 수도 있고 극단으로 갈 수도 있고.

아주 극단적인 상황을 세팅해놓고 여기서 감상을 빼는 게 영화적으로 재밌잖아. 건조한 일상을 그려놓고 감상을 빼면 당연해서 재미없고, 반대로 극단적인 상황에서 막 펑펑 울고 음악 짠 하고 휘몰아치면 장식적으로 다가오고. 그런데 이 두 가지의 반대되는 게 만나면 영화적으로 더 강하고 새롭고 충격도 크지 않을까? 아이를 잃은 아버지가 술 마시며 괴로워하는 건 잠깐 지나가고 아주 무표정하게 마치 타고난 살인자처럼 행동하면.

기타노 다케시가 현실로 들어온 거죠. 사석에서 다시는 이런 작품 못 만들 거 같다고 그랬다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래.

크∼, <벤허>의 윌리엄 와일러에 필적한 만한 말이군.

아니, 내가 걸작을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고. 내 능력의 한계 속에서 더이상은 잘 못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이야. 배우들이 좋고 또 제 역을 만났고. 지금까지 한 것에 비하면 가장 느슨하게 작업을 진행했는데, 잘 만들어야지 하는 욕심도 안 부리고 편안하게 했더니 그게 주효했던 거 같아. 야심없이. 작품에 대해서는 아주 만족해. 이게 걸작이라고 하는 건 아니잖아?

걸작이라는 거죠.

정재영에 대해 쓰지 않지?

요즘에 부쩍 누아르, 스릴러, 호러가 유행처럼 나오고 준비되는 이유가 감독이나 관객 취향이 예전처럼 질퍽거리는 걸 싫어하는 데 있는 게 아닐까. 쿨한 걸 좋아하잖아.

예전 사이클로 돌아가는 거 같아요. 요즘 80년대 정서를 가지고 오는 게 지금도 제작중이고. 30년 전 미국에서 이소룡 영화 붐이 일면서 흑인영화에 쿵후영화가 많았잖아요. 그게 주류 정서로 바뀌면서 <블레이드>나 <매트릭스>로 나타난 게 요즘 아닌가.

무당파 숭배하는 래퍼 우탕 클랜 있잖아, 죽이지 않아? 이런 친구가 메인스트림의 스타가 됐잖아. <블레이드>가 잘되는 것처럼.

<장군의 아들>이 잠깐 붐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액션영화가 주류가 된 적이 없었는데, 과거 60, 70년대처럼 액션영화가 주류로 진입하는 것 같고. 뭔가 큰 사이클이 한번 바뀐 것 같아.

<피눈물>은 한국에서 본격적인 액션영화니까, 잘 먹힐 것 같아. 정두홍(무술감독 겸 조연)씨가 독불과 싸우면서 마무리할 때 권투하는 거 흉내내잖아. 그거 권투선수 출신의 독불을 약올리는 거잖아. 액션이어도 무작정 치고 받는 게 아니라, 영화에 깔려 있는 걸 가지고 액션을 드라마로 만들어가는 게 장점인 것 같아.

예전에 무술영화에서 상대의 권법을 똑같이 해가지고 권법의 빈틈을 알아내는.

“너, 권투해? 그럼 권투로 상대해줄게” 하는 거지. 근데 <피눈물>에 대한 기사나 평에서 정재영에 대한 스페셜 멘션이 왜 없지. 왜 그런지 몰라. 우린 영화보고 정재영 이야기 무지 많이 했는데 글쓰는 사람들은 왜 안 그렇지?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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