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동아시아의 정체성
한국과 대만 지식인의 제안…일차적인 과제는 서로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동아시아적 정체성은 존재하는가. 그 경계선을 우리는 확정할 수 있는가. 이 난해한 문제를 두고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와 첸콴싱 대만 청화대 교수가 대담을 했다. 백 교수는 80년대 다산보임그룹 활동을 통해 노동자문화운동을 주도했던 이른바 ‘좌파 운동권’ 출신이다. 이번 동아시아 문화공동체 포럼의 준비위원장으로 국제 학술토론회를 조직했다. 첸 교수는 아시아권의 저명한 문화연구자들이 대거 참가하고 있는 의 편집인으로, 지난 학기 교환교수로 연세대에서 강의와 연구활동을 했다. 편집자
백원담(이하 백) 동아시아 개념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자.
1995년 동아시아에 대한 본격적인 담론이 불붙기 시작했다. <창작과비평> 등이 동아시아를 주제로 논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런 담론이 활발하게 거론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을 기점으로 한다. 초기의 문제의식은 동아시아에 정치공동체가 가능할 것인가였는데, 내 생각으로는 우리가 동아시아를 생각할 때 현실적으로 입각해야 할 지점은 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열악해진 민중의 생활상이다. 한국은 직접적 피해자이고, 중국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일본도 지속되는 경제불황을 경험하고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 3국의 민중 피해양상이 보편적이라는 점에서 동아시아에 대한 인식을 시작해야 한다. 과연 그 극복의 차원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서구에 의해 해석된 아시아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경험 속에서 새롭게 동아시아의 상을 사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첸콴싱(이하 첸) 90년대 이후 동아시아 담론이 출현했는데, 이는 자본주의 발전 및 냉전해체와 필연적 관계가 있다. 80년 중반 이후 동아시아 담론의 핵심은 동아시아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구 자본주의의 틀이 아닌 스스로의 틀을 만들어 해석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에 대해 논하는 것은 여전히 이르다. 내가 한국에 와서 이곳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도 상당히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비판적 지식인들이 공동의 문제의식을 형성하고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선 그만큼 많은 시간적, 경험의 상호교류가 누적되어야 한다. 언어적인 문제도 굉장히 심각하다. 우리는 여전히 무엇보다 먼저 서로 이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중국의 혁명, 한국의 민주화운동 백 냉전과 신자유주의가 비판적 지식인의 개입을 요청하고 있고, 거기서 연대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데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그렇다면 그 연대의 새로운 경로를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 민족국가의 모순과 지역적·세계적 문제를 연결해 바라볼 때 동아시아의 연대라는 문제를 회피할 수 없다. 중국에서도 이와 관련해 몇 가지 발전단계를 거쳐왔다. 80년대 초기는 민족과 사회주의를 동시에 어떻게 살릴 것인가가 고민이었다. 90년대 말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세계화 과정을 겪으면서 동아시아라는 새로운 시야를 갖게 되었다. 빈부격차 등으로 자본주의화 과정의 문제를 극복하는 과제가 대두되면서 이미 이런 문제를 겪었던 한국의 민주화과정 등에 시야가 열리고 있다. 첸 90년대 이후 중국의 지식인들이 한국과 대만에 관심을 가지고 보기 시작했다는 견해에 동의한다. 중국에는 대만엔 없는 그들만의 제3세계적 전통이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런 부분들을 포함한 과거 역사를 제대로 보는 것이다. 현 단계는 이러한 문제를 서로 교환하고 논하기 시작한 초보단계에 불과하다. 중국의 지식계는 여전히 상호교류, 소통의 기대가 현실적, 구조적 제약에 의해 가로막혀 있다. 