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적 완성도 부족이라는 우리 오페라의 한계에 새로운 가능성 제시한 <백범 김구…>
오페라 천국. 유럽 어느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해마다 열리는 오페라의 숫자만 따지면 우리나라는 유럽의 오페라 강국인 이탈리아나 독일 못지않은 풍성함을 자랑한다. 지난해 가을 서울 무대에 올라간 15편의 오페라 가운데 11편이 1천석 이상의 대극장 작품이었다. 가을이 무대공연의 성수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오페라 선진국이 부럽지 않은 숫자다. 그러나 우리에게 오페라는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르면 화려한 잔칫상은 간장종지 하나 변변치 않은 초라한 밥상이 되고 만다. 반세기가 넘는 한국 오페라의 역사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아니 오페라 애호가들에게 한 소절이라도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창작오페라가 없다는 사실은 거죽만 풍요로운 오페라 붐의 앙상한 실체를 드러낸다.
‘극적 칸타타’라는 새로운 형식
1960년대부터 국립오페라단을 중심으로 <춘향전> <왕자호동> <심청전> 등 수십편의 창작오페라가 꾸준히 무대에 올려져왔다. 특히 최근 2, 3년 사이에는 국립과 민간오페라단을 가릴 것 없이 일년에 대작 규모만 서너편이 쏟아질 정도로 창작오페라의 발표는 유난히 눈부셨다. 그러나 창작오페라 공연은 번번이 ‘그들만의 축제’로 막을 내렸다. 한 예로 지난해 공연된 창작오페라 중 가장 규모가 컸던 <춘향전>과 <안중근>의 객석점유율은 15%를 밑돌았다. 창작오페라에는 “창작만 있고 작품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평. 대부분의 창작오페라가 함량미달의 결과물을 한두번 무대에 올린 채 창고로 들어가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23∼24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렸던 ‘극적 칸타타’ <백범 김구-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는 음악적 완성도의 부족이라는 우리 오페라의 해묵은 문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보인 무대였다. 한국민족음악인협회(민음협)가 무대에 올린 이 작품은 연극인 구히서씨가 대본을 쓰고, 작곡가 강준일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가 곡을 붙였다. 프롤로그, 에필로그와 3장으로 구성된 이 오페라는 김구가 상하이로 가기 전부터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 해방 이후 암살당하기까지의 삶을 연대기순으로 보여준다. 장별로 민속음악과 군가풍의 힘있는 행진곡, 현대음악을 적절히 배치한 <백범 김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 결사항전의 다짐을 노래하는 2장의 음악들이다. 무대의 배우들이 부르는 합창곡은 “싸우러 가자”, “싸워,싸워” 등 서양식 발음과는 거리가 먼 우리 언어가 격렬한 선율과 리듬에 완전히 녹아들어 ‘음악 따로, 노래말 따로’였던 창작오페라의 고질적 병폐를 뛰어넘는 음악적 완성도를 보여줬다. 1장에서는 다른 오페라들이 지적받는 문제처럼 노래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2, 3장에서는 또렷이 귀에 꽂혀 관객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애쓴 음악적 고민이 돋보였다. <백범 김구…>는 소재면에서 근래 2∼3년 사이 쏟아져나온 ‘위인전’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가 있는 작품이다. 내용 역시 특정 사건을 부각한다거나 인간 김구의 갈등이나 번뇌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20대부터 죽을 때까지를 나열했다는 면에서 극적 흥미를 유도하지는 않는다. 극적 흥미의 부족함은 일반 관객으로서는 흠결이 되기도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의도된 ‘절제’의 성격이 강하다. ‘극적 칸타타’라는 다소 생소한 형식이 이를 설명한다. 칸타타는 성경구절이나 역사적 인물의 이야기를 악기 반주에 맞춰 낭송하는 음악형식이다. 사실을 전달하는 음악형식에 극적인 부분을 덧붙인 것으로, 극 전개 자체가 매우 중요한 기존 오페라들과 달리 음악에 좀더 충실하기 위해 이런 형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오페라는 여흥이나 즐길거리라는 의미를 포함한 말이다. 역사적 인물인 백범의 정신과 사상을 정중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이 작품에 오페라라는 형식은 적합하지 않아 칸타타의 방식을 도입했다.” 작곡가 강준일씨가 극적 칸타타라는 형식을 끌어온 이유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연출을 맡은 최준호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는 “지금까지 역사인물에 대한 창작오페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음악적 성취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음악적 성취에 가장 큰 비중을 두었다”고 말했다. 기존 창작오페라에서 무대의 변방으로 떠돌아온 음악을 무대 중앙으로 복원한다는 의미다. 작곡·연출·대본 공동 작업
