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원의 문장>의 이 교수는 지방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재직 중이다. 가족과 함께 집 앞 뷔페식당에서 저녁을 먹던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2학년 박수희가 자취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이었다. 이 교수는 ‘걔’가 누군지 몰랐고, 자살인가보다 했고, 장례식장 육개장을 먹기 싫어서 하던 식사를 마저 했다. 자살인 줄 알았던 박수희의 사인은 과실치사였다. 게다가 제자 3명이 긴급체포됐다. 이 교수가 가장 아끼는 제자 P도 섞여 있었다. 1심 재판에서 P는 금고 1년의 실형을 받았다. 이 교수는 P가 안됐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사건 내용은 이러했다. 평소 2학년 후배들이 3학년 선배들에게 인사를 잘하지 않자, P를 포함한 3명은 위계질서를 바로잡으려 학교 앞 술집으로 2학년을 불러모았다. 그 와중에 P는 후배의 뺨을 때리고 욕을 하는 등 위압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음주를 강요했다. 결국 만취한 박수희는 과도한 음주로 인한 급성 호흡부전으로 사망했다. 이 교수는 박수희의 죽음을 사건이 아닌 ‘사고’라고 믿었다. 그가 아는 P는 남을 해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재능이 뛰어났고, 어려운 형편에도 자신의 꿈을 좇을 줄 알며, 처진 눈꼬리가 자신과 꼭 닮은 제자였다. 결국 그는 한 사람을 편들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등을 돌렸다. 자신을 믿고 따르던 P에게 나쁜 일이 생겼다고 여겼지, P가 나쁜 일을 저질렀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당신 문제가 뭔지 알아? 당신은 말이야, 당신을 좋아해주는 사람만 좋아해. 알아? 그게 당신 문제라고.” 아내의 말마따나 이 교수는 자기를 좋아하는 P만 알았다.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P에 대해서는 몰랐다. P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때릴 수 있는 사람인 걸 그는 끝내 못 보았다. 박 전도사가 최 간호사의 손에 이끌려 수술실로 들어갔던 것처럼, 이 교수 역시 P가 자신을 속이도록 내버려두었다. P가 그를 속인 게 아니라, 그가 자신을 속인 거였다. 나라고 아주 다른 사람일까 아무도 죄를 짓진 않았다. 이 교수와 박 전도사는 사실상 무고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그리 너그럽지 않다. 주인공이 갈팡질팡하는 모습만으로도 그를 비겁하다고 여긴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선의에서 비롯했으며 무언가 잘못된 걸 알지만 그건 다른 사람이 벌인 일이라고 정당화했다. 그렇게라도 자신을 속이지 않고선 시력을 되찾을 수 없고, 자신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자꾸 그런 의심이 든다. 그들의 잘못을 낱낱이 말할 수 있는 이유가 혹 그와 내가 모르는 사이이기 때문은 아닐까. 이 지독한 딜레마가 그저 그들의 일에 불과하기 때문은 아닐까, 자꾸 나에게 묻게 된다. 나라고 아주 다른 사람일까 싶어서 ‘누군가’에게 한 번 더 물어보고야 만다. 황현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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