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는 완벽했다. 문어 해루질 장비를 착용한 Z기자.
뭐라도 잡아야 하는데… 던진 에기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챔질(낚싯대를 위로 채듯이 당기는 것)을 하고 천천히 줄을 감으면서 가라앉도록 내버려두는 걸 반복했다. O는 “챔질보다 스테이(에기가 다시 가라앉길 기다리는 것)가 더 중요해. 위로 헤엄치다 아래로 천천히 내려갈 때 오징어가 무는 거야”라고 조언했다. 예전 ‘도깨비 낚시’도 그랬다. 낚싯대를 들고 천천히 내릴 때 물고기가 모여들어 입질하면 갑자기 낚아채야 했다. 무늬오징어 낚시는 (훨씬 격렬한) 바다판 도깨비 낚시였던 것이다. ‘어라, 묵직한데?’ 느낌이 왔다. 요동치는 마음을 누르며 더 격렬히 채어 감아올렸다. 수면 위로 쫄쫄쫄 딸려오는 게 무늬오징어도 그냥 오징어도 물고기도 아닌 에기(미끼)라는 걸 확인하곤, 썰물의 저항에 속았다는 씁쓸함만 밀려왔다. 그러곤 다시, 애꿎은 에기를 더 멀리 던져버렸다. 포인트를 조금씩 이동하면서 던질 때마다, 항상 가프(수면 위로 떠오른 오징어를 건져올릴 때 쓰는 바늘 달린 막대)를 옆에 두었지만, 이날 가프를 쓸 일은 없었다. 뭐라도 잡아야 한다는 조바심에 휩싸일 무렵, X기자가 먼저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해루질이나 하러 가자~.” 전날 또 다른 제주 이주민 S에게 문어 해루질 장비를 빌려놓은 참이었다. 해루질은 간조 때 어패류를 잡는 활동을 말한다. 마침 간조(하루 중 해수면이 가장 낮을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날 서귀포 간조는 밤 12시 무렵이었다. 서귀포항을 떠나 해루질을 할 만한 포인트로 이동했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바닷가엔 아무도 없었다. 해루질하기 좋은 날은 아니었다. 그날은 음력 8월24일(양력 10월13일), 물 수위가 높은 ‘조금’의 바로 다음날이었다. 간조에도 바다 바닥이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 해루질은 음력 15일과 30일, 해와 달과 지구가 일직선에 놓여 만조와 간조의 수위 차가 큰 ‘사리’에 하는 게 좋다. 내가 총대를 멨다. 머리에 헤드랜턴을 쓰고, 가슴까지 올라오는 장화옷을 입고, 양팔에 고무장갑을 끼고, 오른 어깨에 문어 담을 어망을 멘 채, 4절지 크기의 뚜껑 없는 직육면체 모양 아크릴판(잡은 문어를 일단 올려놓는 판)을 목에 걸었다. 오른손엔 문어를 훌쳐 올릴 가프를 잡았다. 바위와 돌이 많아, 뒤뚱뒤뚱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물이 허벅지까지 차오른 지점에서 아크릴판을 물 위에 대고 랜턴으로 비춰 바위 주변을 살폈다. 아크릴판이 물비늘을 없애 투명한 물속을 볼 수 있었다. 알밤만 한 게와 동전만 한 보말(고둥)이 자주 눈에 띄었다. 게와 보말은 기어다닌다기보다 물결에 몸을 맡긴 채 굴러다녔다. 한참을 게와 보말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 세상에 나와 게, 보말만 남은 기분이 들었다. ‘가슴 장화’ 입고 뒤뚱뒤뚱 들어갔지만 ‘가슴 장화’가 하나뿐이라는 이유로 나만 홀로 바다로 밀어넣은 X, Y, O가 멀리 해변에서 소리쳤다. “이제 그만 하고 나와. 오래 있으면 안 돼~. 이제 가야 해~.” 제주에선 외지인이 전복, 소라, 해삼은 물론 문어를 잡다가 해녀들에게 거센 항의를 받아 고초를 겪기도 한다.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해변의 목소리가 왠지 너무 멀게 느껴졌다. 아랑곳 않고 바위틈을 계속 살폈다. 그 뒤로도 불안감 서린 해변의 외침이 두세 차례 들렸다. 그만 허리를 펴고 해변으로 발길을 돌리자마자 바로 앞 바위 밑에 삐져나온 물컹한 물체가 보였다. ‘문어다!’ 조급한 마음에 한 손으로 바위를 들추다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다시 균형을 잡고 보니 모래와 돌뿐이었다. 그새 도망친 건지 원래 없던 건지 알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게와 보말 몇 마리라도 주워 갈까 망설였다. 그대로 굴러다니라고 두었다. 낑낑대는 건 나 하나로 족했다. Z기자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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