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어린 시절 집에 돌아오면 노동에 찌든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는 보따리 과외 교사로 생활비를 벌었다. 집안일도 당연히 어머니 몫이었다. 닭다리는 한 번도 어머니 몫인 적이 없다. 한 집만 건너면 아내가 어떻게 남편에게 두들겨 맞았는지 전해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우리를 때린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무서웠다. 그건 그의 맘에 달린 문제니까. 맞지 않은 우리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여성이면서 여성을 비하했던 나 그런데 어머니가 무심결에 이런 말을 한다. “그 집엔 아들이 없잖아.” “여자들이 모이면 시끄럽지.” 어머니가 ‘여자’를 말할 때마다 비릿한 비하의 느낌이 배어 있다. “엄마도 딸만 둘이야”라고 쏘아붙이고 싶다가도 어머니가 화병 걸리지 않고 자기 삶을 받아들이려면, “여자는 ‘덜’ 인간”인 게 당연하다고, 원래 그런 거라고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어머니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 40년 넘게 ‘남자, 아들’이 되려고 했다.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관습적으로 ‘여성 카테고리’에 묶인 것들을, 깎아내렸다. 그건 약한 거니까, 열등한 거니까, 그 카테고리에 묶였다간 ‘그들’이 날 무시할 수 있으니까. “여자는 ‘덜’ 인간”인 걸 받아들인 셈이니 나는 가부장제의 부역자였다. 성인이라면 해야 할 생존을 위한 밥짓기, 청소, 빨래 등을 안 하고 어머니의 노동을 착취한 걸 창피해한 적이 없다. 전업주부를 내심 무시했다. ‘집안일’은 ‘바깥일’보다 하찮으니까.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방식대로, 그 이분법대로 나도 그렇게 했다. 그렇게 내가 여성인 나를 비하했다. 그러면서 미웠다. ‘여성스러운’이라는 낱말에 꼭 맞는 역할을 수행해 사회적 지위를 확보한 여성들을 ‘남자에게 잘 보이려는 비굴한 여자’로 분류하고 미워했다. 그 질투와 미움은 내 마음속에 억눌린 욕망의 크기만큼이었다. 사실 남자가 되려 했던 나나, 사회가 부여한 성역할에 충실했다는 이유로 내가 혐오한 그들이나 똑같은 게임의 룰에 따르고 있었다.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이 말을 읽었을 때, 비로소 나는 여성이면서 여성을 비하하는 나라는 인간에 대한 혐오, 거기서 파생된 죄책감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프란츠 파농이 온몸을 떨면서 간파했듯이, 흑인은 백인의 타자이며 동시에 흑인의 타자이다. 여성의 타자 역시 여성이 아니라면, 이미 가부장제 사회가 아닐 것이다.” 다행히, 내가 제자리걸음만 걷지는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2007년 한동안 드라마 <하얀거탑>에 빠져 살았다. 외과의 장준혁 과장이 병원에서 권력을 향한 온갖 이전투구를 벌이다 결국 추락하는 과정이 얼마나 짠하던지. 일본 원작까지 다 봐버렸다. 올해 <하얀거탑>이 ‘명품 드라마’로 재방송되기에 다시 봤다. 기겁했다. 이 드라마에서 주체는 온통 남성뿐이다. 인생은 남자만 산다. 출세를 열망하건, 히포크라테스 정신의 수호자가 되건 오로지 남자들 얘기다. 여성이 맡은 역할은 착한 ‘응원군’이거나 남자의 출세욕에 군불을 때는 ‘악녀’다. 보면서 뿌듯했다. 그 10년 사이 그래도 이 드라마를 보며 화낼 수 있을 정도로는 내 몸에 쌓인 ‘미세먼지’를 걷어냈구나. 존재 자체로 소중한 나로 살려면 “나는 소중한 존재”라고 아무리 되뇌면 뭐하나, 곧바로 “당신은 존재 자체로 ‘덜’ 인간”이란 메시지가 쏟아져 들어온다. 그러니 나로 살려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위계에서 탈주할 수 있을까? ‘남자’ 되기를 그만두고, 정희진이 말한 “선택지 밖에서 선택하기”는 어떻게 하는 걸까? 어떻게 하면 여성으로서 나를, 내 욕망을, 죄책감 없이, 열등감 없이, 온전히 안을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는 그 어떤 존재에게도 “건방지다”라고 말하지 않고 서로 만날 수 있을까?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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