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이덕일씨에게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유사역사의 공격에 정면 대응했다. 유사역사의 공격을 ‘무시’해온 기존 학계의 대응과는 사뭇 달라 적잖은 파장이 있었다. 이덕일씨는 <우리 안의 식민사관>(2014)에서 내가 쓴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2010)를 두고 ‘김현구가 임나일본부설을 인정했다’, ‘삼국이 일본의 속국이라고 했다’, ‘일본 사서인 <일본서기>를 사실로 인정했다’는 허위 사실을 적시했다. 내 책에는 전혀 반대로 되어 있다. 일본을 정면 비판하는 사람을 친일파로 매도하는데, 이렇게 되면 일본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매국노·친일파로 매도당할 수 있다고 봤다.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일본 관계 연구자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행태를 용납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김현구 교수의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는 <일본서기> 안에서 발견되는 모순을 이용해 <일본서기>에 기록된 일본의 한반도 남부경영설 즉, 임나일본부설을 논리적으로 반박한 책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박근혜씨의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모은 ‘박적박’(박근혜의 적은 박근혜)처럼 일본 학자들이 일본 고대사의 토대로 삼는 <일본서기>가 임나일본부설을 부정하도록 하는 영리한 방법이다. 공교롭게도 이덕일씨가 <우리 안의 식민사관>에서 김 교수를 매국노·친일파로 매도하는 근거 역시 여기에 있다. 이덕일씨는 ‘김현구는 식민사학자’라는 주장을 입증하는 방식으로 김 교수가 <일본서기>를 인용했거나 <일본서기>를 토대로 임나일본부설의 초석을 놓은 일본학자의 학설을 수용한 부분만을 발췌해 열거한다. 이덕일씨가 내세운 근거들은 김 교수의 핵심 주장, 즉 ‘임나 지역을 지배한 것은 일본이 아니라 백제다’와는 무관한 지엽적인 것들이다. 한일 역사 전쟁의 핵심 대목인 임나일본부설을 결정적으로 부정하기 위해 일본학자들의 금과옥조로 여기는 <일본서기>의 일부를 긍정할 수밖에 없는 김 교수의 연구방법론을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다. ‘허위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한 1심 판결을 뒤집은 항소심과 대법원도 김 교수의 책에 이덕일씨가 주장한 내용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덕일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이유는 ‘그렇게 오해할 만한 사정이 있다’는 것이었다. 연구방법론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를 무기로 연구자를 모욕하는 일을 법원이 용인한 셈이다. 한국 사회는 식민사학의 주장을 수용하면서도 반박해야 하는 역사 연구자들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보호하지 않았다. <일본서기>를 이용해 <일본서기>를 반박하는 연구방법론이 화근(?)이 된 것 같다. <일본서기>를 인용하지 않고 어떻게 일본 학자들을 반박할 수 있겠는가. 일본 학계는 임나일본부설을 전제로 역사의 틀이 형성됐다. 내가 책 하나 쓴다고 일본의 역사학계가 바뀌는 게 아니다. 이런 방식의 연구가 끊임없이 있어야 일본 학계의 태도가 바뀔 수 있다. 그런데 일본도 아닌 한국에서 내 발목을 잡았다. <일본서기>를 인용하면 식민사학자가 되는 나라에서 앞으로 어떤 연구자가 <일본서기>를 반박하는 연구할 수 있겠는가. 역사학자들에게 <일본서기>를 반박하는 연구를 하지 말라고 한국 사법부가 재갈을 물린 것이다. 이보다 한심한 일이 어디 있나. 이덕일을 비호하는 명사들에게 더 큰 실망 <일본서기>를 어떻게 연구한 것인가. 임나일본부가 임나에 있었다는 기간에 일본과 한반도에 사신이 오간 빈도를 <일본서기>를 통해 조사했다. 백제-신라는 2번, 임나-일본은 8번, 백제-일본은 39번이었다. 그동안 일본 학자들은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가 임나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그들이 신봉하는 <일본서기>에 임나-일본의 관계가 드문 것으로 나오니 꼼짝을 못했다. 백제-일본 관계의 실체도 밝혔다. 백제가 일본에 요청하는 것은 군사 지원밖에 없었고, 일본이 백제에 요구한 것은 선진 문물의 전수에 관련된 것뿐이었다. 일본과 임나랑 상관이 없는데 <일본서기>에 일본이 임나를 지배했다는 얘기는 왜 나오게 됐느냐. 나는 실제 임나를 지배한 것은 백제 8성 가운데 하나인 백제 장군 목씨(목라근자)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일본에는 목씨가 없다. 임나를 지배했던 백제 목씨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소가씨가 됐다는 것도 입증했다. 이 모든 것을 일본 기록으로 했기 때문에, 일본 학자들도 반박하기 어렵다. 김 교수는 이덕일씨가 오히려 일본의 식민사학자와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덕일씨가 <고구려 700년의 수수께끼>(2000) 41쪽에 제시한 고대 한반도 지도에 ‘왜’가 등장하는 것을 사례로 들었다. 김 교수는 “한반도 서남부에 왜의 존재를 표시하는 학자는 일본에도 없다. 일제강점기에도 없었다”고 했다. 이번에 김 교수가 낸 <식민사학의 카르텔>에는 역사연구자들에게 식민사학자 딱지를 붙이며 민족사학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이덕일씨가 정작 자신의 책에서 식민사학자나 다름없는 주장을 한 ‘흑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김 교수는 이덕일씨의 ‘기행’보다 이를 비호하는 명사들에게 더 큰 실망감을 느꼈다고 했다. 소송 과정에서 이덕일씨의 공익변호사를 자처한 이는 대통령 후보로도 나선 바 있는 박찬종 변호사와 법제처장을 지낸 이석연 변호사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해양수산부 장관과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허성관 전 장관은 이덕일씨에 대한 검찰의 기소 결정에 “이덕일을 형무소에 보내서 지켜야 할 정의가 뭐냐”고 반문하는 칼럼을 기고했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 이재명 성남시장 등 이덕일씨에 대한 1심 재판부의 ‘유죄’ 판결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명사가 한둘이 아니다.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에서 임나일본부의 근거가 없다는 데 한일 연구자들이 합의했다. 일단락된 문제 아닌가. 2010년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2기에서 낸 결론은 ‘왜가 한반도 남부에서 활약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임나일본부라는 기구가 없었다는 데 합의했다’는 것이었다. 임나일본부설의 핵심은 왜가 한반도를 200년 동안 지배했다는 것이지, 임나일본부라는 통치기구의 존재 여부가 아니다. 여전히 일본 고대사는 왜가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것을 전제로 서술되고 있다.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출간 거부한 일본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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