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시선을 가진 4명의 프로 대화러’ 진행자들이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 <대화의 희열>.KBS 제공
뻔한 주례사 토크 그러나 구조적 불의에 대한 통찰 대신 특별한 개인에 방점을 찍고, 오랜 불평등에 맞서 일어난 사회적 변혁을 ‘트렌드’로 취급할 때, 오히려 김숙의 성공 서사는 ‘숙이점’에 이르지 못한 수많은 여성 연예인의 고난과 멀어진다. 그 고민은 일차적으로 당위의 문제지만 또한 토크쇼로서 게스트의 핵심과 어떻게 맞닿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과거 가상 연애 프로그램 제작진과의 미팅에서 이른바 ‘조신하고 여성스러운’ 캐릭터를 요구받은 김숙이 그렇지 않은 성격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바람에 “(섭외에서) 다 까였다”고 털어놓았을 때, 김중혁은 “까인 게 아니라 깐 것 같은데?”라고 반문했다. 김숙을 높게 평가하려는 의도의 농담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수년 동안 한국 방송계에서 여성들의 입지가 얼마나 눈에 띄게 좁아졌는지, ‘애하고 시어머니가 없어서’ 더욱 예능 출연이 힘들었던 비혼 여성 김숙과 송은이가 팟캐스트라는 시장을 개척하며 어떻게 지금 위치까지 올라설 수 있었는지 고려했다면 그들에겐 ‘선택’할 기회조차 거의 주지 않았던 기존 질서를 인정하고 좀더 경청했어야 했다. 지코까지 망가뜨릴까 아쉬운 지점은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출연한 2회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현역 정치인을 향한 첨예한 질문도, 우리 사회가 당면한 과제에 대한 성찰도 없었다. 대신 40~50대 남성들의 1980년대 회고담에 긴 시간을 할애했다. 표 의원이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설득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일화도 굳이 재탕됐다. 진행자들은 방송을 마치며 표 의원에게 계속 “모나게 살아달라”고 당부했지만, ‘모난’ 이야기라곤 나오지 않은 이날의 대화는 ‘주례사 토크’에 가까웠다. <대화의 희열> 3회에는 가수 지코가 출연할 예정이다. 20대 중반의 아이돌이자 힙합 뮤지션인 그를 떠들썩한 신변잡기 중심의 예능이 아닌 진지하게 ‘대화’하는 자리에 섭외한 시도 역시 언뜻 파격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양하다는 착시를 줄 뿐 별반 다르지 않은, 자연스럽고 견고한 배제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대화가 과연 얼마나 새로울 수 있을까. 정작 진짜 ‘다른’ 경험과 시선이 대화의 재미와 깊이를 얼마나 배가하는지 증명한 김숙은 말했다. “방송국 안에 있는 분들이 그 안에서만 몇십 년씩 있다보니 사회 돌아가는 상황을 더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방송이 세상을 보는 눈에 대한 뼈아프고 정확한 지적이다. 최지은 칼럼니스트 *재미있는 이야기와 아름다운 남자들을 좋아해 대중문화 기자가 되었다. 2006년부터 2017년까지 <매거진t> <텐아시아> <아이즈>에서 일했다. 2015년 이후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 여성을 다루는 방식과 ‘재미’를 고민하게 되었고, 한국 대중문화와 여성혐오에 대한 책 <괜찮지 않습니다>를 썼다.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은 가시밭길이지만 돌아갈 생각이 없다보니 여기서 재미를 찾기로 했다. TV 채널을 돌릴 때마다 화내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길 바라고 있다. 다만 ‘최지은의 직시’에서는 주로 TV보다 정색한 이야기를 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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