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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시월드’에서 많은 책임과 희생을 강요받는 며느리들의 고충을 들려준다. MBC 제공/MBC 제공
부부 중심 가족공동체를 꾸리려면 이 텍스트들이 영민하게 지적하듯, 시월드 고통의 본질은 노동의 힘겨움이 아닌 존재의 말소에 있다. 내가 누구이든, 어떤 삶을 살아왔든 ‘살가운 며느리’ 역할극을 강요받으며 내 부모에게도 해본 적 없는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아정체감이 갈려나가고, 자아존중감이 끝없이 하락한다. 이것이 며느리가 시월드에서 겪는 고통의 본질이다. 시월드에서 며느리는 집안일을 하는 하녀이자 ‘대를 잇는’ 매개물로 인식된다. 민지영이 시아버지 생일상을 차리는 것을 당연하게 보던 시부모는 임신 소식에 태도를 달리한다. 며느리는 임신으로 하녀 노동을 감면받는다. 시청자의 가장 큰 공분을 샀던 대목은 제왕절개 분만이 권고되는 의학적 상황임에도, 시아버지가 손주의 지능과 면역에 좋다는 근거 없는 이유를 들어 며느리에게 질식분만(자연분만)을 강권하는 장면이었다. 손주만 생각하는 처사가 아니냐는 며느리의 항변에도 시아버지는 의견을 철회하지 않았다. 한술 더 떠 남편 김재욱은 두 의견을 절충하려 들었다. 시월드에서 며느리는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받는 게 아니라 대를 잇는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낸 에피소드였다. 프로그램은 3부 마지막에 남편들의 반성을 담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반성인지는 알 수 없다. “남편이 신경 써야 며느리가 우리 집 식구가 되겠구나. 안 그러면 정말 남의 집 딸로 평생 갈 수 있겠구나.” 김재욱의 반성은 며느리를 시월드에 완전 편입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겠다는 말로 들린다. 하지만 며느리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시월드에 편입되는 것이 아니다. 시월드에서도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받으며, 남편과 동등한 파트너가 되어 부부 중심 가족공동체를 꾸리고 싶은 것이다. ‘딸 같은 며느리’라는 미명 아래 시집 식구가 되길 원하는 게 아니라, 사위 같은 ‘백년손님’으로 대해주길 바란다. 이를 위해 ‘며느리도 사람이다’라는 당연한 명제를 외치는 중이다. 하녀로 부릴 노동력이자 유전자를 배달할 매개체가 아니라, 인권과 시민권을 지닌 존재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지금껏 시월드에서 며느리들은 인권과 시민권이 없는 가부장제의 천민들로 취급됐다. 이제 겨우 한국인 며느리들에 대해 ‘전지적 며느리 시점’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지만, 외국인 며느리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다문화 고부열전>(EBS) 같은 프로그램이 방송된다. 시어머니 입장을 대변하는 송도순의 내레이션은 외국인 며느리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주 망각하며, 하녀이자 자궁으로 보는 시선을 감추지 않는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가사, 출산, 육아, 시부모 봉양 등을 며느리 노동에 떠맡겨놓았다. 한 세대 전의 여아 낙태와 비혼 문화의 확산으로 한국인 며느리가 부족해지자, 가부장제의 모순을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외국인 며느리들을 ‘수입해’ 빈자리를 메웠다. 노동자를 사람대접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후진국형 노동 착취가 불가능해지자, 노동환경을 개선해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와 열악한 노동환경에 밀어넣은 채 노동 착취를 계속해온 것과 유사한 구조다. 비혼 조장하는 위험천만한 텍스트 프로그램을 보고 남성들이 뭘 반성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여성들이 어떤 각성에 이를지는 분명해 보인다. 일단 시월드가 개별 시부모의 인성 문제가 아닌 가부장제 구조의 문제임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가부장제 아래에서 천민인 며느리가 인권과 시민권을 가지려면 저항해야 함을 깨달았을 것이다. 요컨대 기혼 여성들은 시부모에게 예쁨 받는 며느리 노릇을 그만하기로 결심하고, 비혼 여성들은 가부장제 결혼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비혼을 유지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을 것이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해한 음모 수준의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는 ‘이상한 나라’의 관점에서 보자면, 천기누설로 비혼을 조장하는 위험천만한 텍스트가 아닐 수 없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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