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아이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고백을 하고 얼마나 많이 ‘까일’까. 그리고 얼마나 클까. 바라건대 속앓이만 하거나 지레 포기하지 말고 기질대로 성향대로 도전하는 쪽이었으면 좋겠다. 실패하고 쪽팔리더라도 말이다. 무엇보다 관계의 상투성에 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소하게는, 내 생일인데 혹은 기념일인데 선물 뭐 해주나, 기대하는 거. 이 짐 무거운데 들어주지 않나, 기다리는 거. 지난번에 내가 이러했으니 이번에는 자기가 저러하겠지, 믿는 거…. 기대하지 말고 기다리지 말고 막연히 믿지 않길 바란다. 대신 구체적으로 요구했으면 좋겠다. 상대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는 연애는 호르몬의 작용이라고 본다. 당장 연애가 좀 안 돼도 어쩔 수 없다. 괜찮다. 좋은 마음으로 호르몬의 축복을 바라는 수밖에. 조상 삼대가 나라를 구했거나 전생에 좋은 일을 했다면 그 기운과 에너지도 어떻게든 전해지겠지. 한마디로 연애는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문제는 연애에 성공한 뒤다. 공식 커플이 된 뒤, 여기서부터는 내 책임이다. 자식도 노력하지 않으면 예뻐 보이지 않는데 배우자(파트너)는 오죽하랴. 사귈 때 장점으로 보이던 것이 단점으로 바뀌는 건 시간문제다. 단순한 이유다. 관계의 목적이 달라져서다.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 바뀐 것이다. 하지만 남의 사람이라면 다 이해될 일도 내 사람에게는 유독 예민하고 억울해진다는 게 공식 관계의 함정이다. 배우자(파트너)도 이웃같이 사랑할 일이다. 정중히 설명하고 정확히 요청하는 게 좋겠다. 층간소음같이 말이다. 그러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모른다. 알아서, 잘하는 상대는 없다. 좋아하는 아이가 생긴 내 아이는 연일 기분이 좋다. 심부름도, 할 일도, 척척 한다. 그 아이에게 고맙다. 불러다 라면이라도 한번 끓여 먹이고 싶은데, 엄마는 웬만하면 나가 계시라고 하겠지. 쩝. 김소희 칼럼니스트
독자 퍼스트 언론, <한겨레21>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