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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천기저귀 쓰는 게 사치인 나라

천기저귀와 일회용의 대차대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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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23 22:36 수정 : 2017-11-2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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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도담아, 기저귀 갈 때는 가만히 있어줘~.”

아내가 빨래를 개다 깜빡 졸았다. 얼마 전 천기저귀를 사용하면서 빨래양이 곱절 이상 늘었기 때문이다. 수북이 쌓인 천들을 앞에 두고 노곤한 몸으로 한 장씩 개다보니 졸음이 쏟아진 모양이다. 생후 8개월에 접어든 도담이가 기어다니면서 우리 손도 덩달아 분주해졌는데, 기저귀를 일회용에서 천으로 바꾼 게 괜한 결정이 아니었는지 잠깐 후회됐다.

지난 7개월 동안 일회용 기저귀만 썼다. 흡수력이 뛰어나고, 갈기 수월하며, 사용 뒤 돌돌 말아 휴지통에 던지면 그만이라 이보다 더 편할 수 없었다. 단점은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는 것 정도? 한동안 출산 선물로 일회용 기저귀만 받은 것도 그래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기저귀로 갈아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천기저귀는 마을 바자회에서 만난 육아 선배들이 권유해서 쓰게 됐다. 형형색색의 커버가 눈에 들어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며 이리저리 살펴봤다. 옆에서 지켜보던 마을 사람이 “천기저귀 커버”라고 알려주며 “그쪽은 딸을 키우니 한번 써봐. 아이에게 좋을 거야”라고 추천해줬다. 그건 천을 붙였다가 뗄 수 있는 커버였다. 하나에 1천원밖에 하지 않아 한번 써보기로 했다. 천기저귀를 샀다는 사실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자 그들은 집에 있는 천기저귀를 조금씩 나눠줬다.

모양도 사용법도 제각각이지만, 직접 사용해본 천기저귀는 만족스러웠다. 처음에는 도담이가 볼일을 볼 때마다 갈아줘야 해서 불편했다. 아기들은 볼일을 자주 보는 까닭에 기저귀를 갈아주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빨래하는 데 손도 많이 간다. 사용한 천을 모아 애벌빨래를 한 뒤 세탁기를 돌려야 하고, 양이 많아 매일 빨래를 해야 한다. ‘이 힘든 걸 왜 사용하나’ 싶지만 장점이 단점들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

일단 도담이가 일회용 기저귀의 화학물질에 노출되지 않아 안심된다. 천기저귀가 훨씬 위생적이라 아이가 볼일을 본 뒤에도 냄새가 남지 않았고, 가끔 빨갛게 올라오던 발진도 말끔히 사라졌다. 무엇보다 살에 닿는 느낌이 부드러운지 도담이가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일회용 기저귀는 외출할 때만 챙기면서 하루 사용량이 열 몇 개에서 두 개로 줄었고, 기저귀를 사는 데 더이상 지갑을 열지 않게 되었다.

장점이 그렇게 많음에도 천기저귀 사용을 추천하기는 꺼려진다. 도담이 또래를 자녀로 둔 ‘82년생 김지영’씨들도 천기저귀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는 게 아니다. 육아에 치여 천기저귀를 쓸 만큼 대한민국 여성들이 여유롭지 않은 게 문제다(<한겨레> 11월15일치 1면 ‘누가 ‘김지영’을 성차별하나’ 참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노동시간이 두 번째로 긴 나라에서 아이를 위해 천기저귀를 쓰는 것은 대단한 사치다. 그래서 말해본다. 82년 김지영씨를 신문에서 찾지 마. 바로 네 옆에 있어!

글·사진 김성훈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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