백 소통의 일차적인 과제는 서로 제대로 들여다보기이다. ‘연대’의 맥락도 역사적 상처를 공동으로 과거에 투영하여 함께 문제제기를 하고, 현실적으로 직면한 문제가 과거의 어떠한 지점에서 기원하는가를 같이 얘기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사실 중국이 우리를 바라보는 것은 경제논리에서였다. 중국이 경제발전을 하는데 어떤 가능성이 있는가를 대만과 우리를 통해 들여다본 것이다. 그런데 아시아 금융위기는 유교자본주의의 발전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이제 자본주의에 대응하고 겪어왔던 각각의 삶의 역사, 특성을 제대로 정리해내는 것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각자의 처지에서 자신의 문제를 객관화하고 서로의 역사적 기억, 상처, 관계들에 대한 상호인식을 교환하는 것이 정체성 찾아가기의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동아시아적 정체성은 찾고 획득할 문제이다. 가령 8·15에 대한 동아시아 각국의 기억이 서로 다를 것이다. 중국은 난징학살, 한국이 항일운동을 떠올린다면 일본은 패전으로 기억할 것이다. 이런 상이한 기억을 되비춰 이해의 지평을 넓혀갈 수 있는 공간으로서 동아시아의 범주를 고민해야 한다. 첸 정체성은 끊임없이 변동하는 것이다. 먼저 인정해야 하는 것은 동아시아에 아직 어떤 정체성도 없다는 것이다. 우선은 ‘상상’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동아시아는 경계도 없다. 동남아니 동북아니 하는 지역적 범주는 일정하지 않다. 공동의 무엇인가가 있어야만 한다는 우리의 희망이 있을 뿐이다. 사실상 동북아에는 총체성이 아닌 단편성이 더 강하다. 상상의 지점은 각각의 경험이다. 중국의 혁명은 비판적 지식인 사회에서 공통의 자원으로 존재한다. 한국의 민주화운동도 중요한 상상적 자원을 제공한다. 파편화된 것이라 해도 이러한 것들을 연결할 때 비로소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고 아시아의 정체성을 논할 수 있게 된다. 한류도 이러한 측면에서 검토해볼 수 있다. 90년대의 경제적 기반이 없었다면 한류라는 문화적 자원, 유행문화라는 것이 대만에서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류는 물론 문화산업의 움직임의 결과이다. 그러나 최초의 동력은 자본이지만, 일단 그 나라에 들어서자 자본을 넘어 또다른 문화적 관계를 가져왔다. 시장체계를 통해 대만의 문화적 상상의 세계 속으로 침투했으며, 그것을 다원화하는 가능성을 열어줬다. 나도 한국의 드라마를 통해 비로소 한국의 가부장적인 면을 이해할 수 있었다. 소통의 가능성, 한류와 화류
백 중국에 왜 한류가 불고 있는가. 중국문화가 서구 환상을 깨기 시작하면서 자기 문화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단계이지만, 아직 그 정체성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빈 공간을 상업적 대중문화로서의 한류가 채워주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러선 안 된다. 문화산업의 진출과 함께 한국 민주화의 역사가 동아시아의 상상의 자원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진정한 한류를 형성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도 ‘화류’가 넘실대는데, 화류는 정확히 중국을 경제적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중국에 진출해서 먹고살겠다는 것인데, 이 또한 자본의 동력에 의한 조작의 측면이 있지만, 이 화류를 통해서 중국을 이해하는 공간이 열린다. 이런 공간을 통해 서로 심층적 문화의 교융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에겐 그런 역사가 있다. 이미 80년대 마오쩌둥의 이론이며 대자보의 실천을 우리 운동의 자원으로 삼지 않았던가.
첸 동아시아는 같은 지역적 역사를 지닌 존재이다. 일본에서는 이를 한자문화권, 젓가락전통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20세기 전쟁의 상황이 원래의 연계성을 단절시켰다. 우리가 만들어낸 조건이 아니라 자본과 냉전이 만들어낸 단절이다. 따라서 이전에 있었던 연대성을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동아시아를 문화적 패권주의의 입장에서 특권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선 반성이 필요하다.
백 아시아는 원래 다원적 공간을 품고 있던 지역이다. 그동안 동아시아는 서구에 의해 같음을 강요당해왔다. ‘너희는 야만이다. 우리에게 배워라’는 압력이었다. 지금 동아시아를 제기하는 것은 이제까지의 자본주의 문명, 불과 쇠의 문화에서 물과 나무의 문화로 바꾸자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역사적 과정의 공유이다.
