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읽기 1 l 골 세러머니
관중의 시선 사로잡는 흥미만점의 이벤트… 황선홍의 천부적 연기를 다시 보고 싶다
얼핏 차고 달리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축구. 하지만 꼼꼼히 뜯어보면 축구경기 속에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 다양한 ‘읽을거리’가 숨어 있다. <한겨레21>은 월드컵을 앞두고 독자들이 단순히 ‘보는 축구’가 아닌 ‘읽는 축구’를 즐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연재를 시작한다. 축구인이 아니면서도 축구의 이면까지 해박하게 꿰고 있는 축구광 두 사람이 재미있고 이색적인 정보와 날카로운 분석을 제공할 예정이다. 편집자
씨름선수 이만기. 그는 종목을 막론하고 역대 최고의 쇼맨십을 자랑한, 아주 강렬하고 아름다운 세러머니를 보여준 선수였다. 이봉걸, 이준희, 홍현욱 등 태산 같은 거구들을 쓰러뜨린 뒤 모래를 한 움큼 쥐어 대각선으로 흩뿌리면서 포효하던 그의 모습은 볼거리가 흔치 않았던 80년대 최고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는 국내에선 카메라 시선을 최초로 의식한 선수였다.
세기적 이벤트가 나날이 벌어지는 스포츠 과잉의 시대. 상업주의, 남성주의, 국수주의, 또 무슨 주의 같은 분석적 항목들이 존재하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미디어와 스포츠의 다채로운 구경거리에 항상 취해 있다. MLB, UEFA, NBA, EURO, WWF 등의 약호들은 특정 경기종목의 범주를 넘어서 하나의 상징으로 우리를 자극한다. 이 효과를 극대화하는 요소가 바로 스타다. 경기장 한복판에서 그들이 펼치는 세러머니는 미디어의 어마어마한 효과에 의해 영웅의 이미지로 재생산되고 광고시장의 꽃으로 활용된다.
미디어에 의해 영웅의 이미지로 축구는 기본적으로 골을 넣으면 센터 서클에 공을 갖다놓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 때문에 골을 넣은 선수는 자기 진영으로 빨리 되돌아와야 한다. 그런데 이왕이면 멋있게, 화려하게, 관중의 시선을 최대한 끌면서 돌아오고픈 것이 선수의 욕망이다. 여기서 축구만의 박진감 넘치는 골 세러머니가 탄생하는 것이다. 터질 듯한 심장과 용솟음치는 아드레날린을 주체하지 못한 채 상대 골문의 그물을 쥐고 흔들거나(클린스만), 개선장군처럼 코너 깃발을 움켜쥐거나(앙리), 아니면 흥분한 관중을 향해 두두두두 기관총을 난사하는 포즈(바티스투타)로 뛰어다니는 것이다. 베베토와 그의 친구들처럼 애기를 얼싸안고 춤을 추는 포즈나 아프리카 선수들의 민속춤 경연도 흐뭇하지만, 그래도 아주 인상깊고 우아한 세러머니는 브라질의 핵탄두 호나우두. 골을 넣을 때의 속도보다 한결 늦춰진 템포로 그는 두팔을 넓게 벌리고 유유히 반원을 그리면서 천천히 돈다. 먹잇감을 놓치지 않는 독수리의 자태. 우리 선수들의 골 세러머니도 다양하고 재미있다. 공중제비를 도는 고종수, 양팔을 V자로 펴고 우뚝 서는 최용수, 이미 세계화된 호나우두의 자세를 흉내내는 이동국 등이 이채롭다. 그러나 아직은 이만기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거의 본능적으로 미디어와 카메라의 시선을 깨달았던 이만기에 비해 이 신세대 선수들이 여태껏 현대 축구의 원리, 그러니까 하나의 거대한 구경거리로 작용하는 흥미만점의 이벤트라는 점를 깨치지 못하고 있다. 이천수의 골 세러머니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어쩔 줄 모르는 천진한, 동시에 유치한 수준이고 최태욱은 카메라와 관중의 시선이 부끄러운지 재빨리 무릎을 꿇고 얼굴을 파묻은 채 기도를 한다. 침착한 성격의 설기현은 골을 넣은 뒤에도 예의 침착성을 버리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걸어오는 바람에 관중의 전율을 반감시킬 뿐이고, CF를 꽤 찍은 안정환도 오른팔을 쭉 뻗으며 달리는데 언제나 방향이 틀린다. 