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으로 야한 영화 <욕망>을 만든 80년대 운동권 출신 김응수 감독
‘정치적 포르노그라피’로 불리는 영화들이 있다. 서양에서는 이탈리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3)가, 동양에서는 일본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1976)이 마치 ‘선구자’처럼 그 문을 열어젖힌 문제작이다.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두 감독 모두 열렬한 좌파들이다. 또 이들 영화는 좌파의 기세가 뭔가를 이뤄낼 것 같던 60년대가 ‘갑작스레’ 끝나고, 절망과 새로운 모색이 동시에 이뤄지던 70년대에 태어났다. 그래서 사회를 향한 얼마간의 냉소와 반작용처럼 인간 내면으로 눈을 돌린 시선이 두드러졌다. 외설 시비가 거세게 뒤따랐다는 점도 닮았다.
포장하기 싫어 많이 벗겼다
80년대 이후가 그들의 60년대 이후를 희한하게 닮아버린 우리에게도 이런 영화가 있음직하다.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을 꼽을 만하지만 두 작품만큼 일치된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욕망>이란 영화가 새로운 후보로 떠올랐다. <공동경비구역 JSA>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명필름이 만드는 10번째 작품이자, 80년대 운동권 세대의 후일담 영화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를 만들었던 김응수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다. 김 감독이 87년 서울대 총학생회 홍보부장으로 활동하며 80년대를 수놓았던 좌파 출신이고, 제작자로 나선 명필름의 이은씨 역시 80년대 운동권 출신이다. 이들이 손잡고 만드는 영화가 하필 ‘포르노그라피’라는 걸 보고 ‘어떤 정치성이 담기겠구나’라고 추측해보는 건 그래서 당연하지 않을까. 얼마 전 촬영을 끝냈고 4월이 되어서야 완성품이 나올 예정이지만, 벌써부터 김 감독을 만난 건 이렇게 색다른 배경을 가진 포르노그라피의 정체가 궁금해서다. 왕년의 두 좌파가 눈을 맞춘 ‘욕망’의 모습이.
명필름이 만든 광고카피는 “두 남녀(男女)가 한 남(男)을 탐하다”이다. 한 남자는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레오(이동규)다. 그를 탐하는 두 남녀 로사(이수아)와 규민(안태건)은 젊은 부부다. 남편 규민이 먼저 레오와 애정을 나누고, 그 뒤를 부인 로사가 잇는다. 남편의 외도에 어떤 절망과 분노를 느낀 로사가 그 상대방과 또다른 욕망을 은밀하게 나눈다. 레오 역의 이동규씨는 몸이 완벽하다는 감독의 공개적인 칭찬을 받은 신인이고, 이수아씨는 <쁘아종>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다.
“끊임없이 집착에 빠졌고 그게 사랑인 줄 알았으나 마지막에 그게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었음을 알게 되는 이야기다.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그림처럼 조금은 낯설고 생경한 방식으로 찍었고, 많이 벗었다. 정사장면도 아주 리얼하게 찍었다. 욕망의 판타지를 가식적으로 포장해서 그리는 게 멜로물의 전형이라면, 난 욕망의 정체를 사실 그대로 보여주고자 한다.”
이는 혁명에 대한 신념과 절망스런 현실 사이에서 혼돈을 벗어나지 못하고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간 중기와 그의 옛 동료들을 그렸던 전작 <시간은…>과 많이 다르다. 88년 남북 청년학생회담에 전대협 대표로 파견됐던 운동권 선배 김중기씨가 중기 역을 연기했다.
“내가 무슨 일을 했기 때문에 이런 사람이라고 규정받는 건 싫다. 그때는 그것에 열정을 불태웠던 것이고, 내 안의 욕망이 어떤 것인지, 어디로 갈지 나도 모른다. 이런 걸 자꾸 규정하려는 게 우리 사회의 병폐가 아닐까. 이번에는 개인을 자유롭게 해주자는 영화다. 요즘에 이것만큼 중요한 게 또 있나?”
여균동 감독? 나는 나!
욕망이 일으키는 상황은 어떤 것도 가능한 것인데 이걸 특별하지 않게 바라보자는 것이 감독의 시선이다. 이건 곧 영화의 시선이다. 사회의 시선도 이렇게 될 때 그 안의 개인이 자유롭게 된다는 시각이다. 개인을, 욕망을 자유롭게 해주자는 게 <욕망>의 정치적 의도인 셈이다. 그런데 그 욕망은 어차피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다. 그걸 자유롭게 좇도록 놔두자는 건 어째 모순처럼 보인다.