첸 그동안 동아시아를 이해할 때는 대만과 한국의 역사를 미국의 관점에 비춰보는 단순한 대비방법만이 있어왔다. 동아시아는 서로를 참조하는 다원화한 거울로서의 가능성을 가진다. 그러나 이 또한 참고틀의 다양화를 위한 고리의 하나로서만 사고돼야 한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사진/ (이용호 기자)
첸콴싱(이하 첸) 90년대 이후 동아시아 담론이 출현했는데, 이는 자본주의 발전 및 냉전해체와 필연적 관계가 있다. 80년 중반 이후 동아시아 담론의 핵심은 동아시아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구 자본주의의 틀이 아닌 스스로의 틀을 만들어 해석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에 대해 논하는 것은 여전히 이르다. 내가 한국에 와서 이곳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도 상당히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비판적 지식인들이 공동의 문제의식을 형성하고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선 그만큼 많은 시간적, 경험의 상호교류가 누적되어야 한다. 언어적인 문제도 굉장히 심각하다. 우리는 여전히 무엇보다 먼저 서로 이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중국의 혁명, 한국의 민주화운동 백 냉전과 신자유주의가 비판적 지식인의 개입을 요청하고 있고, 거기서 연대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데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그렇다면 그 연대의 새로운 경로를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 민족국가의 모순과 지역적·세계적 문제를 연결해 바라볼 때 동아시아의 연대라는 문제를 회피할 수 없다. 중국에서도 이와 관련해 몇 가지 발전단계를 거쳐왔다. 80년대 초기는 민족과 사회주의를 동시에 어떻게 살릴 것인가가 고민이었다. 90년대 말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세계화 과정을 겪으면서 동아시아라는 새로운 시야를 갖게 되었다. 빈부격차 등으로 자본주의화 과정의 문제를 극복하는 과제가 대두되면서 이미 이런 문제를 겪었던 한국의 민주화과정 등에 시야가 열리고 있다. 첸 90년대 이후 중국의 지식인들이 한국과 대만에 관심을 가지고 보기 시작했다는 견해에 동의한다. 중국에는 대만엔 없는 그들만의 제3세계적 전통이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런 부분들을 포함한 과거 역사를 제대로 보는 것이다. 현 단계는 이러한 문제를 서로 교환하고 논하기 시작한 초보단계에 불과하다. 중국의 지식계는 여전히 상호교류, 소통의 기대가 현실적, 구조적 제약에 의해 가로막혀 있다. 백 소통의 일차적인 과제는 서로 제대로 들여다보기이다. ‘연대’의 맥락도 역사적 상처를 공동으로 과거에 투영하여 함께 문제제기를 하고, 현실적으로 직면한 문제가 과거의 어떠한 지점에서 기원하는가를 같이 얘기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사실 중국이 우리를 바라보는 것은 경제논리에서였다. 중국이 경제발전을 하는데 어떤 가능성이 있는가를 대만과 우리를 통해 들여다본 것이다. 그런데 아시아 금융위기는 유교자본주의의 발전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이제 자본주의에 대응하고 겪어왔던 각각의 삶의 역사, 특성을 제대로 정리해내는 것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각자의 처지에서 자신의 문제를 객관화하고 서로의 역사적 기억, 상처, 관계들에 대한 상호인식을 교환하는 것이 정체성 찾아가기의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동아시아적 정체성은 찾고 획득할 문제이다. 가령 8·15에 대한 동아시아 각국의 기억이 서로 다를 것이다. 중국은 난징학살, 한국이 항일운동을 떠올린다면 일본은 패전으로 기억할 것이다. 이런 상이한 기억을 되비춰 이해의 지평을 넓혀갈 수 있는 공간으로서 동아시아의 범주를 고민해야 한다. 첸 정체성은 끊임없이 변동하는 것이다. 먼저 인정해야 하는 것은 동아시아에 아직 어떤 정체성도 없다는 것이다. 우선은 ‘상상’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동아시아는 경계도 없다. 동남아니 동북아니 하는 지역적 범주는 일정하지 않다. 공동의 무엇인가가 있어야만 한다는 우리의 희망이 있을 뿐이다. 사실상 동북아에는 총체성이 아닌 단편성이 더 강하다. 상상의 지점은 각각의 경험이다. 중국의 혁명은 비판적 지식인 사회에서 공통의 자원으로 존재한다. 한국의 민주화운동도 중요한 상상적 자원을 제공한다. 파편화된 것이라 해도 이러한 것들을 연결할 때 비로소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고 아시아의 정체성을 논할 수 있게 된다. 한류도 이러한 측면에서 검토해볼 수 있다. 90년대의 경제적 기반이 없었다면 한류라는 문화적 자원, 유행문화라는 것이 대만에서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류는 물론 문화산업의 움직임의 결과이다. 그러나 최초의 동력은 자본이지만, 일단 그 나라에 들어서자 자본을 넘어 또다른 문화적 관계를 가져왔다. 시장체계를 통해 대만의 문화적 상상의 세계 속으로 침투했으며, 그것을 다원화하는 가능성을 열어줬다. 나도 한국의 드라마를 통해 비로소 한국의 가부장적인 면을 이해할 수 있었다. 소통의 가능성, 한류와 화류

사진/ (이용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