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무죄 선고 나흘 뒤인 8월18일 ‘제5차 성차별 성폭력 끝장집회’에 참가한 이들이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일찍이 남성 편향의 형법 체계를 비판해온 형법 연구자의 모범 답안은 뭘까. 그는 현행 강간죄 규정의 해석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성폭력 범죄의 범위를 넓히고, 현행법에 규정되지 않은 ‘비동의간음죄’ 신설은 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강간죄 해석 확장은 여성계의 요구와 일치하지만, 비동의간음죄 부분은 2003년 초판이 발간된 뒤부터 지금까지 내내 여성계와 입장을 달리하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비동의 성교’ 미국은 3급 강간죄 ‘최협의(가장 좁은 의미) 폭행·협박설’은 강간죄 유죄 수준의 폭행·협박에 미달하는 강제력을 동원한 강제성교가 ‘무죄’가 되는 ‘비범죄화’ 비판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피해자의 거부 의사를 폭행·협박으로 제압하고 성교를 하였음이 확인된 피고인이 형사책임에서 완전히 해방된다는 것은 과소범죄화이다. 사용된 폭행·협박의 정도는 유·무죄가 아니라 양형에서 고려되어야 할 문제이다.” 비동의간음죄 신설 요구는 폭행·협박이 수반되지 않으나 피해자의 동의가 없는 간음 행위를 처벌하지 않는 또 다른 공백을 메우려는 노력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자료(제20차 젠더와 입법포럼 ‘#미투 입법 과제’)를 보면 #미투 운동 국면에서 발의된 5건의 형법 개정안 가운데 4건은 비동의간음죄를 신설하자는 법안이다. ‘폭행이나 협박’만 규정된 현행 강간죄 구성 요건에 비동의 요건(‘사람의 의사에 반하여’ 또는 ‘상대방의 명백한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을 추가하거나 비동의 요건만 남기자는 내용이다. 기존 강간죄는 그대로 두고, ‘동의 없이 사람을 간음한 경우’를 규정한 ‘비동의간음죄’를 신설하자는 방안(천정배 의원 대표 발의)도 있다. 미국 뉴욕주와 워싱턴주의 형법은 비동의 성교를 3급 강간죄로 규정한다. 조 수석은 역시 ‘경(輕)한 강간죄’를 신설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반면 조 수석은 ‘비동의간음죄’ 신설에는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여성의 ‘동의’ 여부가 범죄 성립의 관건인데 이를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고 더불어 “성교에 대한 동의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1990년대 초반 성폭력처벌법이 입법될 때부터 비동의간음죄에 대해 제기된 우려였다. 최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94년(당시 경원대 법학과 교수) 당시 이렇게 지적했다. “(비동의간음죄와 관련해) 동의의 개념이 포괄적이고 애매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 있다. 그러나 형법에서 이런 정도의 불확정 개념은 매우 많다. 가령 촉탁 또는 승낙, 폭행, 음란, 위계 또는 위력 등. 이러한 개념은 해석론을 통해 판례를 통해 구체화되어지는 것이다.” 조 수석은 또 비동의간음죄가 “남성의 자기통제를 요구하고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는 여성의 의지와 능력을 폄하하는 것”이며, “폭행·협박·위력 등이 사용되지 않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의 경우에도 피해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무조건 형법이 동원되어야 한다는 것은 오히려 여성주의의 ‘적’인 가부장주의의 관념의 산물일 수 있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선 2006년 형법 개정을 위해 만든 여성인권법연대에서 활동한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당시 한국외대 법학과 교수)의 지적이 맞선다. “동의 없는 성적 행동을 처벌함으로써… 여성이… 나약한 존재로 상정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 중시의 성담론과 해석에 의하여 여성의 언어와 의사가 왜곡되어 해석되는 현실에서 자신의 No(거부 의사)가 그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으면서 No로 존중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법적 자원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여성인권법연대 토론회 자료집, 2007) 과잉범죄냐 과소범죄냐 비동의간음죄가 기존에 과소범죄화된 성폭력 범죄를 정상화하는지, 아니면 과잉범죄화인지를 놓고 논쟁은 계속될 것 같다. 특히 피해자가 동의를 사후에 비동의로 뒤집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우려(“합의 성교 후 관계가 나빠져서 ‘비동의간음’이었다고 고소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충분히 예상된다”)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한국여성정책원의 ‘#미투 입법 과제’ 포럼에서 발제된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내지 동의가 없는 성적 침해의 범위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비동의 요건의 규정 방식, 법정형의 설정, 유형력 내지 무형의 지배력과의 체계, 비동의에 대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및 피고인의 고의에 대한 판단 기준에 대한 설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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