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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원고지 5만장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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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2-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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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대하소설 <한강> 탈고로 20년 ‘글감옥’에서 출옥한 작가 조정래씨

사진/ 20년 세월 동안 그가 집필한 작품 세편의 원고가 그의 키를 훌쩍 넘었다. 왼쪽부터 <태백산맨>, <아리랑>, <한강>의 원고.
그의 세 번째 대하소설 <한강>이 완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조정래씨는 지난 1월 <한강>의 마지막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다. <한강>은 설연휴 뒤인 이달 중순께 마지막 9, 10권이 나옴으로써 완간될 예정이다. 1998년 5월15일, <한겨레> 창간 10주년을 기념해 연재되기 시작한 뒤 꼭 3년9개월 만의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강>을 실제로 쓴 기간만을 따진 것으로, <아리랑>을 끝마친 뒤 새 작품을 위한 취재와 구상에 들어간 1995년부터 치자면 그 기간은 훨씬 늘어난다. 더 거슬러올라가 <태백산맥>을 쓰던 1983년부터 계산을 시작한다면, 조정래씨는 무려 20년 만에 단행본으로 도합 32권에 이르는 ‘대하소설 삼부작’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1세기 민족사와의 대결

<한강>의 탈고가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더한 대하소설 삼부작의 마무리를 뜻한다는 사실은 조정래씨가 <한강> 제10권의 말미에 붙인 ‘작가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씨는 원고지로 70장에 이르는 이 글의 부제를 ‘20년 글 감옥에서 출옥’으로 달았다(1995년에 완간한 <아리랑>의 작가후기 부제는 ‘글 감옥에서 가출옥’이었다). 이 글에는 또 8개의 소제목이 붙어 있는데, 그 첫 번째 것이 ‘마흔에서 예순까지’이다. 1943년생인 조정래씨가 (만으로) 마흔의 나이에 <태백산맥>을 쓰기 시작해 (세는 나이로) 예순에 <한강>을 끝냈다는 뜻이다.


<태백산맥>에서 <아리랑>을 거쳐 <한강>에 이르는 20년은 결코 만만하게 보아 넘길 세월이 아니다. 한 작가가 세편의 대하소설을 위해 20년 세월을 온전히 바친 예는 한국문학은 물론 세계문학사에서도 쉽사리 찾아보기 힘들다. 박경리씨가 1969년부터 1994년까지 25년 세월을 <토지> 한편에 쏟아부었고, 작고한 최명희씨가 1980년부터 1996년까지 대하소설 <혼불>을 쓰는 일에만 매달린 사례가 있긴 하지만, 두 경우 모두 한편씩의 작품이었고, 분량도 <태백산맥>과 <아리랑>과 <한강>을 합친 것에 비하면 절반이나 삼분의 일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조정래씨의 대하소설 삼부작에 대한 온전한 문학적 평가를 위해서는 시간이 좀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사람의 작가가 자신의 장년기 전부를 걸다시피 해서 쌓아온 원고지 5만여장의 두께는 한국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도대체 <태백산맥>과 <아리랑>과 <한강>이 무엇이관데, 작가 조씨는 그토록 맹렬한 집념을 발휘했던 것일까. <태백산맥>이 해방공간에서 한국전쟁에 이르는 기간을, <아리랑>이 일제강점기 전체를 대상으로 삼았다면, <한강>은 1950년대 말에서 1980년 광주항쟁 초입까지를 그리고 있다. <아리랑>에서 <태백산맥>을 거쳐 <한강>에 이르는 1세기 가까운 민족사가 조씨의 문학적 대결 상대였음을 알 수 있다. <아리랑>에서 그가 주력한 것이 핍박의 대상이자 저항의 주체로서 민족이라는 실체의 부각이었으며, <태백산맥>에서 그의 방점이 이념 갈등의 생존권적 출발에 찍혀 있었다면, <한강>에서 그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이른바 개발독재 시대의 기록적 경제성장의 바탕에 깔린 민중의 피땀과 눈물에 대해서이다.

