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애환의 멜로디… 집시음악의 정수를 보여줄 바이올리니스트 라카토슈 내한
기원이 9세기까지 거슬러올라가는 바이올린은 유럽의 가장 중요한 콘서트 악기이다. 말총으로 만든 털이 달린 활에 송진 가루를 발라 양의 심줄로 만든 줄을 그어 나무통을 울리게 하는 바이올린은 악기들 중에서 가장 높은 음을 낸다. 바이올린은 여성적이고 섬세하면서도 음량이 풍부한 소리를 지니고 있으며 서양 악기들 중에 가장 섹시하고 음색이 선명하다. 기타가 스페인을 중심으로 한 특정한 지역에서 대중화된 반면 바이올린은 유럽 전역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한다. 뿐만 아니라 이 악기는 서양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동쪽으로 전파되면서 유대인의 가장 중요한 민속 악기가 되었으며 멀리 인도로 건너가 다른 인도 민속 악기와 더불어 인도음악을 연주하는 주요 악기의 하나로 취급된다. 수브라마니움 같은 바이올리니스트는 인도음악을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대표적인 음악가로 꼽힌다.
집시가 사랑한 악기, 바이올린
그러나 역시 바이올린이 유럽 문화사의 ‘길’을 따라 이동하면서 만난 가장 숙명적인 민족은 집시들이다. 그들은 바이올린과 함께 이 캠프에서 저 캠프로 이동하였고 바이올린의 선율을 통해 자신들의 애환을 달랬고 바이올린의 리듬을 통해 춤을 추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사실상 원래의 집시 민속 음악은 멜로디 악기가 동반되지 않고 노래와 리듬 악기들로만 구성된 모습이었지만, 18세기경부터 본격적으로 스타일화하기 시작한 오늘날의 집시음악은 백파이프와 스트링 오케스트라로 구성된 악단이 연주하는 게 보통이다. 그 악단에서 바이올린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바이올린은 멜로디 파트뿐 아니라 리듬 파트에서도 2박자의 리듬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근본적으로 집시음악에는 고향이 없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집시들에게 고향이 없기 때문이다. 집시들에게는 집시 ‘캠프’가 고향이다. 집시 캠프에서 사는 집시들의 애환은 거장 에밀 쿠스투리차 감독이 만든 <집시의 시간>에 잘 그려져 있다. 물론 오늘의 세상을 사는 집시들이 모두 그렇게 노마드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도 도시화된 유럽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산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여전히 ‘캠프’의 개념이 남아 있다. 캠프는 떠돌이 생활을 하는 그들의 본거지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들의 공동생활이 이루어지는 생활공간이기도 하다. 집시들은 공동생활을 통해 여전히 ‘가문’을 유지한다. 이러한 경우는 특히 뮤지션들에게서 두드러진다. 집시 뮤지션들은 거의 대부분 음악을 하는 가문의 후예들이다. 그렇긴 해도 집시음악의 본거지를 굳이 들자면 헝가리를 꼽아야 할 것이다. 헝가리의 음악은 벨라 바르톡이라는 천재 작곡가로 압축되기 일쑤지만 사실 헝가리 음악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음악적 스타일은 집시음악이다. 부다페스트 시내에 있는 수많은 클럽과 바에서 집시들의 열정적인 음악이 매일 울려퍼진다. 3월9일 내한하는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로비 라카토슈 역시 헝가리 출신의 집시이다. 라카토슈는 신세대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중 최고로 꼽힌다. 1965년생인 그는 전설적인 집시 바이올린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을 거슬러올라가면 야노스 비하리 남작이라는 신화적인 집시 바이올리니스트가 있다. 다른 집시 뮤지션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어려서부터 음악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아홉살 때 청중 앞에서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다른 집시 바이올린 주자들이 집시 스타일의 바이올린 주법만을 배워 익히는 반면 로비 라카토슈는 집안에서 음악을 배웠을 뿐 아니라 헝가리 최고의 음악학교인 벨라 바르톡 콘서버토리에서 실력을 연마하였다. 1984년에 이 학교에서 수석을 차지하기도 한 그는, 집시 스타일의 바이올린과 정통 바이올린 주법을 동시에 구사할 줄 아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다. 앙상블 역시 수준급
학교를 졸업한 뒤 그는 본격적으로 클럽 활동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브루셀스 클럽은 그가 자신의 앙상블과 더불어 1986년에 처음 무대에 선 이래로 1996년까지 줄곧 음악활동이 이루어지는 터전이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활동하면서 세계적인 음악가로서 전세계를 누비며 연주여행을 다니는 뮤지션으로 성장하였다. 유럽 전역은 말할 것도 없고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 라디오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와 드레스덴 필하모닉과의 협연도 유명하다.
