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화사를 지배한 ‘오른손 중심주의’에 대한 항변 <왼손과 오른손>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조기에 관한 명상> 등의 책으로 우리 문화의 가려진 원형을 드러내며 ‘스타’로 떠오른 역사민속학자 주강현씨가 <왼손과 오른손>(시공사 펴냄, 02-585-1751, 1만2천원)이란 책을 새로 선보였다. 그런데 ‘우리 것’에 천착해온 그를 떠올리고 책을 열어보면, 처음에 잇따라 다가오는 소제목들이 조금 뜻밖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미륵반가사유상의 손’, ‘왼손잡이 여인의 절대고독에 관하여’…. 이건 그가 이번에 택한 연구방법과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기호다. 미륵반가사유상과 더불어 서양조각가 로댕을 병치시켜놓은 것은 예전과 달리 이 책의 절반 이상이 ‘서양 것’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을 뜻하며, 연극 <관객모독>으로 잘 알려진 독일의 페터 한트케의 소설 <왼손잡이 여인>을 끌어들인 두 번째 장은 ‘왼손과 오른손’을 대하는 그의 정치적 좌표를 대번에 보여준다. 절대 고독을 상징하는 소설 속 여인의 처지처럼, 왼손잡이와 왼쪽이 인류문화사에서 부당하게 받아온 소외와 고독에 어떤 보상을 해주고 싶어하는 저자의 열망이 책 전편에 흘러넘친다.
우리 무속화에선 왼손잡이가 중심
시작은 오른손잡이에 비해 왼손잡이가 홀대받아온 편견에 대한 과학적 반박이다. 고고민속학, 유전학, 진화론 등 동서양의 연구성과를 고루 훑어가지만, 여의치 않다. “대부분의 영장류가 양손잡이인 데 반하여, 왜 인간은 오른손잡이 편향이라는 선택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하고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며 인류만의 독특한 진화의 산물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보지만, “왼손잡이의 동적인 과거행위를 밝힐 수 있는 로제타석이 없는 셈”이라며 “애매모호한 결론밖에 내릴 수 없다”고 ‘자인’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좌절의 기미를 보이는 건 절대 아니다. 대신 넓은 포위 작전을 편다. 몸의 좌우대칭 문제, 건축학적 공간개념, 복식사에서 드러나는 패션의 양상, 언어학상의 문제, 종교학에서의 성속 구분, 음양오행, 풍수, 도상학 등 동서양 인문학의 거의 전 범위를 망라하는 서술방식을 택했다. 단지 손의 문제뿐 아니라 신분과 계급, 정치와 문화 등 삶과 관련한 모든 분야에서 오른쪽과 왼쪽이 어떻게 모순적으로 대응돼 왔는지 드러내는 전술이다. 새로운 발굴보다는 기존 연구성과에 토대를 둔 의미망 넓히기에 더 힘을 준 셈이다.
아무래도 흥미로운 건 우리 이야기다. 제사의 관례인 향벽설위(向壁設位)에서 향아설위(向我設位)로 전환을 꾀한 해월 최시형 선생의 이야기나, 명백히 왼손잡이가 많은 무속 그림들의 사례가 그렇다. 위패가 놓인 벽을 향해 밥을 떠놓는 향벽설위와 달리 밥을 중생, 즉 인간 앞으로 되돌려놓은 게 향아설위다. 이렇게 제사상의 방향이 바뀌면 왼쪽과 오른쪽도 정반대로 달라진다. 이는 “제사 지내는 자와 제사 받는 자 사이에 틈을 열고 그 틈을 통해서 생명의 밥을 약탈해서 독점하는 이원적 분리”를 없애버리는 개벽적 의미라는 것이다. 또 이 책에는 시대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른쪽을 떠받들고 왼쪽을 천대해온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런데 각종 도상에서 왼쪽이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몇 안 되는 경우가 무속의 그림들이다. 말을 타고 가는 서낭신이나 부채를 든 산신도 등 조선후기 무속 그림에는 상당수가 왼손잡이로 그려졌다. “성스러운 공간에서 역설적으로 왼손이 주도권을 놓치지 않음을 방증하는 것”이자 “왼쪽은 기피 대상임에 분명하나 반대급부로 신성영역의 불가침을 보장한다”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이렇게 <왼손과 오른손>은 ‘좌우 상징, 억압과 금기의 문화사’라는 부제가 적절해보이는 교양서이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사진/ 큰 붓으로 힘차게 써나가는 악필(握筆)로 유명했던 석전 황육(1898~1993)은 수전증 때문에 오른손잡이에서 왼존잡이로 바꾼다.
아무래도 흥미로운 건 우리 이야기다. 제사의 관례인 향벽설위(向壁設位)에서 향아설위(向我設位)로 전환을 꾀한 해월 최시형 선생의 이야기나, 명백히 왼손잡이가 많은 무속 그림들의 사례가 그렇다. 위패가 놓인 벽을 향해 밥을 떠놓는 향벽설위와 달리 밥을 중생, 즉 인간 앞으로 되돌려놓은 게 향아설위다. 이렇게 제사상의 방향이 바뀌면 왼쪽과 오른쪽도 정반대로 달라진다. 이는 “제사 지내는 자와 제사 받는 자 사이에 틈을 열고 그 틈을 통해서 생명의 밥을 약탈해서 독점하는 이원적 분리”를 없애버리는 개벽적 의미라는 것이다. 또 이 책에는 시대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른쪽을 떠받들고 왼쪽을 천대해온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런데 각종 도상에서 왼쪽이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몇 안 되는 경우가 무속의 그림들이다. 말을 타고 가는 서낭신이나 부채를 든 산신도 등 조선후기 무속 그림에는 상당수가 왼손잡이로 그려졌다. “성스러운 공간에서 역설적으로 왼손이 주도권을 놓치지 않음을 방증하는 것”이자 “왼쪽은 기피 대상임에 분명하나 반대급부로 신성영역의 불가침을 보장한다”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이렇게 <왼손과 오른손>은 ‘좌우 상징, 억압과 금기의 문화사’라는 부제가 적절해보이는 교양서이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