80년대를 향해 열어 놓다

사진/ 글 감옥에서 나온 지 한달도 안 된 요즘이지만 조정래씨는 '후반기' 계획에 마음이 부산하다.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게 된 유일민·일표 형제, 역시 빨치산의 아들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일찌감치 주먹계로 진로를 잡은 서동철, 독립투사의 후손이지만 경제적 궁핍에 치를 떨다가 대기업의 충복으로서 주류 사회에 편입되는 허진, 해직기자 원병균, 가난한 농민의 후예로서 고등고시에 패스해 출세의 길을 달리는 이규백·김선오, 재산이라고는 몸뚱이 하나뿐인 도시 빈민 천두만, 가난과 독수공방에 지쳐 마을 머슴과 야반도주한 해남댁, 월남한 기업가 임채옥???의 딸로 유일민과 함께 애틋한 러브 스토리를 엮어가는 임채옥???, 부와 권력을 겸비한 탐욕스러운 국회의원 강기수, 아비에 맞서며 나름의 양심과 신념을 지키고자 애쓰는 그의 딸 강숙자, 예비역 대령 출신 국회의권 한인곤과 역시 예비역 장성 출신인 기업가 정동진, 건설회사 사장 박부길 등이 <한강>의 주요 인물들이다. 여기에다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버스 차장으로, 공장 노동자로, 술집 여급으로 풀리는 여자들, 그리고 머나먼 땅 사우디와 서독과 월남에서 노동자로, 광부로, 간호사로 ‘외화벌이’에 나선 이들까지…. <한강>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시대를 역시 통과해온 이들이라면 이 다양한 인물군상에서 자신과 닮은 모습을 찾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리라.

<한강>의 제10권 마지막 장의 제목은 ‘광주를 향하여’이다. 노동운동가로 성장한 유일표와 해직기자 이상재·원병균이 광주 5·18 소식을 듣고는 서울역에서 광주로 내려가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런 결말은 고향을 떠난 일민·일표 형제가 한강 다리를 건너 서울로 올라오는 소설 첫 장면에 대비되는 것임과 동시에, <한강> 전체를 1980년대를 향해 열어놓는다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해석된다. 작가는 본래 <한강>에서 1980년대 전체까지를 다룰 예정이었지만, ‘80년대에 대한 객관적 거리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 이야기를 80년대 벽두에서 멈추었다. 그럼에도 5월 광주의 학살과 항쟁으로 문을 연 1980년대가 그뒤 우리 사회의 진행에 막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뜻을 <한강>의 결말은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세편의 대하소설을 마치고 마침내 ‘글감옥’에서 ‘출옥’한 조정래씨는 요즘 거의 완전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실, 그는 <한강>을 탈고한 직후, 탈장 수술을 하고 실밥까지 뽑은 뒤였다. 탈장이 발병한 것은 지난해 6월께였으나, 수술을 한 뒤에는 당분간 절대 안정과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말에 7개월이나 미루던 수술이었다. ‘글감옥’ 시절 ‘먹고 자고 쓰고’의 반복이었던 일과는 지금 자고, 먹고, TV 보고, 다시 자고, 귀여운 손자 재면이의 재롱을 보는 것으로 바뀌었다. 모처럼 게으름과 인간적 기쁨을 한껏 누리고 있는 셈인데, 작가는 “글을 안 쓰고 있으니 왠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일 중독인 것 같다”고도 했다. 대하소설 시대에 이어질 ‘후반기’의 계획으로 10권 정도의 책을 생각하고 있다는 그는 우선 <태백산맥>을 쓰면서 완전히 손을 놓아버린 중단편을 쓰고 싶다고 밝혔다. “사회주의 몰락의 인류사적 의미를 짚어보는 장편도 꼭 쓰고 싶다. 인간의 구원 가능성이 어디까지인가 하는 것은 21세기는 물론, 22세기 이후의 인간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문단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한강>을 마무리한 기념으로 조정래씨는 외아들로부터 최신형 컴퓨터를 선물로 받았다. 사실 그는 <아리랑>을 탈고한 1995년에도 출판사로부터 컴퓨터 선물을 받은 적이 있었다. 원고지에 손으로 글을 쓰느라 오른팔과 손가락에 심각한 통증을 겪는 그를 위한 배려였다. 그러나 그는 아직까지 컴퓨터를 배우지 못했고, <한강> 역시 원고지에 쓰여졌다. 그는 이번만은 진짜로 컴퓨터를 배우겠노라고 의지를 다졌다. “소설은 끝까지 원고지에 쓰겠지만, 일기와 잡문은 컴퓨터에 쓰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가 쓰려는 ‘잡문’에는 문단 내부의 문제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포함될 예정이다. “강준만 교수와 이명원씨 등의 문제제기에 크게 공감한다. 지금 문단과 지식계는 일제강점기와 같은 기만과 굴종에 물들어 있다.” <한강> 이후 조정래씨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최재봉 기자/ 한겨레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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