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의 기억을 더듬어가는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고통의 기억으로 가는 길은 멀다. 더군다나 그 기억이 나의 날카로운 손톱에 의해 할퀴어진 것이라면. 망각으로 여기저기 차단했던 그 길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베트남전의 추악한 진실이 밝혀진 한참 뒤에도 우리에게 베트남전의 기억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거기에는 두툼한 지폐다발, 전사들의 무용담, 김추자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정도밖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99년부터 한국 군인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증거들이 하나둘씩 기억의 지하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그 길은 멀고 험해졌다. 용기가 필요해졌다.
당혹스런 질문 “왜 우릴 죽였는가”
시민단체 ‘나와 우리’의 김현아 대표가 쓴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책갈피)을 펼치는 것은 베트남전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더듬어가는 힘든 여정이다. 김씨와 ‘나와 우리’ 회원들은 99년부터 지난해까지 4차에 걸쳐 베트남의 한국군 양민학살 지역을 답사했다. 쿠앙남, 쿠앙응아이, 푸옌, 빈딘 등 수천명의 베트남 어린이와 여성, 노인들이 참혹한 죽임을 당한 지역을 돌면서 피해자와 가족들의 생생한 증언을 책을 묶어냈다.
나와 우리가 베트남과 ‘기이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98년이었다. 2차대전 중 일본군의 과오의 흔적을 찾아가는 일본의 시민단체 피스보트 답사선을 탔다가 찾아간 베트남 쿠앙남성에서 한국 해병에 의한 양민학살을 우연히 접하게 됐다. 이후 한국에는 아직도 가려진 베트남의 진실을 찾아 현장을 찾아가서 증언을 수집하고 상처입은 영혼들과 소통하는 것이 이들의 가장 큰 테마가 됐다. 부모와 형제, 배우자와 아이를 잃고 자신도 평생을 천형처럼 따라다니는 부상후유증을 고통받는 증언자들과의 대화에서 지은이가 늘 받던 질문은 “왜 우리를 죽였는가?” 하는 것이었다. 사망자 대부분이 어린이와 논에서 일하던 노인, 여성이었던 이들에게 죽임을 당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지은이는 이런 질문을 받으며 느꼈던 당혹감과 나라를 먹여살린 전쟁으로 새겨졌던 이전 기억과의 충돌로 인한 혼란스러움까지 털어놓는다. 책의 전반이 전쟁 당시의 참혹한 죽음에 대한 생생한 육성을 담고 있다면 후반은 잘린 다리, 멀어진 눈과 함께 상처를 안고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베트남 참전 경험이 있는 미국의 시인으로부터 “나는 평생 전쟁이야기만 쓸 것이다. 당신은 어떤가”라는 질문을 받았던 베트남 시인 탄타오의 대답은 오늘날까지 길게 드리워진 전쟁의 상처를 보여준다. “아니오. 나는 나에 대해서만 쓸 겁니다. 왜냐하면 전쟁이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가해자의 상처, 피해자의 상처 책 뒷부분에는 답사에 함께 참가했던 참전군인의 진술도 상세히 기술했다. “부모님께 황소 한 마리 사드리려고 갔던” 베트남에서 그는 잘린 팔다리보다 고통스러운 마음과 정신의 상처를 입고 평생을 죽음보다 깊은 침묵 속에 빠져 살아가고 있다. 빛나는 훈장도 국가의 경제적 지원도 그의 상처를 아물게 하지는 못했다. 상처는 가해자와 피해자 둘 다의 것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화해’라는 단어를 섣불리 꺼내놓지는 않는다. “치유불능의 상처, 폭력과 야만과 광기의 시대에 생긴 치유불능의 상처를 오래 바라보는 것, 그리고 상처로 하여금 말하게” 할 때 우리의 화해는 시작될 수 있다는 게 결론이다. 이 책은 방대한 양의 육성을 꼼꼼하게 채록한 지은이 그리고 ‘나와 우리’의 용기와 끈기가 완성한 ‘다시 쓰는 베트남 현대사’다. 다만 지나치게 많은 자료와 미국과 관련된 세계사적 역학관계까지 한꺼번에 소화하려는 바람에 읽다가 숨이 가빠지기도 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마을을 뒤지고 간 뒤 시체로 발견된 쿠앙남성 퐁니·퐁넛촌의 부녀자와 아이들.
나와 우리가 베트남과 ‘기이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98년이었다. 2차대전 중 일본군의 과오의 흔적을 찾아가는 일본의 시민단체 피스보트 답사선을 탔다가 찾아간 베트남 쿠앙남성에서 한국 해병에 의한 양민학살을 우연히 접하게 됐다. 이후 한국에는 아직도 가려진 베트남의 진실을 찾아 현장을 찾아가서 증언을 수집하고 상처입은 영혼들과 소통하는 것이 이들의 가장 큰 테마가 됐다. 부모와 형제, 배우자와 아이를 잃고 자신도 평생을 천형처럼 따라다니는 부상후유증을 고통받는 증언자들과의 대화에서 지은이가 늘 받던 질문은 “왜 우리를 죽였는가?” 하는 것이었다. 사망자 대부분이 어린이와 논에서 일하던 노인, 여성이었던 이들에게 죽임을 당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지은이는 이런 질문을 받으며 느꼈던 당혹감과 나라를 먹여살린 전쟁으로 새겨졌던 이전 기억과의 충돌로 인한 혼란스러움까지 털어놓는다. 책의 전반이 전쟁 당시의 참혹한 죽음에 대한 생생한 육성을 담고 있다면 후반은 잘린 다리, 멀어진 눈과 함께 상처를 안고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베트남 참전 경험이 있는 미국의 시인으로부터 “나는 평생 전쟁이야기만 쓸 것이다. 당신은 어떤가”라는 질문을 받았던 베트남 시인 탄타오의 대답은 오늘날까지 길게 드리워진 전쟁의 상처를 보여준다. “아니오. 나는 나에 대해서만 쓸 겁니다. 왜냐하면 전쟁이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가해자의 상처, 피해자의 상처 책 뒷부분에는 답사에 함께 참가했던 참전군인의 진술도 상세히 기술했다. “부모님께 황소 한 마리 사드리려고 갔던” 베트남에서 그는 잘린 팔다리보다 고통스러운 마음과 정신의 상처를 입고 평생을 죽음보다 깊은 침묵 속에 빠져 살아가고 있다. 빛나는 훈장도 국가의 경제적 지원도 그의 상처를 아물게 하지는 못했다. 상처는 가해자와 피해자 둘 다의 것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화해’라는 단어를 섣불리 꺼내놓지는 않는다. “치유불능의 상처, 폭력과 야만과 광기의 시대에 생긴 치유불능의 상처를 오래 바라보는 것, 그리고 상처로 하여금 말하게” 할 때 우리의 화해는 시작될 수 있다는 게 결론이다. 이 책은 방대한 양의 육성을 꼼꼼하게 채록한 지은이 그리고 ‘나와 우리’의 용기와 끈기가 완성한 ‘다시 쓰는 베트남 현대사’다. 다만 지나치게 많은 자료와 미국과 관련된 세계사적 역학관계까지 한꺼번에 소화하려는 바람에 읽다가 숨이 가빠지기도 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