그의 음반이 처음 발매된 것은 1998년. 독일의 명문 레이블인 도이치 그라모폰이 그의 실력을 인정해 그와 독점 계약을 맺은 것이다. 그가 그라모폰에서 처음 낸 앨범은 사실 본격적인 집시 바이올린을 감상할 수 있는 음반은 아니다. 코다이, 브람스, 존 윌리엄스 등 다양한 작곡가들의 곡이 실려 있다. 이 앨범으로 그는 집시음악 마니아를 넘어서는 광범위한 청중과 만날 수 있었다. 그 이후 1999년에 발매된 <부다페스트 공연 실황>(Live From Budapest)은 좀더 본격적으로 집시 스타일에 충실한 음악들이 실려 있다. 이 앨범에서 그는 집시 바이올린의 진수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단조의 멜로디를 따라가는 그의 손가락은 더할 나위 없이 정교하고 화려하다. 아주 정확하게 음정을 짚어내면서도 그 움직임은 전광석화처럼 느껴진다. 풍부한 감성을 지닌 집시 특유의 감상적인 느낌이 그 손가락에 실려 울려퍼진다. 자신이 작곡한 노래부터 러시아 민요, 전설적인 집시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의 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이고 있는 이 음반은 그의 내한이 집시음악의 진수를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점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그의 앙상블 역시 그와 더불어 수준급의 실력을 보여준다. 멤버들은 모두 그의 오랜 친구들이다. 다른 집시 밴드와 마찬가지로 이 앙상블도 아주 어려서부터 호흡을 맞춰 서로의 미세한 감정적 동요까지도 잡아낼 수 있는 그야말로 ‘한통속’이다. 피아노를 치는 칼만 체키는 1962년생인데, 그 역시 벨라 바르톡 콘서버토리를 나온 뮤지션. 체키는 클래식 교육뿐 아니라 아틸라 가레이로부터 재즈 피아노를 사사받기도 한 탄탄한 실력의 피아니스트이다. 라슬로 보니는 앙상블의 제2 바이올리니스트이다. 그는 1968년생으로 로비 라카토슈의 아버지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한 가족처럼 자란 사람들이 한 앙상블에서 그룹 활동을 하니 하모니는 당연히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집시의 음악은 무엇보다도 그 자연스러움의 발로라 할 것이다.
집시음악의 본질적으로 즉흥음악
그 누구도 집시들에게 이런 음악을 하라, 저런 멜로디를 써라,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집시음악은 본질적으로 즉흥음악이다. 장고 라인하르트와 함께 활동했던 전설적인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슈테판 그라펠리가 재즈 바이올린 주자로서도 최고봉인 것은 집시음악의 즉흥성이 재즈의 영역에서도 무리없이 소화되기 때문이다. 로비 라카토슈도 예외는 아니다. 마음가는 대로 손가는 대로 바람처럼 지판을 누비는 그의 손가락은 정말 거칠 것이 하나도 없다. 애수에 젖은 집시 음계의 어디로도 그의 손가락은 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집시음악의 진수를 역시 공연실황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자유로운 움직임 그 자체. 한획 한획 거침없이 그어대는 붓놀림처럼 그의 활놀림도 다음 순간을 모른다. 그러나 어디를 가더라도, 그 손가락은 틀림이 없다. 대가들의 손놀림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그 자유로움을 끌어내는 것은 끊임없는 연마뿐이다. 그렇게 자유로움과 그것을 지탱하는 탄탄한 실력이 로비 라카토슈에게서는 공존한다. 아직 마흔도 안 된 그지만, 음악은 벌써 익을 대로 익었다(공연문의: 02-501-5330).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사진/ 신세대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중 최고로 꼽히는 로비 라카토슈.

사진/ 에밀 쿠스투리차 감독의 <집시의 시간>은 집시들의 애환과 음악을 스크린에 담았다.
근본적으로 집시음악에는 고향이 없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집시들에게 고향이 없기 때문이다. 집시들에게는 집시 ‘캠프’가 고향이다. 집시 캠프에서 사는 집시들의 애환은 거장 에밀 쿠스투리차 감독이 만든 <집시의 시간>에 잘 그려져 있다. 물론 오늘의 세상을 사는 집시들이 모두 그렇게 노마드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도 도시화된 유럽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산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여전히 ‘캠프’의 개념이 남아 있다. 캠프는 떠돌이 생활을 하는 그들의 본거지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들의 공동생활이 이루어지는 생활공간이기도 하다. 집시들은 공동생활을 통해 여전히 ‘가문’을 유지한다. 이러한 경우는 특히 뮤지션들에게서 두드러진다. 집시 뮤지션들은 거의 대부분 음악을 하는 가문의 후예들이다. 그렇긴 해도 집시음악의 본거지를 굳이 들자면 헝가리를 꼽아야 할 것이다. 헝가리의 음악은 벨라 바르톡이라는 천재 작곡가로 압축되기 일쑤지만 사실 헝가리 음악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음악적 스타일은 집시음악이다. 부다페스트 시내에 있는 수많은 클럽과 바에서 집시들의 열정적인 음악이 매일 울려퍼진다. 3월9일 내한하는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로비 라카토슈 역시 헝가리 출신의 집시이다. 라카토슈는 신세대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중 최고로 꼽힌다. 1965년생인 그는 전설적인 집시 바이올린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을 거슬러올라가면 야노스 비하리 남작이라는 신화적인 집시 바이올리니스트가 있다. 다른 집시 뮤지션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어려서부터 음악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아홉살 때 청중 앞에서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다른 집시 바이올린 주자들이 집시 스타일의 바이올린 주법만을 배워 익히는 반면 로비 라카토슈는 집안에서 음악을 배웠을 뿐 아니라 헝가리 최고의 음악학교인 벨라 바르톡 콘서버토리에서 실력을 연마하였다. 1984년에 이 학교에서 수석을 차지하기도 한 그는, 집시 스타일의 바이올린과 정통 바이올린 주법을 동시에 구사할 줄 아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다. 앙상블 역시 수준급

사진/ 재즈처럼 집시음악은 본질적으로 즉흥음악이다. 라카토슈의 내한 공연은 이런 집시음악의 진수를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