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강간 없는 안전한 뮤직페스티벌’을 위해 ‘주경야페’의 삶을 사는 페스티벌 기획단. 왼쪽부터 채은, 라꾸, 주연. 김진수 기자
‘보라X뮤직페스티벌’ 메인 포스터. 여성 싱어송라이터 오지은이 헤드라이너로 참가한다.
성중립 화장실과 아이돌봄 공간도 시선강간도 다반사다. ‘노브라’를 지향하는 채은은 “더운 여름이어서 민소매를 입었다. 옆자리 남성이 브라를 했는지 안 했는지 계속 쳐다봤다. 앞으로 이런 옷은 입지 말아야겠다고 자기 검열하게 됐다”고 말했다. 비슷한 경험을 한 채은의 친구는 평소 좋아하는 깊은 V넥 민소매의 ‘V’ 부분을 꿰매 입고 페스티벌에 간다. 서울 홍익대 앞 인디공연에서 ‘찍덕’(공연 등에서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활동하는 리페는 ‘무개념 뮤지션’들의 여성혐오 발언이 지긋지긋하다. “다른 관객에게 피해 주지 않고 잘 찍으려면 앞자리가 좋다. 그래서 미리 가 있는다. 내가 좋아하는 밴드보다 앞 순위에 있는 뮤지션들이 ‘오늘 관객 물이 좋다’는 등의 발언을 하면 ‘멘트하지 말고 노래나 해’ 말하고 싶다.” 리페는 여성팬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루피’(뮤지션과 섹스를 포함한 친밀한 관계를 맺기 원하는 사람)로 취급하는 시선·발언 때문에 홍대를 떠날까 생각한 적도 있다. 이런 차별적 시선, 성폭력, 성추행, 몰카 등에서 자유로운 페스티벌을 해볼까. ‘여자만의 축제’의 출발이다. 이때의 여자는 생물학적 기준에 따라 ‘남성/여성’으로 구분한 개념은 아니다. ‘장애/성적지향/자녀유무에 관계없이 자발적/강제적 여성으로 살았거나 살고 있는 누구나’가 이들이 생각하는 ‘참가 자격’이다. 이 때문에 기획단은 공연 전체를 장애인이 심리적·물리적 장벽을 느끼지 않도록 ‘배리어프리’(barrierfree) 공연으로 설계하고 있다. 경사로를 마련하는 것은 당연하고 청각장애인도 공연을 즐길 수 있게 자막 있는 스크린을 설치하거나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다양한 젠더의 사람들이 시선 장벽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성중립 화장실’도 설치한다. 아이 때문에 뮤직페스티벌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여성을 위해 ‘아이돌봄’ 공간도 마련한다. 그러나 ‘자격’이란 말은 늘 여러 문제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즐기기 위한 축제에 ‘젠더에 따른 자격 조건’을 두는 건 또 다른 배제와 차별이 아닌가 하는 문제 말이다. 만약 ‘시스젠더 남성’(신체적 성별과 자신이 생각하는 성별이 일치하는 남성)이 축제의 취지에 동의해 참가를 원할 경우 ‘안 됩니다’ 해야 할까.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여성은 자신의 젠더를 운영진에게 어떻게 확인시킬 수 있을까. 자신의 젠더를 남성/여성으로 정체화하지 않거나, 정체화할 수 없는 ‘논바이너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도대체 ‘여성’은 무엇이고 ‘여성’은 어디까지일까. 폭력 없는 공간 상상하고 기획하고 애초 기획단은 티켓 구매시 주민등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법적 성별’이 여성이 아닌 경우 티켓을 살 때 ‘저는 법적 성별은 남성이며, 여성 or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쓰도록 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고정된 특정 성별을 한 사람에게 강제하고 성적 정체성을 공개하도록 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런 지적에 기획단은 <한겨레21>과 인터뷰하는 날에도 밤늦게까지 회의를 했고, 다음날에도 회의를 이어갔다. 기획단은 9월15일 ‘법적 성별이 여성이 아닌 사람들에게만 요구된 서식이 얼마나 차별적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기획단의 부족함과 차별적 관점 때문이다. 저희의 조치로 받으셨을 모욕감과 상처에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SNS 등에 올렸다. 기획단은 티켓 구매시 요구하던 서식을 삭제하고 관객 모두 ‘반차별 비폭력 서약서’에 서명한 뒤 입장하는 방식으로 절차를 바꿨다. ‘보라X뮤직페스티벌’은 2016년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을 통해 여성에 대한 폭력/차별은 실재하며 이것을 생존 문제로 각성한 2030 페미니스트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몸짓이다. 서울 강남역에 포스트잇을 붙이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 여성들은 지난 2월 ‘2030 페미캠프’를 꾸렸다. 페미캠프에서 ‘여자들의 뮤직페스티벌’ 아이디어가 나왔다. 나쁜페미니스트, 불꽃페미액션, 초등성평등연구소 등 공동주최 단체들도 대개 2016년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생겼다. 기획단은 “모든 사회 공간이 여성에 대한 폭력이 없는 안전한 공간이기 위해, 그런 공간을 상상하고 기획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며 ‘보라X뮤직페스티벌이 그 상상과 기획을 위한 실험적 공간이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빠른 예매 중요해요”
페스티벌 기획단이 페스티벌 준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만든 굿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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