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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전병과자의 진실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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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2-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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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없는 과자에 한이 맺힌 명훈제과 조훈환 사장의 ‘재료 듬뿍’ 철학 이야기

사진/ 아내의 이름에서 '명'자를, 자신의 이름에서 '훈'자를 따서 지은 회사이름. 그가 만드는 과자에 부부의 이름을 걸었다. (박승화 기자)
과자 굽는 냄새와 열기가 공장 이층 한켠에 있는 사무실로 밀려들고 있었다. 창문을 열어 젖혀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리에 앉으면서 명훈제과 조훈환(46) 사장은 한사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뭐 발견을 한 것도 아니고 무슨 노하우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정말이지 전병과자를 만드는 조훈환씨는 아무런 노하우가 없는 사람이다. 있는 것이라곤 그저 마음뿐. 재료를 듬뿍 넣는 마음.

추억의 센베이를 아십니까

“재료를 넣을 때는 계산기 없이 해요.”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과자를 만들라치면 ‘손이 알아서 약게 두드리니’ 맛있는 과자를 못 만들기 때문이다. “같은 땅콩이라도 상품과 하품이 있는데 어느 것을 택하느냐에 따라 한달 지출이 몇백만원씩 차이가 나거든요.”


에이, 그래도 남는 장사를 하겠지, 어느 누가 원가 생각 없이 ‘무조건’ 재료를 넣을까? 그러나 진짜 그렇게 한다. 맛없는 과자에 한이 맺혔기 때문이다.

그는 전병과자를 만드는 일에 뛰어들기 전에는 일명 ‘센베이’ 과자를 취급했다. 구멍가게 어스름 형광등 불빛도 받기 어려운 구석자리 희부연 유리상자 안에서 한결같은 모양으로 있던 과자. 부채꼴 가장자리에 붙어 있던 새파란 파래에 침을 발라 아껴먹던 과자. 노인들은 싼값에 사먹고, 중간세대는 저거 아직도 있네 하며 지나치고, 아이들은 알아보지도 못하는 과자, 추억의 센베이!

25년간 그 센베이만 취급했다. 하지만 점점 사양길로 접어들었고 그의 대리점 장사도 운명을 같이했다. “그때 과자 넣는 유리상자를 개당 5만원 주고 엄청 제작해 두었는데 과자가 안 팔리니 유리상자 값이 빠지나요. 내년에는 괜찮겠지, 또 내년에는, 하면서 몇십년을 지나온 거지요. 그러다가 한꺼번에 왕창 내려앉은 거예요.” 그는 자기의 실패보다 센베이가 소비자로부터 멀어진 것을 언성 높여 개탄했다.

“요즘 누가 센베이를 먹습니까? 입은 점점 고급화되는데 질은 점점 떨어지니 볼 것도 없는 거지요. 옛날에도 한근에 1천원, 지금도 한근에 1천원입니다. 맛을 낫게 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었으니 당연히 소비자들이 떠나지요.” 소비자들의 입맛은 너무나 정직한데 센베이 업자들은 그걸 알면서도 그냥 지나쳤다는 말이다. “잘 나간다 싶으면 그저 마구잡이로 만들어서 시장을 죽여버리는 거예요. 수십년간 그 짓을 되풀이하면서 관리는 전혀 안 한 거지요.”

안 되는 장사를 붙들고 있던 그는 90년대 초에 크게 망했다. “아주 쫄딱 망했지요. 빚쟁이들이 몰려들고 부도가 세번 났어요. 네번 나면 유치장 신세인데 그런 것을 겨우겨우 막고 살았으니 고생이야 뭐…. 힘들 적에는 나쁜 생각도 했었어요. 사는 것과 죽는 게 종이 한장 차이더라고요.” 사람들이 떠나고 없는 시골 빈 농가로 살 데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는 물론 주저앉지 않았다.

방문판매와 가판대에서만 파는 과자

사진/ 어느 누가 원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재료를 넣을까? 그러나 진짜 그렇게 한다. (박승화 기자)
“내가 과자를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방법은 딱 한 가지. 좋은 재료를 양껏 쓰자. 계란이고 우유고 마구 넣었다. ‘죽기 살기로’ 들어부었다. 그런데 막상 같이 일하던 공장장이 반기를 들고 나섰다. “우리처럼 재료 넣다가는 공장이 그대로 간다고 하더군요.” 그러더니 어떤 공장장은 진짜 가버렸다.

“기술자들은 수십년간 생각이 굳어서 발전할 마음이 없는 거예요. 맛을 내려고 경쟁을 하지 않지요. 안 넣던 계란에, 우유 천밀리 넣으면 되지 무슨 몇판씩 몇통씩 넣느냐, 단가가 안 맞는다, 이 말인 거예요. 게다가 이렇게 비싸게 만든다고 누가 알아주냐, 장사 못해먹겠다. 그거죠.”

과자반죽에 재료를 ‘원대로’ 넣기까지 수많은 싸움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떠나버린 줄만 알았던 소비자들이 그의 과자를 알아주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남게 되었고, 그의 방식을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못마땅해하던 센베이 업자 ‘그들’은 이제 할말을 잃었다. “그들은 내가 망할 줄 알았지요. 몇 개월 안 가서 망한다 망한다 하면서 내가 실패하기를 기다린 거지요. 처음엔 나도 경험도 없으니 그들이 예언한 대로 망할 것 같아 아주 불안했어요. 그런데 진실하게 하니 소비자가 돌아오더라고요.”

