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집 작업을 하기 전부터 ‘모든 삶은, 작고 크다’라는 여덟 글자를 마음에 담았다. 메인 제목으로 정한 게 아니라 부제 정도로만 생각했다. 앞으로 어떤 글과 노래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대변할 수 있는 게 제목이 되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나의 작은 오두막’ ‘노래하는 집’ 등이 제목으로 거론됐지만 그중 내 일상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건 ‘모든 삶은, 작고 크다’였다.
‘모든 삶은, 작고 크다’ ‘오, 사랑’ ‘아직, 있다’ ‘버스, 정류장’…. 그러고 보니 다 쉼표가 있다. 이렇게 해야지 하고 만든 건 아니다.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한 것이다.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가볍게 안부를 전하는 곡이다. 처음에 타이틀곡이라 생각한 건 아니다. 앨범 작업이 다 끝나고 2년간 제주 생활을 촬영한 걸 모은 뮤직비디오까지 만들고 보니 이 곡이 이번 앨범 콘셉트에 제일 잘 맞았다. 이 노래와 글과 사진과 뮤직비디오까지 하나로 완성되는 것 같다.
<폭풍의 언덕>을 믹싱하는데 자꾸 컴퓨터가 다운돼서 애를 먹었다. <바다처럼 그렇게>는 중간에 멜로디를 바꿨다. 6분이 넘는 곡을 오랜만에 만들었다. 이 곡은 바다에 대한 기억을 담았다.
해가 질 때, 날이 따뜻할 때 바다를 보고 있으면 문득 옛날 일이 플래시백된다. 영화 <라따뚜이>에서 음식평론가가 라따뚜이를 먹다 갑자기 ‘뿅’ 하면서 어릴 때로 돌아가는 것처럼. (부산에서 자란) 나는 바다가 익숙하고 편하다. 대학교 때 서울에 와 어디를 봐도 바다처럼 트인 곳이 없어 답답했다. 상자에 갇힌 느낌이었다.
11곡을 썼다가 2곡을 뺐다. 10곡 이하로 낸 게 1집 외엔 없었다. ‘매번 앨범 작업이 끝날 때 (곡을) 더 실어야지’라는 강박이 생긴다. 이번에는 ‘좀더 사람들이 아쉬운 듯 집중할 수 있게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9곡을 실었다. 그중에 마지막 곡은 보너스 트랙으로 넣었다. 굳이 앨범을 사는 이들에게 특별한 선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주위에서 ‘어차피 9번 트랙쯤 가면 다들 안 들을 거다’라고 말한다. (웃음) 이건 히든 곡이다.
파도 소리, 바람 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담고 싶었다. 8~9월쯤 과수원 한가운데에 있는 오두막의 창문을 열면 벌레 소리, 반딧불 소리가 크게 들린다. 때론 변주가 되기도 하고. 어느 쪽 창문을 여느냐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 저녁에 창문을 열어 그 소리를 녹음하고 가만히 있었다. 이 곡을 귀 기울여 들으면 개 짖는 소리도 들릴 거다. 내가 해보고 싶은 게 페이드인(소리가 천천히 커지는 것)인데 그걸 이 곡에서 했다. 피아노 등 멜로디가 페이드아웃(소리가 천천히 작아져 사라지는 것)되지만 벌레 소리는 점점 커진다. 잠 안 오는 사람들에게 좋다. 아기 엄마인 친구들이 ‘고맙다’는 문자를 많이 보냈다. 이 노래를 틀어주면 안 자던 애들이 잘 잔다고. 자장가처럼 들리나보다. (웃음)
11월에 에세이 뮤직 형태의 ‘모든 삶은, 작고 크다’를 펴냈다. 안테나뮤직 제공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대학원 생명공학 박사 출신인 루시드폴은 1993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거울의 노래>로 동상을 받은 뒤 1998년 인디밴드 ‘미선이’ 멤버로 참여해 첫 앨범 <드리프팅>을 발표했다. 2001년 1집 솔로 정규 앨범 <루시드폴>을 시작으로 7집 <누군가를 위한,> 등 여러 앨범을 내놓았다. 2009년부터 생명공학 공부를 포기하고 전업 가수의 길로 접어든 그는 그동안 서정적인 포크송 음악을 주로 선보였다.
‘음유시인’이란 말을 듣는 그는 시를 닮은 노랫말로도 유명하다. 고등어의 시선으로 보통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고등어>, 서울 용산 참사 희생자를 다룬 <평범한 사람>, 제3세계 노동력 착취 이야기를 담은 <사람이었네> 등 낮은 곳을 향한 따뜻한 위로의 노래를 불렀다.
그는 글을 쓰는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가사 모음집 <물고기 마음>, 소설집 <무국적 요리>, 마종기 시인과 함께 쓴 서간집 <아주 사적인, 긴 만남>과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 번역서 <부다페스트> 등을 펴냈다.
8번 트랙 <부활절>은 2017년 4월15일 부활절 전야에 완성된 곡이라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들었다. 마종기 시인과 나눈 편지글을 모은 책 <아주 사적인, 긴 만남>에도 ‘부활절’이라는 자작시가 나온다.
그건 2008년 12월에 쓴 편지에 나오는 글이다.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학회에 갔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썼다. ‘나의 리서처(연구자)로서의 커리어는 여기까지인가봐’라는 생각을 했고, 무척 서운하고 서러웠다. 눈물이 잘 안 나는 편인데 그때는 눈물이 났다. 그러고 돌아와 논문 두 편을 마무리했다. 그걸 쓰고 부활한 거다. 난 징하다. (웃음)
제주에서의 삶은 어떤가.
