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프랭클은 그곳에서 죽어가는 여자를 만났다. “나는 운명이 나에게 이렇게 엄청난 타격을 가한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어요.” 그 여자는 뼈밖에 안 남은 손가락으로 밤나무 가지 한 개와 꽃 두 송이를 가리켰다. “나무가 이렇게 대답해요. 내가 여기 있단다. 나는 생명이야.” 프랭클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아내와 상상의 대화를 이어가며, 아우슈비츠 입소 때 빼앗긴 원고를 머릿속으로 완성해가며 살아남았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생존한 그는 사람한테는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는 전제로 그 의미를 대면하도록 돕는 ‘로고테라피’를 정립한다. ‘의미’는 어떻게 찾나? 지금 여기에서, 창조로, 사랑으로,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한 태도를 결정함으로써 찾을 수 있다. 잡으려 할수록 도망치는 자아실현이 아니라 세상과 타인으로 열린 시선 속에서 붙잡을 수 있다고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해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지하철에서 오다리에 허리가 뒤로 살짝 젖혀진 할머니가 신바람 나 다른 할머니에게 얘기 중이다. 아는 사이 같지는 않는데 같이 탄 김에 말도 튼 것 같다. 봇짐을 닮은 배낭을 멘 신바람 할머니가 자랑 중이다. “내가 나이가 70이 다 돼가는데 청소를 하거든요, 빌딩 청소. 근데 우리 회사가 청소 회사 중에 제일 커요. 휴가도 있다니까요. 평생 일을 쉰 적이 없어요. 텃밭도 있어요. 감자랑 심었는데 엄청나게 실해요. 자식들 다 나눠줬죠.” 별 관심 없어 보이는 다른 할머니는 “아이고, 대단하시다” 추임새를 연방 넣었다. 오다리 할머니는 한바탕 손을 흔든 다음 내렸다.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등 뒤에 봇짐이 달랑거렸다. 가을에 핀 손톱만 한 해바라기꽃 아버지 병수발 드는 친구는 추운데 산책 나가겠다는 아버지 뜯어말리느라 한바탕 설전을 벌인 뒤 출근했다. 임원 치다꺼리 중인 친구는 나중에 자기 이름이 지워질지 모를 보고서를 쓰느라 밤잠을 설쳤다. 보고서가 꽤 맘에 들었다. “최 과장 최고”에 중독된 친구는 ‘이게 착취 같기도 한데’라고 한번 갸우뚱했다가 또 불도저처럼 일했다. 그렇게 하루의 시련이 주는 질문에 답했다. 유일무이한 자기 방식으로. 올봄, 해바라기 씨앗 두 개를 궁금해서 샀다. 정말 해바라기가 될까? 휘청휘청 자랐다. 옆에 세운 나무젓가락을 치우면 금방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러더니 가을, 손톱만 한 꽃이 기어코 핀다. 이렇게 작은 해바라기꽃은 처음 봤다.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빅터 프랭클)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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