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옘병, 내 인생이 제일 무서워 그 ‘무서운’ 삶의 짐을 거뜬히 져왔기에 막례씨는 무서울 것도 창피할 것도 없다. 유튜브 스타로 구글 본사에 초대받았을 때, 영어라고는 ‘땡큐, 쏘리, 퍽큐’밖에 몰라도 취직 자리까지 간을 본 마성의 여자다. 그는 또 한 번 보면 벗어날 수 없는 사랑스러운 변신의 귀재로, 살구를 겨냥했으나 참외가 돼버린 메이크업, 동창회 갈 때 ‘무조건 많이 바르는’ 메이크업 등을 시현해 보인다. 막례씨가 스위스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간 날이다. 손등을 긁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친 것도 다 추억이여. 내가 도전하려고 했다가 생긴 상처라 괜찮어. 금방 나을 거여.” 패러글라이딩을 ‘패로구리다’로, 골인을 ‘꼬리’로 부르는 데 당당하고, 단감과 화장을 좋아하고, 드라마 <돌아온 복단지>의 팬이자 권상우와 나훈아를 보면 “미칠 것 같은” 이 여자는 “오메, 오메”라며 새로운 세상으로 걸어 들어간다. 두 번째 여자는 아녜스 바르다다. 88살 감독인 그는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서 33살 사진작가 JR와 항만 노동자의 아내들, 궁벽진 마을의 집배원, 화학공장 노동자, 농부 그리고 염소들을 만난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대형 사진으로 만들어 벽면 전체에 붙인다. 철거 직전 탄광촌의 마지막 주민 자닌은 집을 떠나지 못하는데, 이 집에서 노동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가 건넨, 검댕이 묻은 바게트를 먹었기 때문이다. 아녜스와 JR가 자닌의 얼굴 사진을 그 집 외벽 가득 붙이자 자닌은 눈물을 글썽인다. 바르다가 사람들의 얼굴에, 삶에 ‘경의’를 표하는 방식이다. 아녜스는 이제 사물을 또렷이 볼 수 없다. 흔들리고 흐릿하다. “흔들리게 보여도 괜찮다고?” 선글라스를 절대 벗지 않는 JR의 물음에 아녜스는 이렇게 답했다. “너는 까맣게 보여도 괜찮다며.” 그가 옛 친구 장뤼크 고다르의 고약한 장난에 상처받은 날, 흐느끼는 아녜스를 위로하려고 JR가 선글라스를 벗어 눈을 보여준다. 아녜스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잘 안 보이지만, 그래도 네가 보여.” 얼마나 오래 나만 봐왔는지 모르겠다. 타인을 본다고 생각했을 때마저 타인이란 거울에 비친 나만 봤다. 멋지게 나이 드는 경지는, 아무리 노력해도 실은 ‘당신’을 완전히 볼 수 없다는 걸 깨달으면서, 끝끝내 당신을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죽을 때까지 러브, 러브, 러브 세 번째 여자는 작가 클레르 골이다. 아주 부러운 딱 한 문장 때문이다. 그는 “76살에 오르가슴을 처음으로 느꼈다”고 썼다. 여기서 방점은 처음으로가 아니라 ‘느꼈다’에 있다. “알고 대화하고 보살피고 싶은 타인이 있다면, 나의 결핍을 메우는 타인에 대한 갈구가 사랑의 시작이라면,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은 누구에게나 부여된 양도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이어야 한다.”(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유튜브를 켜니, 막례씨가 춤을 춘다. 차를 타고 가다 내려 드레이크의 노래 <인 마이 필링스>에 맞춰 춘다. 꽃이 만발한 주황색 원피스를 입고 몸을 흔드는 막례씨 위로 석양이 쏟아지고, 뒤로 텃밭이 지나가고, 노래는 시간을 넘어 흐르며 “두 유 러브 미?”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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