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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매킨지 마술’의 베일을 벗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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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3-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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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팅 업계의 최강자 메킨지만의 비법…문제해결에 적용되는 가설-반증 방법론의 위력

매킨지는 미국에 근거지를 둔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이다. 세계 150대 기업 가운데 100여개가 매킨지로부터 이런저런 비즈니스 문제에 대한 조언을 받느라 수십만∼수백만달러씩 갖다 바친다. 한국의 숱한 기업들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매킨지의 한마디에 기업의 명운을 걸어야 했던 뼈아픔을 경험했다.

매킨지가 컨설팅 업계의 강자로 군림하는 이유는 고객, 곧 기업의 비즈니스 문제를 예리하게 분석해서 독창적이면서도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그 혁신적인 방식은 두꺼운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경쟁업체들은 물론, 고객 기업들한테도 그들의 문제해결 방식은 잘 노출되지 않기로 유명하다.

<맥킨지는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에단 라지엘·폴 프리가 지음, 이순주 옮김, 김영사 펴냄, 02-745-4823, 9900원)는 그 은밀한 조직의 장막을 걷어내고 ‘세계 최초로’ 매킨지의 감춰진 경영비법을 세상에 들춰냈다.

에단 라지엘과 폴 프리가는 각각 매킨지 뉴욕 사무소와 피츠버그 사무소에서 컨설턴트로 일한 경력이 있다. 그들은 매킨지에서 배운 문제해결 방법은 그 어떤 컨설팅 회사도 갖지 못한 독특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매킨지 출신으로 지금은 다른 곳에서 일하는 매킨지 ‘동창생’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그 비법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끈다.

마침내 폭로되는 매킨지식 마술의 비밀은 뜻밖에도 단순하다. 이 책은 모두 8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부터 4장까지는 사실에 근거한 가설로 문제를 해결하는 매킨지식 문제설정 과정에 대해 논의하며, 이어 그것을 이용해서 어떻게 조직에서 발생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출발점은 ‘문제의 구조화’

문제해결의 출발은 ‘문제의 구조화’이다. 일단 조직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감지한 뒤 그 문제의 범위를 설정하고 문제를 구성요소들로 세분해서 해결책에 대한 가설을 내놓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가설을 입증하는 데 필요한 분석틀을 짜는 ‘분석설계’이다. 이 설계에 맞춰 ‘자료수집’이 이뤄지면, 마지막으로 분석이 가설을 입증하는지 반증하는지 알아보고 고객을 위한 행동노선을 개발하는 ‘결과해석’이 뒤를 잇는다.

이렇게 요약해놓고 보니 새삼 놀랍다. 세계 유수 컨설팅사의 ‘독창적’ 기법치고는 너무나 ‘평범해’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놀라운 점은 이 범상한 방식을 채택한 기업을 매킨지 바깥에선 도무지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제너럴일렉트리(GE)에서 백악관까지 세계 곳곳의 거대 조직에 포진한 매킨지 동창들의 하소연을 가감없이 전한다. 그들은 “매킨지에선 너무나 당연했던 문제해결의 구조화 방식을 그 어떤 조직에서도 쉽게 만날 수 없었다”고 토로한다. GE의 고위 경영자로 옮긴 한 매킨지 동창은 “GE에 구조화의 마인드를 불러일으킨 것만으로도 나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회사에 창출해주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러한 방식은 거액의 학자금을 쏟아부어야 했던 일류 MBA 과정에서도 결코 배우지 못한 것이다. 매킨지 동창생들은 몸에 익은 매킨지식 방식이 자신들이 진출한 조직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확고하게 만들어주는 비책이 되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매킨지식 문제해결 방식이 완전히 독창적인 것은 아니며, 오스트리아 출신 철학자 칼 포퍼의 ‘과학적 방법론’에 빚지고 있다는 점은 특기할 필요가 있다. 칼 포퍼는 이른바 ‘가설과 반증’의 체계만이 유일한 과학적 방법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존의 이론에 바탕해 새로운 가설을 만들어내면, 이는 반증되지 않는 한 이론으로서의 지위를 지닌다고 말했다. 오늘날 현대 과학이론의 창출은 대부분 이런 방식을 통해 이뤄진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시간의 역사>(삼성출판사, 35∼39쪽)에서 이러한 이론 창출 방법을 잘 요약해 보여준다.

가설-반증 방법론의 위력은 주요한 경영학이론의 하나인 TOC(Theory Of Constraint: 제약조건 이론)를 소설 형식으로 담아낸 책 <더 골>(동양문고)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이 책의 저자인 엘리 골드렛은 물리학자이며, 물리학 연구에서 얻은 발상과 지식을 활용해 TOC를 수립했다. 가설-반증 방법론은 변증법적 관점과 패러다임 변동이론에 의해 비판받아왔지만, 여전히 이론의 수립방식으로 광범위하게 채택되고 있다. 가설을 세웠다 반증하는 방식은 반복이 가능해 실험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경영현장에서 이에 기댄 문제해결 방식이 각광받는 것도 바로 이러한 높은 생산성 때문일 터이다.

경영 또한 사람의 일이며, 가장 중요한 능력은 문제를 구조화하고 핵심에 육박하는 힘임을 이 책은 말해준다. 그 능력은 꼭 MBA를 마쳐야 길러지는 것이 아님을 또한 짐작하게 해준다. 과학적 방법론이 무엇에 쓸모 있을까 고민하는, 취업걱정 삼매의 비경영학도들이여, 희망을!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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