“욕망을 발동하는 건 뭔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락하고 평화롭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진정 평화로운 건 모든 욕망에서 풀어지는 죽었을 때나 가능하지 않을까. 욕망의 본질 자체는 이렇지만, 정말 자기 원하는 때 탐닉하고 부딪히고 하는 게 자유가 아닐까. 이걸 자꾸 특이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문제다.”
이 말에 공감을 할 수도 있고 반감을 가질 수도 있다. <파리에서…>나 <감각의 제국>도 그랬다. 정치적 포르노그라피로 보는 이도 있었고, 그냥 외설물로 보는 이도 있었다. 시나리오에는 오럴섹스, 항문성교 등의 장면이 상당히 건조한 느낌으로 등장한다.
“(성교가 어떤 식으로 벌어지고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게 찍었다. 하지만 배우에게 뭔가를 강요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범위 안에서 찍었다. 인간이 자유롭자고 한 영화가 아닌가.”
문득 여균동 감독이 떠올랐다. 여 감독은 첫 작품 <세상밖으로>에서 두 탈옥수(문성근, 이경영)를 통해 사회 부조리를 풍자적으로 드러냈고, 이후 <맨?> <미인> 등의 포르노그라피성 영화를 만들었다. <미인>을 만든 직후 여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아무리 대의가 좋아도 그 속에서 나는 행복했던가 반성하기 시작했고, 나도 이제 내 맘껏 사랑하고 싶다는 심정에서 몸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대상을 선택하게 됐다.”
어째 좀 비슷하지 않느냐고 묻자 조금 언짢은 표정이다.
“(기자) 개인적 시각의 테두리이다. 나는 어느 누구하고도 같지 않다. 물론 영화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를 수 있다. 비합리적이건 폭력적이건 영화 속 사람들에게 자체의 생명력을 주고 스스로 움직이게 해줘야 하는데, 그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관객의 감각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욕망>에는 감독 개인의 경험이 절반가량 섞였다고 한다. 예컨대 독신의 그는 “쓴맛 단맛 다 봤기 때문에” 결혼에 대해 아예 미련을 접었다. (결혼해서 사는 것처럼) 다른 사람과 비슷비슷하게 사는 게 안도감을 주지만 그게 자유로운 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자유로운 사고체계가 아직 사람들에게 자리잡히지 못한 것 같다”는 처음의 이야기로 귀결됐다.
쓴맛은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구, 친지, 선후배 등으로부터 돈을 빌려 만든 <시간은…>은 제작비 회수에 실패했다. 적지 않은 빚을 졌고, 그 해결을 보느라 2년 동안 학원강사에 몰두해야 했다.
“돈 무서운 줄 알았다. 돈 버는 데 몸을 내던져야 한다는 것, 절대로 빚을 지면 안 된다는 걸 우선 원칙으로 삼게 됐다. 세상에 대해 냉정한 열정을 가져야 한다는 건 그 다음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 관점대로 살자, 그러나 남을 괴롭히지는 말자, 도그마로 사는 사람들과는 빨리빨리 결별하자 등등의 생각을 하게 됐다.”
학생운동, 스스로 즐긴 것일 뿐
이건 20대 때와 반대로 바뀐 게 아니라 성숙해진 것이라고 말하면서 꼭 물어보려 했던 말을 스스로 꺼냈다.
“학생운동에 목숨까지 헌신한 이들에게는 할말이 없다. 하지만 지금 사지멀쩡한 이들은 그 당시 그걸 스스로 원했고, 즐겼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 불의를 참을 수 없었고, 감옥에 갈 것을 스스로 결의하고…. 지금도 그렇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면 된다. 왜 마치 그때 자기가 무슨 희생을 한 것처럼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
<욕망>은 포르노그라피라는 화제성말고도 국내 최초로 만들어지는 고화질(HD) 디지털영화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 에피소드2>에서 사용한 것과 같은 종류로 지금까지 디지털영화로 소개됐던 영화와 질적으로 다르다. 첨단 기술로 찍은 포르노그라피? 여러모로 심상치 않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사진/ <욕망>

사진/ <욕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