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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공중에 떠도는 정신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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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9-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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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상 현상 실제적 증명의 허와 실… 집단의식의 양자적 도약은 가능한가

과학자들은 대체로 정신 또는 영혼을 뇌 과정에서 표출된 성질로 간주한다. 쇼크연구소에서 뇌와 정신과의 관련성을 연구해 온 프랜시스 크릭(1962년 노벨 의학상 수상)은 “당신, 당신의 즐거움과 슬픔, 당신의 기억과 야심, 당신의 개인적 정체성과 자유의지는 사실상 신경세포와 관련된 분자의 엄청난 회합물의 행동에 불과하다”라는 말로 이를 적절하게 표현했다.

크릭은 이를 ‘놀라운 가설’이라고 하며 뇌 연구의 방향으로 제시했을 뿐 아직 모든 것이 소상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다. 일찍이 존 에클스(1963년 노벨 의학상 수상자)는 “정신적 활동의 통합이 정신의 존재 이유이며 이는 신경과정을 기초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크릭도 에클스의 다른 견해를 인정했다. 또한 조지 월드(1967년 노벨 의학상 수상자)는 “정신이 진화과정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는 믿음을 표명하였다.

감각을 통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을까? 텔레파시의 문제에서 크릭의 유물론적 일원론보다는 그 자신의 텔레파시를 믿은 에클스의 이원론이 해석에 유리할는지도 모른다. 비평가들은 ‘기계 속의 유령 도그마’라고 말하지만 뇌와 분리된 그 유령이 외부와 교통이 수월해 보인다. 아니, 귀신같이 알아맞히기 위해서는 “텔레파시를 믿었으나 과학적 연구 대상은 될 수 없다”고 말한 월드의 유심론적 일원론이 적격인 것처럼 보인다.

텔레파시의 물리학적 증명은 불가능


유물론적 일원론으로 텔레파시를 해석하려고 할 때 뇌파야말로 매력적인 주제이다. 1920년대 최초로 인간의 뇌파를 기록한 한스 베르거뿐 아니라 지금도 이를 텔레파시와 관련짓는 초정상 과학자가 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 생각이 뇌신경의 작용이며 그것이 파동으로 나오는 것은 틀림없지만 뇌파가 두개(頭蓋)에서 측정된다고 해도 그 에너지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기 때문에 불과 몇 mm에 지나지 않아 거의 무한 소로 떨어진다.

아인슈타인이 텔레파시에 회의를 품은 이유를 “관련된 실험적 사실을 충분히 알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일생 동안의 물리학 연구에서 나온 결과이다”라고 하였듯이 시공을 초월할 수 있는 에너지란 물리법칙에 위배된다. 더욱이 설혹 뇌파가 두개를 뚫고 나와 공중에 쏘아 올려진다고 해도 어떻게 상대방을 찾아 생각을 전할 수 있을까.

이 불가능성을 극복하기 위한 초정상 과학자들의 유일한 돌파구는 양자론이다. 이들은 양자론에 의하면 주체(정신)에 의존적으로 객체가 그것도 확률적으로 결정된다, 우주의 모든 부분이 아양자 수준에서 연결되었다고 말한다. 나아가 정신을 그 자체 진행중인 양자계라고 하며 그 정신(의지, 마음)에 의해 뇌의 파동뭉치가 붕괴되어 새로운 정신상태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 정신이 아양자 수준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다른 사람의 정신에 영향을 끼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다른 사람의 정신, 텔레파시뿐이겠는가. 물체(파동뭉치)에 영향을 끼치는 염력도 마찬가지로 해석된다. 이렇게 보면 인연이 아닌 사건이 없게 된다. 북극곰이 북극 물 속에 뛰어들 때에 그것이 프랑스 남부에 열차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초정상 과학을 열렬히 지지하는 브라이언 조지프슨(197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 부인하지 않았다고 하는 이 선(禪) 문답식 가정적 현상은 다름 아닌 카를 융과 함께 비인과론적 의미있는 우연의 일치에 대한 해석을 찾았던 볼프강 파울리(194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의 ‘파울리 효과’이다.