각각 대본과 작곡, 연출을 맡은 세 사람 외에 지휘를 맡은 정치용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는 지난해 6월부터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수십 차례 수정보완 작업을 해나갔다. 각 파트의 책임자가 머리를 맞대는 풍경은 국내 오페라 작업에서 보기 드문 풍경이다. 국립오페라단의 김문수 국장은 “창작 작품을 하게 될 경우 작곡자와 연출자, 대본작가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공동작업을 해야 하는데 우리 오페라계에서는 모두 따로 움직인다. 당연히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백범의 진술들을 재구성해 구씨가 만든 시어(詩語)를 네 사람이 함께 합창단의 발성과 악기의 음율에 적절하도록 다듬는 데만 5개월 가까이 걸렸다.
백범 역을 연기한 주인공 전기홍, 안희도씨를 제외한 30여명의 인물과 합창단 모두 오페라 경험이 없는 신인으로 꾸린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우리 어법과 다른 서양식 오페라의 발성에 길들여지지 않은 성악가들을 훈련하는 데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한달 동안 출연진의 발음 교정을 책임졌던 성악가 하영일씨는 “어릴 때부터 서양식 발성과 발음만 배워온 음악가들의 습관이 하루아침에 고쳐지는 것은 아니”라면서 “이번 작품의 의의는 하나의 완성된 작품을 선보였다기보다 앞으로 만들어질 우리말 오페라의 정착을 위해 씨를 뿌린 것”이라고 자평했다.
이번 무대를 주관한 민족예술인총연합은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 다섯 도시의 순회 공연에 나서며, 6월엔 백범기념관 건립 시기에 맞춰 다시 무대를 마련할 계획이다. 아직 미흡한 문제들을 고쳐나가며 “언어와 음악이 함께 가는 우리 음악극”의 토대를 다지는 게 같은 고민으로 만난 네 사람의 꿈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지난 2월23∼24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렸던 ‘극적 칸타타’ <백범 김구-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는 음악적 완성도의 부족이라는 우리 오페라의 해묵은 문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보인 무대였다. 한국민족음악인협회(민음협)가 무대에 올린 이 작품은 연극인 구히서씨가 대본을 쓰고, 작곡가 강준일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가 곡을 붙였다. 프롤로그, 에필로그와 3장으로 구성된 이 오페라는 김구가 상하이로 가기 전부터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 해방 이후 암살당하기까지의 삶을 연대기순으로 보여준다. 장별로 민속음악과 군가풍의 힘있는 행진곡, 현대음악을 적절히 배치한 <백범 김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 결사항전의 다짐을 노래하는 2장의 음악들이다. 무대의 배우들이 부르는 합창곡은 “싸우러 가자”, “싸워,싸워” 등 서양식 발음과는 거리가 먼 우리 언어가 격렬한 선율과 리듬에 완전히 녹아들어 ‘음악 따로, 노래말 따로’였던 창작오페라의 고질적 병폐를 뛰어넘는 음악적 완성도를 보여줬다. 1장에서는 다른 오페라들이 지적받는 문제처럼 노래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2, 3장에서는 또렷이 귀에 꽂혀 관객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애쓴 음악적 고민이 돋보였다. <백범 김구…>는 소재면에서 근래 2∼3년 사이 쏟아져나온 ‘위인전’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가 있는 작품이다. 내용 역시 특정 사건을 부각한다거나 인간 김구의 갈등이나 번뇌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20대부터 죽을 때까지를 나열했다는 면에서 극적 흥미를 유도하지는 않는다. 극적 흥미의 부족함은 일반 관객으로서는 흠결이 되기도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의도된 ‘절제’의 성격이 강하다. ‘극적 칸타타’라는 다소 생소한 형식이 이를 설명한다. 칸타타는 성경구절이나 역사적 인물의 이야기를 악기 반주에 맞춰 낭송하는 음악형식이다. 