그의 과자는 백화점에서 살 수 없다. 제과점 전병코너에도 없다. 동네 슈퍼에도 없다. 방문판매나 가판대서만 살 수 있다. “모험을 하기로 한 거지요.” 유통과정에서 혁신적인 발상을 한 것이다. 생산-대리점-중상-상점-소비자의 5단계에서 생산-소비자 두 단계로 팍 줄여 중간마진을 아예 없앴다. 그렇게 하면 가격을 올리지 않고도 좋은 재료를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시장에 내다 팔았는데 가격이 좀 비싸다고 덜 팔렸어요. 글쎄, 그 맛있는 과자가 수천 박스가 남은 거예요. 날씨 더워지면 과자가 상하니 이거 내다버릴 판이 된 거지요. 그래서 이참에 인심이나 쓰자 해서 이웃에, 주위에 막 나눠주었지요. 그 바람에 사람들이 많이 먹게 되었죠. 맛있다고 하기도 하고, 거기서 아이디어를 낸 거지요. 직접 먹어보게 하자. 97년 4월에 그렇게 시작했어요.”

현재는 주부사원들이 과자 상자를 들고 소비자를 찾아간다. 일일이 시식하게 한 다음 “맛있으시면 전화주세요. 즉시 배달해 드립니다” 한다.

이제 ‘그들이’ 보기에도 ‘그는’ 성공했다. 3년간 열심히 일한 덕분에 임대해서 쓰던 안성공장에서 강화로 공장을 지어 온 지 반년이 되어간다. “보통 이 정도 되면 다들 골프 치러 가요. 그런데 골프 치면서 맛있는 재료 넣으면 공장 유지하기 어렵거든요.” 센베이 하는 사람들이 30년 하면서도 못 쫓아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계산기 버리니 돈이 들어오네요”

그는 놀 줄을 모른다. “카드도 몰라, 장기는 한문 몰라 안 해, 할 줄 아는 게 없다.” 자연히 과자에 재료를 ‘퍼붓는’ 품질관리밖에 할 줄 모른다. 앉으나 서나 과자 생각이지만 그의 신과자 개발방식은 상당히 전통적이다. “향 넣고 하는 그런 기술은 없으니까 그냥 재료를 넣지요. 참깨를 넣어서 참깨 맛을 내요. 영양가가 많아요. 소비자 중에는 왜 과자가 자꾸 눅지냐 하는 분들이 있는데, 재료가 진실하게 들어가니 빨리 눅지는 거예요. 약품을 넣으면 빠삭빠삭한 게 물에 넣어도 동동 뜨지요.”

세트과자 상자에 아직 센베이는 없다. “지난번에 센베이를 넣어봤는데 에, 이거 그 맛없는 센베이 하시면서 모두들 손도 안 대려고 해서 뺐어요. 나중에 넣어야지요.” 그에게 센베이는 언젠가 돌아가야 할 고향인 것이다.

아내의 이름에서 ‘명’자를, 자기 이름에서 ‘훈’자를 따서 회사이름을 지었다. “결혼한 지 스무해가 다 되어가요. 과자 하면서 하도 고생을 시켜 미안하니까 그렇게 한 거지요.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등돌리며 나가고, 또 나가고 할 때는 간이 다 상할 정도였어요. 그런 고생을 함께했으니…. 그렇게 안 할 남편이 어디 있겠어요?”라고 그가 되묻는다.

공장에는 8명의 직원이 일을 하고 있었다. 반죽기계 옆에 가니 과연 ‘진실한’ 계란과 우유가 내 키만큼 쌓인 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천, 수만개의 과자가 구워져 벨트를 타고 내려왔다. 여직원이 과자를 차곡차곡 상자에 넣고 있었다. 가끔 먹어볼 수도 있겠지? 과자공장에서 일하면 얼마나 좋을까, 어릴 적 꿈이 떠올랐다.

“저 일이 쉬워 보여도 기계하고 손발이 맞아야 잘할 수 있는 일이지요.” 그가 슬며시 타일러 준다. 과자 한개를 얼른 집어 먹어보았다. 벤처기업으로 어떤 이들은 수백억씩을 과자 사먹듯 날리고 무슨무슨 게이트 하며 검은 돈이 오가는 세상에서, 조사장은 과자 하나에 인생의 진실을 담고 있었다. 남들이 모르면 알 때까지, ‘한낱’ 과자에 그는 부부의 ‘이름을’ 건 것이다.

“25년 만에 장사를 어떻게 하는 건지 알게 된 거지요. 적자 날까봐 전전긍긍할 때는 돈이 안 벌리더니 계산기 버리고 나니 돈이 들어오네요.” 그는 대한민국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명훈제과의 ‘진실한 과자’를 맛보게 할 작정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물어보았다. 우리 나라 굴지의 과자 기업들과 손잡아볼 의향은 없으신가요? “그분들이야 아직 우리를 미미한 존재로 여기지요. 아직 신경을 안 쓸 겁니다. 시간이 더 필요한 거지요. 배운 것도 없고 따질 줄도 몰라서 저는 그냥 진실하게 하렵니다.”

진실게임. 그의 노하우였다.

권은정/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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