대체로 과학자들은 초정상 과학의 해석에 적용하는 양자론을 양자철학이라고 부른다. 엄밀한 과학으로서의 양자론이 아니라 대안적 해석을 무시하고 입증되지 않은 많은 가설을 조합하여 초정상 현상에 대한 믿음을 지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차라리 철학이라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만일 초정상 현상이 실증현상이라면 이러한 가설적 해석 자체를 잘못됐다고 몰아세울 수만은 없다.

그렇다면 초정상 현상은 실증현상이라 할 수 있을까. 지난 8월26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한 ‘초능력을 파는 사람들’은 초능력자라고 불리는 유리 겔러와 그것이 속임수일 뿐이라고 주장해온 제임스 랜디를 대결시켰다. 유리 겔러가 가짜라는 인상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으나, 그가 이제 ‘스푼 구부리기’보다는 평화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겠다고 말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시드니올림픽에서 관중의 염원을 모아 평화의 마음을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심겠다는 말이다.

이런 식의 주장은 초월명상(TM)에서 오래 전부터 해오던 것이다. 이들은 이 우주에는 양자역학적 의식 장이 퍼져 있으며 초월 명상에 의한 집단의식의 양자적 도약에 의해 전 인류의 마음에서 스트레스를 제거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교통사고를 감소시키고, 범죄율을 감소시켰다는 등 ‘마하리시 효과’를 주장하였으나, 비평가들은 이들의 통계가 지극히 의심스럽다고 반박한다.

집단의식의 양자적 도약을 간접적으로나마 증명하려는 연구자도 있다. 뉴에이지 작가 라이얼 슨은 1979년 <생명조류>에 이를 증거하는 ‘100마리째 원숭이 현상’을 담았다. 이야기인즉, 일본의 영장류 학자들이 몇개 섬에 무리지어 사는 ‘마칵 원숭이’에게 식량을 공급했다. 이를 계기로 1953년 코시마섬에 사는 이모라는 18개월짜리 암컷 원숭이가 고구마에 붙은 모래를 냇물이나 바닷물에 씻어 먹는 법을 발견했다. 이모의 친구와 어머니가 이를 이모에게 배워 그 무리의 다른 원숭이들에게도 이 행동이 널리 퍼졌다.

‘100마리째 원숭이 현상’은 각색품

여기까지는 사실로 보이지만, 슨은 1958년까지 이 고구마를 씻어 먹는 습관이 점차 퍼져 1958년 가을에는 코시마섬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고 적었다. 정확한 수는 모르지만 예를 들어 99마리에서 한 마리가 보태지자 즉시 거의 모든 무리의 원숭이가 고구마를 씻어 먹게 되었고, 뿐만 아니라 그 습관은 자연장벽을 뛰어넘어 다른 섬에 그리고 본토의 무리에까지 순식간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이것이 임계질량을 초월한 집단 의식이 시공을 초월하여 전파되는 증거로 인용되는 ‘100마리째 원숭이 현상’이다. 슨은 런던대학 동물학 박사답게 <생명조류>에 600개의 인용문헌을 나열했는데 대부분이 인정받는 학술 논문이나 저서를 참고한 것이었다. 원숭이 현상에 나열한 5개의 일본 영장류학자의 논문 가운데 실제 중요한 것은 1965년 가와이 마사오의 논문이다.

그런데 가와이는 “마칵 원숭이의 고구마를 씻어 먹는 행동은 정상적인 개체적 전파에 의해 기대된 것보다 빠르지 않았다. 더욱이 그것이 다른 섬이나 육지로 자발적으로 전파된 증거는 없다”고 분명히 하며 슨의 이런 아이디어가 “서양의 텔레파시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각색품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슨은 단지 이야기 구성의 참고로 가와이의 논문을 이용하였던 것이다.

강건일/ 전 숙명여대 교수dir@kop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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