그는 카메라 반대 방향, 저 건너편의 팬을 향해 뛰어간다. 카메라는 안정환의 뒷모습을 쫓을 뿐이다. 이 점에서 국내 최고의 골 세러머니를 보여주는 선수는 역시 황선홍이다. 비에 젖은 그라운드를 헤드 슬라이딩으로 넘어지면서 양팔을 벌리는 그 유명한 세러머니는 수십대의 카메라 앞에서 펼친 천부적인 연기였다. 그 한 장면은 지금도 각 방송사의 스포츠 뉴스 화면이나 월드컵 예고편에서 다양하게 쓰인다. 그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우아하게 골을 넣을 줄 아는 선수(핌 피어벡 대표팀 코치)이자, 카메라와 미디어의 놀라운 능력을 일찌감치 체득한 천부적인 스타다. 이 점만으로도 설기현, 이동국, 이천수, 안정환은 황선홍을 넘어서기에 아직 역부족이다. 정윤수/ 문화평론가

사진/ 국내선수 중에서 가장 멋진 골 세레모니를 보여주는 황선홍. 지난해 6월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환호하는 모습. (한겨레 이종근 기자)
미디어에 의해 영웅의 이미지로 축구는 기본적으로 골을 넣으면 센터 서클에 공을 갖다놓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 때문에 골을 넣은 선수는 자기 진영으로 빨리 되돌아와야 한다. 그런데 이왕이면 멋있게, 화려하게, 관중의 시선을 최대한 끌면서 돌아오고픈 것이 선수의 욕망이다. 여기서 축구만의 박진감 넘치는 골 세러머니가 탄생하는 것이다. 터질 듯한 심장과 용솟음치는 아드레날린을 주체하지 못한 채 상대 골문의 그물을 쥐고 흔들거나(클린스만), 개선장군처럼 코너 깃발을 움켜쥐거나(앙리), 아니면 흥분한 관중을 향해 두두두두 기관총을 난사하는 포즈(바티스투타)로 뛰어다니는 것이다. 베베토와 그의 친구들처럼 애기를 얼싸안고 춤을 추는 포즈나 아프리카 선수들의 민속춤 경연도 흐뭇하지만, 그래도 아주 인상깊고 우아한 세러머니는 브라질의 핵탄두 호나우두. 골을 넣을 때의 속도보다 한결 늦춰진 템포로 그는 두팔을 넓게 벌리고 유유히 반원을 그리면서 천천히 돈다. 먹잇감을 놓치지 않는 독수리의 자태. 우리 선수들의 골 세러머니도 다양하고 재미있다. 공중제비를 도는 고종수, 양팔을 V자로 펴고 우뚝 서는 최용수, 이미 세계화된 호나우두의 자세를 흉내내는 이동국 등이 이채롭다. 그러나 아직은 이만기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거의 본능적으로 미디어와 카메라의 시선을 깨달았던 이만기에 비해 이 신세대 선수들이 여태껏 현대 축구의 원리, 그러니까 하나의 거대한 구경거리로 작용하는 흥미만점의 이벤트라는 점를 깨치지 못하고 있다. 이천수의 골 세러머니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어쩔 줄 모르는 천진한, 동시에 유치한 수준이고 최태욱은 카메라와 관중의 시선이 부끄러운지 재빨리 무릎을 꿇고 얼굴을 파묻은 채 기도를 한다. 침착한 성격의 설기현은 골을 넣은 뒤에도 예의 침착성을 버리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걸어오는 바람에 관중의 전율을 반감시킬 뿐이고, CF를 꽤 찍은 안정환도 오른팔을 쭉 뻗으며 달리는데 언제나 방향이 틀린다. 그는 카메라 반대 방향, 저 건너편의 팬을 향해 뛰어간다. 카메라는 안정환의 뒷모습을 쫓을 뿐이다. 이 점에서 국내 최고의 골 세러머니를 보여주는 선수는 역시 황선홍이다. 비에 젖은 그라운드를 헤드 슬라이딩으로 넘어지면서 양팔을 벌리는 그 유명한 세러머니는 수십대의 카메라 앞에서 펼친 천부적인 연기였다. 그 한 장면은 지금도 각 방송사의 스포츠 뉴스 화면이나 월드컵 예고편에서 다양하게 쓰인다. 그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우아하게 골을 넣을 줄 아는 선수(핌 피어벡 대표팀 코치)이자, 카메라와 미디어의 놀라운 능력을 일찌감치 체득한 천부적인 스타다. 이 점만으로도 설기현, 이동국, 이천수, 안정환은 황선홍을 넘어서기에 아직 역부족이다. 정윤수/ 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