제주는 아름다운 곳이다. 제주보다 더 아름다운 곳은 우리나라에선 없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같다. 그런 아름다운 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가장 기쁘다. 난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농부, 작가, 가수 1인 3역
제주에서 아날로그적 삶을 살고 있다.
나의 취향이다. 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방식을 택하는 편이다. 디지털카메라보다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더 좋고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내 얼굴을 거울에 비춰 볼 때도 있고 강가에 비춰 볼 때도 있다. 디지털카메라로 찍는 건 거울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선명하고 쨍하다. 어떤 사물을 정확하게 재현할 것인가라는 테크놀로지에만 집중돼 있다. 그러나 필름카메라는 어떤 필름을 쓰느냐에 따라, 그날 빛의 종류에 따라 인화된 사진이 달라진다. 디지털카메라보다 약점이 많지만 우리들 기억의 형태와 더 닮아 있다. 옛 기억이 선명하지 않고 흐릿한 것처럼 말이다.
2015년에는 직접 재배한 귤과 함께 7집 앨범을 홈쇼핑에서 팔아 화제가 됐다. 올해 귤농사는 잘되었나.
올해 해거리(과실의 수량이 많았던 이듬해에 수량이 현저히 줄어드는 현상)가 심해 수확량이 작년의 10분의 1도 안 될 것 같다. (수확량이 적어) 가족이나 가장 가까운 분들에게만 조금씩 (귤을) 보내고 있다.
인터넷에 연관 검색어로 ‘루시드폴 귤’이 나온다.
하하하, 귤 아저씨가 됐다. ‘음악은 필요 없는데 귤만 살 수 없나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고. (웃음)
홈쇼핑에서 ‘귤이 빛나는 밤에’ 방송을 하면서 귤 탈을 썼고, 최근 네이버 브이앱에서 농부, 작가, 가수 1인 3역을 소화했다. 뭔가 엉뚱하고 예상치 못한 일을 하는 걸 좋아하는 듯하다.
굉장히 럭비공 같은 성격이다. 엉뚱하고 예상치 못한 일을 벌이는 걸 좋아한다. 달리 말하면 예상할 수 있고 뻔하고 반복되는 일을 못 견뎌한다.
“속이 경상북도 울릉하네요.” “우리 경기도 양주 먹을까요?” “이거 참 전남 무안하네요”라는 식의 썰렁한 ‘스위스 개그’(스위스 유학생 출신인 루시드폴이 자신의 개그를 일컫는 말)를 만들었다. 진지한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전혀 예상치 못한 언어유희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 자신의 개그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누구도 해치거나 디스하지 않는, 나만 웃기고 싱거운 놈이 되는, 그야말로 친환경 개그를 하자’다.
팬에게 받은 펜으로 곡을 쓰다
이번 에세이에서 보니 원고지에 글과 가사를 쓴다.
목디스크가 있어 (컴퓨터) 자판을 치면 목이 아프다. 그래서 원고지에 팬분들이 선물로 준 만년필로 글을 썼다. 그런 과정이 좋다. 팬들에게 받은 선물로 곡을 쓰고 다시 그들에게 (음악으로) 돌려주는 것 같다. 농사를 하다보니 그런 순환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됐다.
순환하는 삶을 생각하는 농부가 된 것인가.
예전에도 (순환에 대해) 생각했지만 농사를 지으면서 피부로 느끼게 됐다. 귤을 따다가 상한 부분이 있으면 잘라서 땅으로 보낸다. 2~3개월쯤 지나 땅을 보면 그것이 삭아 있다. 귤이 흙으로 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귤을 팔아 만든 돈으로 악기와 녹음 장비를 산다. 그것으로 음악을 만들고. 이게 또 다른 순환 같다. 이런 일도 있다. 지난 제주 공연 때 나에게 손편지를 건넨 팬이 있다. 그분은 갑자기 귀가 아파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어느 날 내 음악을 들었는데 귀가 안 아팠단다. 그분의 사연을 읽고 마음이 찡했다. 나도 그분을 통해 무언가 돌려받은 느낌이었다.
책 <아주 사적인, 긴 만남>에서 “제가 내린 결론은 저는 공학자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보람이나 행복보다는 음악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편하고, 행복할 것이라는 확인이었지요”라고 썼다. 생명공학도의 길을 포기하고 음악인으로 사는 지금, 편하고 행복한가.
당시에는 ‘공학자로서의 연은 다했다’는 느낌을 받았던 지점에서 돌아온 것이다. 그냥 마치 정해진 길이었던 것처럼 지금은 (음악인으로서) 이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래서 지금 편하고 행복한가라고 물어본다면 ‘예’라고 답하겠다.
음악이 있는 새 산책길로
“매번 새 앨범을 세상에 내놓을 때마다 새로운 산책길 여남은 개를 만들어내야 한다. 테마도, 풍경도, 날씨도, 소재도 다른 산책길을 끊임없이 만들고,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목소리로 가이드를 하는 것. 그것이 나의 노래다.”(에세이 <모든 삶은, 작고 크다> 중에서)
어느덧 데뷔 20년차 가수가 된 루시드폴은 “음악은 산책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가수는 그 길을 안내하는 가이드라고. 가이드와 함께 산책길을 걷는 것이 노래를 듣는 것이란다.
그런 그가 안내하는 길은 잘 닦인 아스팔트길이 아니라 소담한 숲길일 것이다. 새소리를 들을 수 있고 꽃과 나무를 보며 삶의 쉼표를 찍을 수 있는 길. 그 길에서 함께 걷는 이의 걸음에 보조를 맞추며 조근조근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다.
그렇게 그 길을 따라 가을이 가고, 루시드폴이 온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