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석 달 동안 두 번 해방되었을 때 인간성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Burt Hardy 촬영.
사진❺와 ❻은 작전지역에 있던 주민들이 겪은 참상과 공포를 보여준다. 사진❺는 월미도 주민이 미 해병대 병사들에게 월미도의 지형을 설명해주는 것을 시각화하고 있지만, 정작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불타고 있는 민가였다. 월미도 상륙과 소탕전에 대한 사진이 꽤 많지만, 대부분 아군의 작전과 적군 포로만 피사체로 포착할 뿐, 주민과 마을의 피해는 철저히 사각화돼 있다.
월미도에는 9월10일부터 ‘무력화 작전’이 전개되었다. 14기 해병대 폭격기 편대가 북한 포병부대의 나무 엄폐물을 불태우기 위해 네이팜탄 폭격과 기총소사 공격을 가했다. 당시 항공공격 보고서에 따르면, 폭격기 편대의 임무는 120가구 600여 명의 주민이 살던 마을이 있는 월미도 동쪽 지역의 집중 폭격과 마을 전소였다. 30여 가구 중 상당수가 온 가족이 몰살당했고, 100여 명의 주민이 학살당했다. 이 사건은 폭격 작전의 ‘부수적 피해’가 아니라 명백하게 민간인 마을이 군사적 목표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벌어진 ‘무차별 파괴’였다. 월미도뿐 아니라 인천 시가지도 마찬가지였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조사에 따르면,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 항공 폭격으로 인한 것이었다. 네이팜탄을 이용한 무차별, 초토화 폭격과 기총소사로 ‘청소’하는 작전을 벌인 이유는 민간인 마을을 적의 보급지로, 민간인을 ‘흰옷으로 변장한 적군’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사진❻은 앞선 사진들과 달리 영국의 유명한 포토저널 <픽처 포스트>의 전쟁사진가 하디가 촬영한 것이다. 네이팜탄의 피해를 받은 한 노인이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고, 그 뒤를 한 소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따른다. 뒤의 아이를 안은 여성과 또 다른 여자아이가 두 손을 들고 걸어가고 있다. 그 뒤로 파괴된 채 연기가 올라오는 인천 시가지의 모습이 보인다. 미군 사진병이 촬영한 사진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다.
“미군은 민간인들을 ‘우리’로 확실히 식별하지 못해 의심하고 무차별적으로 파괴한 ‘압도적 파괴자’지만, 동시에 부상을 치료하고 먹을 것을 주며 주거지를 마련해주는 ‘숭고한 구원자’이기도 했다.” 미군 사진병의 임무는 미군을 숭고한 구원자로 기록, 재현하는 것이지, 무차별 파괴자의 면모를 드러내서는 안 되었다. 이에 반해 민간인 전쟁사진가는 마찬가지로 검열이 작동했지만, 사진병보다 자유로웠다. 특히 하디는 포로 상태와 민간인 피해를 휴머니즘의 시각으로 포착해 유엔군은 물론 <픽처 포스트> 소유주의 원성을 사곤 했다.
맥아더 주연의 전쟁 스펙터클을 전형적으로 드러내는 사진❶❷와 달리 그 뒤 사진 넉 장은 아군과 적군, 민간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쟁으로 맞닥뜨리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 살아남았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가 많아질 때, 그 귀를 가진 ‘우리’가 많아질 때, 맥아더로 시작해 맥아더로 끝나는 인천과 섬, 바다의 냉전 경관을 평화 경관으로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상륙작전을 재현하는 전쟁 축제가 월미공원과 바다에서 볼거리로 진열되는 모습이 매우 불편하게 느껴지고, 왜 불편한지 이성적으로 스스로 납득하고 남을 설득할 수 있을 때, 자유 진영의 세계 평화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냉전분단 경계에 인접한 지역 주민들의 삶과 생활권에 진짜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2018년 4·27 남북 정상회담과 6·12 북-미 정상회담으로 정전에서 종전으로 가는 길이 현실화되고 있다. 그 길은 냉전에서 탈냉전 평화로, 분단에서 탈분단 통일로 가는 길로 연결돼 있다. 이 여정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인천과 섬, 바다는 갈등과 증오, 적대가 있는 닫힌 냉전 공간에서 벗어나 교류와 협력이 있는 열린 평화 공간으로 전환될 것이다. 그런데 이 여정을 중앙(정부)이 이끄는 대로 따라갈 것인가? 이 여정은 순조롭지 않다. 갈등과 증오가 단박에 사라지고 해결되는 건 아닐 거다. 지역에서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네이팜탄의 무차별적 민간인 폭격
그 시작을 1957년 9월에 ‘만국공원’에서 ‘자유공원’으로 바뀐 이름을 원래대로 돌리고, 맥아더 장군 동상을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으로 이전하는 건 어떨까? 맥아더의 냉전적 자유와 정의의 가치 대신 조봉암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사상과 실천을 보여주는 장소와 상징을 시민과 함께 공론화해보는 건 어떨까? 인천시가 살던 땅에서 쫓겨난 월미도 원주민의 귀향 문제에 적극 나서 중앙정부와 함께 해결책을 세우는 건 어떨까? 전쟁 축제 대신 미군 폭격으로 인한 지역 피해자 위령제를 함께 하고, 더 나아가 분단 적대의 바다가 평화 교류의 바다가 될 수 있도록 새로운 황해 평화축제를 기획하는 건 어떨까?
강성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