사실을 전달하는 음악형식에 극적인 부분을 덧붙인 것으로, 극 전개 자체가 매우 중요한 기존 오페라들과 달리 음악에 좀더 충실하기 위해 이런 형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오페라는 여흥이나 즐길거리라는 의미를 포함한 말이다. 역사적 인물인 백범의 정신과 사상을 정중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이 작품에 오페라라는 형식은 적합하지 않아 칸타타의 방식을 도입했다.” 작곡가 강준일씨가 극적 칸타타라는 형식을 끌어온 이유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연출을 맡은 최준호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는 “지금까지 역사인물에 대한 창작오페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음악적 성취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음악적 성취에 가장 큰 비중을 두었다”고 말했다. 기존 창작오페라에서 무대의 변방으로 떠돌아온 음악을 무대 중앙으로 복원한다는 의미다. 작곡·연출·대본 공동 작업

사진/ <백범 김구…>의 작곡가 강준일씨. 우리 언어가 격렬한 선율과 리듬에 잘 녹아들게 했다. (김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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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오페라 인구는 넉넉히 어림잡아도 1만명 안짝. 그런데 오페라단 수는 서울에만 14개, 지방까지 합하면 47개에 이른다. 그나마 이 숫자는 한해 한 작품 이상 꾸준히 발표하는 오페라단들로, 간판만 걸어놓고 개점휴업중인 오페라단까지 합하면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 오페라 인구에 비해 턱없이 오페라단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불과 4, 5년 전만 해도 오페라단의 숫자는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적었다. 문화관광부와 문예진흥원, 지자체의 무대작품 지원이 늘어난 98년 이후부터 오페라단의 숫자는 급상승했다. 정부의 지원으로 오페라 창작이 늘어난 것은 그 자체로 바람직해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음악평론가 장일범씨는 “최근 우후죽순 늘어나는 창작오페라들은 50, 60년대 <춘향전>이나 <심청전>보다 질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오페라 육성을 위해 정비된 지원금 제도가 오히려 작품수준의 하향평준화를 낳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음악분야에서 서울시 지원금을 받은 37건 가운데 11건이 오페라였다. 그 가운데 좋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은 사실상 전무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심사과정에서 잡음도 끊이지 않고, 지원금을 받는 ‘노하우’도 생겨나는 지경이 됐다. 노하우 가운데 확실한 하나는 창작오페라, 그리고 대작오페라를 만드는 것이다. 지난해 해외로 나간 <황진이>나 <이순신>처럼 창작오페라는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아 해외 공연을 하기도 유리하다. 음악인들조차 창작오페라의 증가를 반가운 시선으로 보지 못하는 건 이런 이유다. 해외 인기 오페라들과 달리 <류관순> <안중근> 등 역사적 인물이 꾸준히 늘어나는 것도 ‘노하우’와 무관하지 않다. 심사과정에서 음악적 전문성보다는 1차원적 주제의식이 많이 적용된다는 이야기다. 지원작품에 대한 엄정한 사후평가가 없으니 작품이야 어떻든 지원금부터 따고보자는 식의 생각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장수동 대표는 밑빠진 독에 물붓는 식의 지원금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후평가가 필수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장씨는 “사전 지원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재공연 지원에 좀더 무게를 싣는다면 제대로 된 준비없이 한탕주의를 노린 작품들을 상당수 솎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장씨는 “대작위주의 지원방침이 작품의 바탕이 되는 작가들을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처럼 작곡가들이 작은 작품을 쓰면서 실력을 쌓은 뒤 큰 작품에 뛰어들어야 하는데 작은 작품에 대한 지원이 없으니 기성 작곡가들에게만 수혜가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오페라는 오페라가 아니라 ‘이페라’라는 말이 있다. 대본, 작곡, 연기, 노래, 연주가 함께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두세 가지만 대충 끼워맞추기 때문이다. |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